"5000억원대 무상옵션이라더니"… 공사비에 '슬쩍'
  • ▲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시공사선정총회 현장. ⓒ성재용 기자
    ▲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시공사선정총회 현장. ⓒ성재용 기자


    5000억원대 옵션의 무상제공을 약속한 뒤 해당비용을 공사비에 포함시킨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 건설업체가 적발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강남권 재건축 조합 5곳에 대한 합동점검 결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76건의 부정사례를 적발, 수사의뢰·시정명령 등을 실시했다고 22일 밝혔다.

    국토부 주택정비과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2개월 동안 서울시, 한국감정원과 함께 재건축 조합의 예산회계, 용역계약 등을 심층 조사한 결과 다수의 부정사례를 적발했다"고 말했다.

    점검대상인 재건축 조합은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현대건설, 이하 시공사) △서초구 신동아(대림산업) △서초구 방배6구역(대림산업) △서초구 방배13구역(GS건설) △서초구 신반포15차(대우건설) 등이다.

    전체 76건의 적발 가운데 예산회계 분야가 37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용역계약 14건, 시공자입찰 관련 1건, 조합행정 9건, 정보공개 5건 순으로 나타났다.

    시공사입찰 부정사례 중엔 5026억원 상당의 품목을 무상제공하기로 약속했던 현대건설의 경우 총공사비 2조6363억원에 해당 비용을 포함해 유상으로 공급하려던 정황이 적발됐다.

    이 관계자는 "무상옵션과 관련, 향후 조합원이 추가부담금을 물게 되거나 분쟁으로 연결될 소지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현대건설 측은 "무상옵션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일단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필요한 부분은 소명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다른 단지에서는 천정형 시스템에어컨을 달아주거나 발코니 확장을 해준다고 약속했으나, 그 비용 232억원을 중복시켰다. 행주·도마 살균기와 현관 스마트도어록 등을 무상제공하겠다고 했지만 109억원의 비용을 사업비에 넣은 시공사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합의 입찰기준에 따라 반드시 설계에 포함시켜 제안해야 하는 조경 나무나 스마트오븐, 욕조 등의 품목을 누락하고 이를 근거로 공사비를 산정함으로써 시공사로 선정된 사례도 적발됐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이 제시한 입찰 참여 기준을 위배해 설계를 제안하거나 개별 홍보행위를 한 사례도 적발됐다.

    국토부는 조합원에게 부담되는 계약을 체결할 때 사전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3개 조합의 임원에 대해서는 서울시에 수사의뢰하도록 했다.

    조합 임원이나 총회 미참석자 등에게 부당하게 지급된 수당과 용역비 등 총 7건 약 2억7000만원은 조합으로 환수하도록 했다.

    이 관계자는 "정비사업의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이후에도 시공사 선정과정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방침"이라며 "필요시 추가 합동점검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허위 무상제공 약속이나 품목 누락 등 시공사의 위법이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 조합이 자율적으로 비리를 점검하고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을 유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사법기관의 수사와 재판을 거쳐 시공사 불법 행위가 확정되면 시공사 선정이 박탈되거나 조합의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취소될 상황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시장에서는 주목하고 있다.

    일단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시공사의 불법에 대해 처벌하는 조항은 있으나, 시공권 자체를 박탈하는 내용은 없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원 등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경우에 대해서는 시공권을 회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도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현재 법사위에 묶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