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영업비밀 없다" 연일 밀어붙이기삼성 "설비라인·화학물질 정보 핵심기술" 유출 우려
  •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연합뉴스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가 다음 주 초 관련 전문가위원회를 열고 삼성에서 요청한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의 국가 핵심기술 포함 여부를 판단한다.

    보고서 정보공개 여부를 놓고 고용노동부와 삼성이 대립각을 세우는 가운데 기업의 산업기술을 보호해야 할 산업부가 백기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용부 오비(OB·전직 관료) 중에서는 백혈병 산업재해 관련 부분에 국한해 공개해야 한다는 절충안이 나온다.

    11일 산업부에 따르면 다음 주 초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산하 반도체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를 열어 삼성 측에서 요청한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의 핵심기술 포함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삼성은 고용부가 자사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산재 근로자와 유족뿐 아니라 시민단체 등 제3자에게도 공개할 수 있게 행정지침을 고치자 지난달 26일 영업비밀 유출이 우려된다며 산업부에 해당 보고서 내용이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문위는 국가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핵심기술의 수출 승인을 심사하는 기구다. 산재 연관성과 관련해 핵심기술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문위는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반도체와 관련해 지정한 7개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라며 "보통 전문가 동의를 구해 만장일치로 심사하지만, 민감한 사안은 일반적인 의사결정 방식(과반수)을 따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 ▲ 산업통상자원부.ⓒ뉴데일리 DB
    ▲ 산업통상자원부.ⓒ뉴데일리 DB

    산업부는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높아 국외로 유출되면 국가 안전보장이나 경제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산업기술을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고시한다.

    반도체에선 30나노 이하급 D램과 낸드플래시의 설계·공정·소자·조립·검사·3차원 적층형성 기술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스템온칩과 LTE 기저대역 모뎀의 설계·공정기술 등을 포함한다.

    디스플레이에선 8세대급(2200x2500㎜) 이상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와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패널의 설계·공정·제조기술이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됐다.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에는 노동자에게 해를 끼치는 유해물질의 노출 정도와 사용 빈도는 물론 공정별 취급 화학물질·사용량, 근로자 수 등이 담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공장 설비 배치나 화학물질 사용 관련 정보는 핵심기술로 봐야 한다는 태도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 결정과 관련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법원에 각각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일각에서는 산업부와 고용부 견해차가 확연히 다른 만큼 정보공개 권한을 가는 행정안전부가 소방수로 등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고용부는 지난 9일 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청구 처리지침에 관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소송 결과 영업비밀로 인정할 부분은 지침에 반영하겠다"며 "정보공개 수준은 행안부와 협의하겠다"고 애초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가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지대한 가운데 국내기업의 산업기술을 보호해야 할 산업부가 어떤 결론을 낼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고용부가 법원 판례를 근거로 정보공개를 강행하는 것과 관련해 고용부 OB 사이에선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훈수도 나온다. 공개해도 백혈병 산재와 관련한 부분만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는 견해다.

    삼성 백혈병 산재 관련 내용에 정통한 고용부 한 OB는 "정보공개의 목적은 삼성반도체 현장의 백혈병 연관성 때문으로, 근로자 안전과 작업장의 보건환경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의 영업비밀과 노하우도 지켜주는 게 맞다"며 "산재 근로자나 유가족을 돕는 시민단체 등이 전문지식이 없다 보니 모든 정보를 얻고서 살펴보겠다는 거다. 국내에도 관련 전문가가 많으니 이들을 통해 관련 정보만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선에서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3자 공개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지난 2월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유족에게 공개하라고 한 대전고등법원의 판결도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개 대상에 이해 관계자뿐 아니라 제3자를 포함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 측도 산재 신청 당사자에게는 외부 유출 방지를 전제로 자료와 현장을 보여줄 용의가 있지만, 시민단체 등 제3자에게 보여주는 건 핵심기술 유출 위험이 커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박영만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9일 브리핑에서 "이번 공개 결정은 법원 판례를 토대로 각 지방노동관서 정보공개심의회에서 보고서에 영업비밀이 없다고 판단해 나온 것"이라며 "고용부도 기업의 영업비밀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