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항공법엔 등기이사만 외국인 제한… 소급적용 가능 여부가 관건
  • ▲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연합뉴스
    ▲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연합뉴스

    미국 시민권자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진에어 등기이사로 6년간 불법 재직한 게 알려지면서 비등기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토부는 현행법상 외국인의 비등기이사 선임은 문제 될 게 없어 자칫 빈대 잡느라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는 태도다.

    조 전무가 2010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조 에밀리 리(Cho Emily Lee)'라는 이름으로 진에어 사내이사에 등재됐던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선 조 전무가 경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6일 열린 최고의원회의 모두발언에서 "반복되는 재벌 2·3세 갑질은 공분과 재벌 개혁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높인다"며 "분명한 벌칙이 있어야 한다. 사법당국은 엄격한 법 집행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조 전무 전횡은 간단히 용서될 게 아니다"며 "국민 앞에 사과하고 경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보도자료를 냈던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조 전무가 대한항공 미등기이사라고 해서 등기 임원보다 권한이 없는 건 아닐 것"이라며 "대한항공은 조 전무를 임원에서 해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전무는 2016년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등기이사에서 돌연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국토부는 국적항공사 면허발급 체계를 개편했다. 신규 진입 기준과 사후관리를 강화하면서 국적항공사가 면허발급 당시 승인 기준을 준수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미국 국적인 조 전무는 진에어 부사장을 맡고 있다. 등기이사는 아니다.

    현재 조 전무는 대한항공에선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광고 겸 여객마케팅 담당으로 돼 있다. 비등기이사다.

    항공사업법 제9조와 항공산업법 제10조는 임원 중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있는 경우를 '국내·국제항공운송사업 면허의 결격사유' 중 하나로 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조 전무가 대한항공 비등기이사에 오른 것은 법적 하자가 없는 셈이다.

    국토부도 조 전무가 비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린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견해다.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산업은 국제화한 업종이어서 설립·운영 과정에서 외국인 관계자나 전문가에 자문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외국사례를 봐도 외국인을 등기이사로 올리는 것을 막는 나라는 있지만, 비등기이사까지 제한하는 경우는 없는 거로 안다"고 설명했다.

    국내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확인된 국적항공사의 비등기임원은 총 152명이다. 대한항공이 90명으로 가장 많고 아시아나항공 38명, 제주항공 17명, 진에어 5명, 에어서울 2명 등이다. 티웨이항공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고 나머지는 비등기임원이 없었다.

    이 중 조 전무처럼 외국 국적을 가진 비등기임원은 대한항공 3명, 아시아나항공 2명, 진에어 1명 등 모두 5명이다. 조 전무는 대한항공뿐 아니라 진에어에도 마케팅본부 총괄 담당으로서 비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국토부는 17일 조 전무와 관련해 불거진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진에어 등기임원이 되고도 이를 국토부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와 항공법 위반에 따른 면허취소 가능 여부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조 전무의 비등기이사 등재에 하자가 없어 보이는 만큼 관건은 과거 진에어 불법 등기이사 재직 문제를 소급 적용해 항공법 위반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다.

    이와 관련해선 의견이 갈린다. 당시로선 위법한 게 맞지만, 이미 등기이사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국토부가 지금 와서 면허 취소 등 행정처분을 내리면 오히려 위법한 행정처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