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 미인정 2007-2008 보고서 유력
  • ▲ 고용노동부-삼성전자.ⓒ연합뉴스
    ▲ 고용노동부-삼성전자.ⓒ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정보공개 논란과 관련해 해당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됐다고 확인했으나 강제력이 없어 고용노동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노동부는 일단 중앙행정심판위원회(행심위)가 정보공개 보류를 결정한 만큼 행정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행심위가 앞선 법원 판결과 이번 산업부 의견을 함께 고려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온양공장만 보고서 일부를 공개하는 쪽으로 정보공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비밀유지를 전제로 산업재해 피해자나 유가족이 지정하는 일부 제3자 전문가에게만 정보를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방안도 절충안으로 제시된다.

    18일 노동부는 전날 산업부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산하 반도체전문위원회가 삼성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일부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됐다고 확인한 것과 관련해 "삼성 측에서 아직 공식적으로 알려온 내용이 없어 현재로선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게 없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2009~2017년도 화성·평택·기흥·온양 사업장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일부 내용이 국가핵심기술인 30나노 이하급 D램과 낸드플래시의 공정과 조립기술을 포함한 것으로 판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2007~2008년 보고서는 30나노 이상 기술과 관련돼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산업부는 보고서의 공정 이름과 배치, 화학물질 상품명과 월 사용량을 통해 6개의 국가핵심기술을 유추할 수 있다고 봤다.

    삼성 측은 산업부의 판단결과를 법원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노동부가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을 토대로 삼성 모든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제3자에게도 정보공개 할 수 있게 하자 법원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소송과 행정심판을 제기한 상태다.

    노동부는 17일 일부 언론의 정보공개 강행 보도와 관련해 해명자료를 내고 "반도체 공정이 핵심기술이어도 무조건 공개를 강행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산업부가 보고서 내용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면 (노동부는) 그 내용과 노동자 건강권을 고려해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국가핵심기술이라고 해서 정보공개를 하지 못한다는 법규는 없다.

    오히려 대전고법은 판결문에서 "작업환경측정 위치도가 정보공개법상 법인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더라도 '사업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재산이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행심위가 17일 노동부가 정보를 공개하면 행정심판 본안에서 다툴 기회가 없어진다며 정보공개 집행정지를 받아들인 만큼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갈 전망이다. 정보공개 집행정지 대상은 삼성전자의 온양·기흥·화성·평택 반도체공장과 구미 휴대전화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다.

    행정심판에는 통상 1∼2개월이 걸린다.

    일각에서는 노동부가 법원 판단과 산업부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고서를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개연성이 없지 않다는 견해다. 온양공장 보고서 중 산업부가 국가핵심기술을 담고 있지 않다고 한 2007~2008년 보고서만 공개하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행정심판에서도 결국 법원 판결과 이번 산업부 의견을 함께 참작할 게 뻔하므로 정보공개 방향 선회에 큰 무리가 없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는 법원이 공개를 결정한 온양공장의 경우 각각 2010년과 2011년 이후 30나노 이하급 낸드플래시와 D램 조립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노동부가 정보공개 전선을 삼성전자 모든 공장의 2007~2008년 보고서로 확장한다면 잡음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다른 한편에선 노동부가 다른 절충안을 궁리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삼성 백혈병 산재 관련 내용에 정통한 노동부 오비(OB·전직 관료)는 "정보공개의 목적이 삼성반도체 현장의 백혈병 연관성 때문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 영업비밀을 지켜주는 게 맞지만, 근로자 안전과 작업장의 보건환경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산재 피해자나 유족이 전문지식이 없다 보니 정보를 공개해도 잘 모른다"며 "국내에도 관련 전문가가 많으니 영업비밀 준수를 전제로 이들을 통해 관련 정보만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선에서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동부 OB는 민간에서 영입한 박영만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이 의사 출신 변호사로, 보건분야 전문가라는 점에 주목한다. 박 국장이 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이나 연구원을 통해 직업병과 관련해 공개할 만한 내용을 충분히 추릴 수 있다는 견해다.

    노동부 OB는 "(박 국장이) 2011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근로자의 직업병 산재소송에서 근로자 측을 대변했던 만큼 문제가 되지 않을 선에서 공개할 정보를 선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직업병이 발병한 근로자가 일했던 생산라인이나 다수의 산재 피해자가 발생한 공정만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