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전문가 "동해북부선 우선… 가스망 패키지화는 변수 고려""단순 연결은 경제효과 낮을 수 있어… 유라시아 아우르는 큰 그림 그려야"
  • 철도.ⓒ연합뉴스
    ▲ 철도.ⓒ연합뉴스

    남북 관계가 해빙 분위기로 접어들면서 철도를 이용한 북방 물류에 관해서도 관심이 뜨겁다.

    교통전문가들은 철도 연결 자체만을 보지 말고 다른 산업부문과 연계 추진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련 기관의 개별적 돌출발언은 지양하고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사업안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견해다.

    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철도업계가 고무돼 있다. 남북 관계 개선과 맞물려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이 주목받으면서 남북·대륙 철도 연결에 따른 북방 물류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철도업계와 교통전문가는 남북 철도와 관련해 동해북부선 연결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운을 뗀 것은 국토교통부다. 맹성규 전 국토부 제2차관은 지난달 12일 출입기자들과 만나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동해북부선을 먼저 연결해야 한다"며 "북한의 철도개량사업을 벌이면서 러시아 가스관을 남한으로 끌어오는 사업도 병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가스관을 끌어와 폭 60m의 철도용지 아래로 지나가게 하면 토지점용료를 아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통전문가는 "경원선은 군사적인 측면이 있어 어려울 듯하다"며 "동해북부선과 러시아 가스 연결은 MB 정부 때도 추진됐었다. 당시 북한이 수락하지 않아 틀어진 만큼 (관계 개선이 이뤄지면) 추진 가능성이 크다"고 부연했다.

    끊긴 강릉~제진(104.6㎞) 구간이 복원돼 동해북부선이 연결되면 한반도에서 유럽대륙까지 철의 실크로드가 열려 물류비용이 대폭 줄 거라는 게 철도업계 의견이다. 동해북부선은 지난 2000년 남북 장관급회담 이후 금강산~제진 구간이 연결돼 2007년 시험운행까지 했지만,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결실을 보지 못했다.

  • 유라시아 횡단열차 승차권 모형.ⓒ연합뉴스
    ▲ 유라시아 횡단열차 승차권 모형.ⓒ연합뉴스

    철도·교통전문가들은 너무 앞서가지 말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밋빛 청사진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통전문가는 "지금 철도업계 일각에서 거론하는 철도 물류는 초등학생 수준의 생각"이라며 "남북·대륙 철도를 연결만 하면 다 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상황은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륙철도에 연결하면 대부분 노선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를 이용해야 하는데 러시아가 이를 쉽게 내줄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꿈이 부산항을 이용한 해운물류 거점 확보에 있으므로 양국이 공동으로 대륙철도 운영회사를 만들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나름 해법을 제시했다.

    다른 교통전문가는 "철도 하나만 얘기해선 안 된다"며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을 예로 들면 국가 종합발전전략에 해당하는 제13차 5개년 규획에 담긴 환보하이만 경제권 개발 등 동북아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계획 등을 살펴보고 철도·도로·항만 등 국제운송 수단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도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역점을 두는 원산·칠보산 지역의 관광·물류산업 활성화를 참작해 경제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다. 철도 연결에만 국한된 접근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교통전문가는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변했다. 의류·봉제 등 부피가 큰 수출품은 많지 않다"며 "반도체 등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경박단소(輕薄短小) 제품이 많다 보니 철도로 보낼 게 생각보다 적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DJ 정부에서 경의선으로 400번쯤 철도물류를 활용한 적 있다. 그러나 공장에서 목적지까지 육상과 철도를 3~4번 거치면서 경제성이 낮다고 판단됐다"며 "경제성을 높이려면 철도망에 다른 것을 연계하는 패키지형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문제는 패키지형 개발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교통전문가는 동해북부선을 이용한 러시아 가스관 연결과 관련해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이지만, 철도 운송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정전기 등으로 폭발 위험이 있어 (외국에선) 병행 건설하지 않는 편"이라며 "땅이 넓다면 모르지만, 동해안에 폭 50~60m를 확보할 수 있는 넓은 곳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단편 일률적으로 러시아에서 가스를 수입하는 게 최선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세계 2위의 천연가스 수입국이다. 세계 2위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로부터 2009년 이래 매년 150여만t의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

    교통전문가는 "가스는 중장기 수급계획이 있다"면서 "그동안 주로 배를 이용해 액화천연가스(LNG)를 들여왔는데 파나마 운하 확장으로 선박 규모가 2배 이상 커지면서 운송비가 내렸다.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 확대나 쇄빙유조선 수주에 따른 러시아의 북극해 연안 야말반도 LNG 수입 요구 등 시장 상황 변화에 따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국토부나 철도업계에선 동해북부선과 러시아 가스관을 연계해 그림을 그리고 있으나 가스업계에선 무슨 소리냐고 따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과거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 벨기에 사람을 만나 경의선을 연결하면 연간 4억5000만 달러를 벌지만, 동해선을 연결하면 10억 달러를 벌 수 있다고 했을 만큼 동해선은 좋은 사업이다"며 "다만 하나의 단면만 보고 사업을 추진할 순 없으므로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5~6월에 북방경제협력 5개년 로드맵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며 "철도업계 일각에서 정부와 조율하지 않은 개인 아이디어 차원의 사업을 검토된 것인 양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