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태로 국민들 공분법적 처벌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조 회장 퇴진 요구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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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진그룹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시장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2014년 12월 이른바 '땅콩회항'에 이어 지난달부터는 '물컵' 사건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대한항공을 주력으로 하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장녀와 막내딸이 초래한 갑질 파문 때문이다.


    특히 한달 넘게 SNS와 여론에서 들끓고 있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건은 국내 재벌기업과 대한민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재벌 총수 일가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한 부분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국민들도 과거와 달리 갑을 관계에 힘없이 굴복하기 보다는 억눌렸던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미투운동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감정적으로 이번 갑질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정확한 사실관계나 범죄 여부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물컵을 던져 얼굴에 물이 튄 것이 조양호 회장 일가가 퇴진해야 할만 한 사안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조현민 전 전무에 대해 여론의 비난을 의식해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됐다. 물컵 사건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가칭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주장하는 조 회장 일가의 경영권 포기는 자본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경영권은 말 그대로 그 회사의 대주주가 갖는 적법한 권리이다. 비도덕적,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직원들과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고 해서 이를 강제로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경영권은 회사의 의사결정권으로 단체교섭 협약의 대상도 아니다. 노조에서 경영권에 대해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전두환 정부 시절에 부실기업 정리를 명목으로 국제그룹이 해체된 적이 있다. 정치적 강요에 의해 경영권을 빼앗기고 회사가 없어진 사례다. 한보그룹, 진로, 대한전선 등은 오너가 경영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잘못된 경영상의 판단으로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려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지금의 한진그룹과는 명백하게 다르다. 오너의 잘못으로 경영 성과가 나빠진 것도 아닌데 경영권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경찰, 검찰, 관세청, 국세청, 국토부 등 전방위에서 한진그룹 일가를 조사 및 수사하고 있다. 물컵 사태로 야기된 조 회장 일가의 부도덕한 모습이 직원들의 제보와 폭로로 이어지면서부터다. 법 규정을 위반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 총수들이 경영권을 내려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크다. 횡령, 배임, 조세포탈, 폭행, 도박, 성추행 등 각종 범죄로 재벌 총수들이 법정에 서고 구속되기도 했다. 죄값을 치르는 것과 경영권 포기는 엄연히 다르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오늘 3차 촛불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촛불집회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던 것처럼 조양호 회장 일가를 몰아내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대한항공 갑질 사태와 관련해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제보와 폭로가 이어지는 3개의 방, 집회를 논의하는 2개의 방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직원 전체의 의견이 반영되고 있다고 확대 해석해서는 안된다. 아울러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내용들이 무차별적으로 기사화되고 있는 점도 언론 스스로 반성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조양호 회장 일가는 반성해야 한다. 그동안 경직되고 일방적이고 강압적이었던 기업문화를 새롭게 바꿔야 한다. 더욱 엄격한 도덕적·윤리적 잣대를 스스로 적용하고 지켜야 한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이 직원들과 국민들로부터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제적가치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경영권 포기와 퇴진은 그 이후에 자율적·자발적으로 선택해도 늦지 않다. 더 이상 도덕적 비난이 경영권 포기라는 자본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터무니없는 요구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