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식장에서 본 하객의 '격'


    작년에 시카고 어느 결혼식장에서였습니다.
    리셉션이 시작됐는데도 수십 명의 하객들이 축하연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 로비에 있는 텔레비전 앞에서 웅성 거렸습니다.
    골프 게임을 보면서 환호를 하기도 하고 아쉬운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화장실 가는 길에 이 광경을 보면서 무슨 경기냐고 물었더니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를 이기는 게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골퍼인 타이거 우즈를 누르는 한국 선수 양용은의 쾌거에 미국에 사는 동포들인들 환성과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흥미진진한 경기라고 해도 결혼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결혼식에 축하를 하러 왔으면 골프 궁금증으로 몸이 쑤셔도 축하연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일 것입니다. 이런 하객들은 결혼식에 오지 말고 집에서 골프 경기를 보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신랑 신부 측을 위해서 좋았을 것입니다.
    스포츠와 인간에 대한 기본 인격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밴쿠버 올림픽과 국민의 '격'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되었던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놀라운 기량을 발휘했습니다.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종합 순위가 5위라니 찬탄과 감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스포츠는 국력이라고 할 만큼 그 나라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기에 한국의 힘이 이제 세계를 향해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시켜 주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동포들도 모국 선수들의 눈부신 활약에 어쩔 줄 모르면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쇼트랙 경기를 할 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한국 선수의 동작에 따라 몸이 움직이면서 전율하고, 김연아 경기를 보면서 아내는 안절부절못하며 응원을 하고, 저도 조바심으로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참으로 장하고 아름다운 경기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올림픽을 보도하는 한국의 언론이나 거기에 반응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지나치게 국가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포츠 본래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국가라는 집단성을 투입시켜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해외동포들도 감격 감동 행복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국민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의 잔치처럼 멀리 있었던 동계 올림픽에서 메달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흥분하지 않은 코리언의 가슴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코리아는 셀 폰이나 자동차나 예술에서만 세계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동계 올림픽에서도 세계 톱 그룹으로 발돋움 하고 있습니다. 골프, 축구, 야구가 세계적 수준으로 뛰어 올랐고 수영에 이어 빙상 경기에서도 한국의 힘을 보여 주었습니다.
    올림픽 선수들은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었고, 우리가 노력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가능성의 희망을 심어 주었고, 당당하고 발랄한 새로운 세대에 대한 밝은 장래에 기대를 걸게 했습니다. 이들을 지켜보는 해외 동포들의 마음도 행복했고, 감격과 감동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감상 못하는 집단주의

    열광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감격과 감동을 이해하면서도 이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스포츠를 대하는 국민들의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수들은 나라의 위상을 높여주었는데 선수들을 응원하는 국민들의 격은 높지가 않았습니다.
    양용은 선수의 쾌거는 장하지만 결혼식장에 온 미주 동포들의 스포츠 정신이나 인격이 낙제점이듯이 올림픽을 국가의 대결장으로 과열시키는 한국 국민의식과 언론들의 보도 태도는 후진 것입니다.

    특히 일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태도는 우리들 의식 속에 아직 식민지 시대의 열등의식이나 분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경기를 국가 간의 대결로 유도하는 언론의 책임이 컸습니다.
    이런 국가 대결은 이미 축구나 야구 등 많은 경기에서 식상할 정도로 되풀이 되어 왔습니다.
    김연아의 아름답고 놀라운 스포츠 예술을 있는 그대로 감동하지 못하는 집단주의 의식이 너무 지나쳤습니다.

    한국 언론의 '천격' 황색 저널리즘

    국민들 전체의 반응을 해외에서 가늠하는 것은 오류가 있겠지만 인터넷 언론으로 측정되는 한국의 올림픽 반응은 선진적이지 못했습니다.
    "영웅들의 귀환! 그대들 있어 한국이 빛났다" 면서 과장되게 국가주의를 부채질하는 편협성에서부터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공항에 도착한 김연아", "선수단 이코노미석, 김연아 홀로 1등석", "메달 못 딴 곽민정은 쪼그려 앉아...", "김연아 예쁘지만 나만의 매력 있다", "나도 피겨할걸 그랬나..." 같은 허접스런 가십 기사들이 버젓이 톱 제목으로 눈길을 끌게 했습니다.
    이 같은 기사들이 연예 스포츠 신문이나 센세이셔널한 주간지라면 몰라도 한국 최고의 언론들의 톱기사라는데 문제성이 있습니다.
    이런 채신없는 호들갑 보도가 민망스러움에 그치지 않고 국민 의식을 황색 저널리즘 수준으로 끌어 내린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김연아만 특별대우는 '격'에 안맞아

    누구 얼굴이 예쁜 것이 올림픽 선수에게 무슨 상관이 있고, 김연아가 1등석을 타고, 김연아가 화장을 하지 않고 귀국한 것이 어떻게 톱기사 대열에 설수 있습니까.
    거기에다 메달을 못 딴 어린 곽민정이란 선수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부각시켜 왜 상처를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연아 1등석 탑승사실을 부각시킴으로서 결과적으로 김연아의 이미지를 깎아 내렸습니다. 혼자만의 1등석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연아 혼자서 귀국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올림픽 선수들이 함께 귀국하는 단체 행동에 김연아만 특별대우를 하는 것은 결국 금메달을 딴 다른 선수가 "나도 피겨할걸 그랬나..." 하는 푸념을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김연아를 위해서나, 스포츠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격'입니다.

    올림픽에 나타난 한국의식에는 집단주의, 국가주의가 넘치고, 1등 주의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은 이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있다는 정신은 너무 고전적이라 인용하는 것이 쑥스러울 정도로 퇴색하고 있지만, 그래도 스포츠의 순수성과 비정치성, 우정의 경쟁은 계속 강조되어야 올림픽의 권위와 아름다움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금메달에 집착하고, 일본이 금메달이 하나도 없는 것을 고소하다는 듯이 보도하고,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차별하는 것은 스포츠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메달 많다고 '국격' 높아진 것 아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은 선수단의 성과는 국격을 높여 주었다고 선수들을 치하했으나 선수들의 성과는 국격을 높여준 것이 아니라 국위를 높여준 것입니다.
    국위를 선양시키는 것과 국격을 높이는 것은 다릅니다.
    올림픽에 금메달이 쏟아지면서 세계인들의 머리에 코리아가 각인되고 코리아의 기량과 국력이 인상적으로 제고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코리아나 코리언의 국격과 품격을 높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고, 권력을 잡으면 사회적 신분 상승이 되지만 여기에 인격이 수반되지 않으면 돈과 권력은 힘의 상징으로 끝나고 그것을 가진 사람이 존경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흥청망청하는 천박한 졸부들과 거드름을 피우면서 으스대는 뻔뻔한 권력자들을 존경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금메달을 받은 것이 그 선수의 위상과 인지도를 높여 주고, 금메달을 많이 딴 한국의 위상을 높여 주었지만 그것이 존경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승자의 자만심에 '품격' 없으면 '국격'도 추락


    힘이나 명성을 얻은 사람이 존경받기 위해서는 인격이 있어야 하고, 승자와 패자의 인격은 겸손에서 나옵니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를 "G세대", Global 세대라고 부르면서 지나치게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성급하고 경솔한 잔치입니다.
    젊은 세대의 당당함과 발랄함, 역동성을 고무시켜, 그것을 도전하고 성취하는 희망과 용기의 동력으로 삼는 것은 나라의 힘입니다.
    그러나 자만심을 키우고 당돌함을 고취시키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자만심과 자신감은 백지 한 장 차이가 될 수 있지만 개인과 국가의 이미지와 격을 천양지차로 만듭니다. 자만심에 인격이 배양될 때 자만심은 자신감으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승자와 메달 수상자의 영광은 메달에 승자의 겸손과 절제력을 내연화시킬 때 진정한 메달로 빛날 수 있습니다.
    메달을 받은 수상자와 스포츠 선진국이 된 국가가 승자의 감정을 절제하고 승리감에 균형을 찾지 못하면 위상은 올라갔으나 격을 올리지 못하고, 격을 올리지 못하면 올라갔던 위상도 떨어집니다.

    누구를 영웅으로 만들 것인가

    그리고 G세대에는 메달 수상자처럼 뛰어나고 장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낙오되고 좌절하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사회가 지나치게 승자의 영웅주의에 열광하고 1등주의에 환호하는 것도 격이 떨어지는 것이고, 격이 떨어진 사회는 균형을 잃고 갈등과 위화감을 크게 하고, 결국은 나라의 국격을 실추시킵니다.
    눈물 나는 좌절과 혹독한 연습을 통해 승리를 획득한 승자에게 보내는 박수가 성공과 성취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목표와 성취를 위해 불굴의 정신으로 도전한 투지와 기개에 있을 때, 그 사회와 나라의 격은 올라갑니다.
    그 사회가 누구를 영웅으로 만들고, 무엇이 영웅을 만드느냐에 따라 국민 의식과 시대 의식이 달라집니다. 영웅 정신이 사회를 빛나게 할 수 있어야 역사가 빛날 수 있습니다.

    외국방송의 칭송은 '한국 칭송' 아님


    한국의 스포츠 캐스터가 해외 방송인들의 반응을 전하면서 "유럽의 방송인들이 계속 우리를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여성 캐스터는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고 말한 것을 마치 외국인들이 한국을 칭송하는 것으로 왜곡시키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인들의 아전인수입니다.
    해외 방송인들은 한국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놀라운 스포츠 예술을 칭송하고 축하하는 것입니다. 김연아의 경기를 보면서 눈가에 눈물을 짓는 여성 방송인은 김연아의 놀랍고 아름다운 경기에 감탄하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스포츠 정신의 아름다움이 있고, 스포츠의 인격이 있고, 방송인의 인격이 있고, 방송인이 속한 나라의 국격이 있습니다. 자기 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잘해야만 눈물을 흘리고 열광하는 것은 스포츠 인격이 아직 뒤진 것이고 국격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게걸스럽고 천박해지지 말아야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감동하는 것은 그것을 쓴 사람의 국적이 아니라 연주와 작품입니다.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국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가 국격을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교만과 국가주의와 1등주의는 절제시켜야 합니다.
    세계의 강국으로 승승장구하는 한국의 위상을 존경받는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격을 신장시켜야 합니다.

    월드컵의 광적인 붉은 악마적 응원은 세계인들의 호기심을 끌 수는 있지만 존경받고 사랑받는 나라가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음식상을 대하면 게걸스러워 지고 체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물질적으로 잘 살고 올림픽에서 메달이 쏟아질 때 자칫하면 정신과 의식이 게걸스럽고 천박해 질 수 있습니다.
    승자가 될 때 품위가 나타나고 국격이 보입니다.
    승리감을 절제하고 균형 시키는 것이 승자의 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