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깨는 '창조적 파괴'가 기업을 키운다 [뉴데일리경제 박정규 대표 칼럼]
  • 정주영 고 현대그룹 창업주는 강한 추진력 때문에 ‘불도저’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다. 하지만 그는 “덮어놓고 덤벼들라는게 아니다. 무슨 일이든 더 효율적인 방안을 찾으면서 밀어붙이라”고 말하곤 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슘페터(1883-1951)는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Crative Destruction)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 나와 있지 않은 신상품을 창출하고 새로운 기법의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등 기존의 제품 질서를 파괴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기업은 쇠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일 슘페터의 연구, 활동 시기가 정주영 전 현대그룹 창업주와 같았더라면 슘페터는 자신의 기업 혁신(Corporate Innovation) 모델로 정주영을 손꼽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다. 

     

    소학교 졸업이 전부인 정주영 회장은 경제학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그의 사고는 고정관념을 깨는 창조적 상상력으로 가득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가는 혁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각도에서 시도해봐야 한다는게 정 회장의 지론이었다.

    그는 특히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임원들이 우물쭈물할 때 ‘역발상’을 강조했다. 그가 임원들을 다그칠 때 쓰던 비유가 ‘돼지몰이론’이다. 돼지를 우리에서 내몰 때 앞에서 귀를 잡아당기면 앞다리로 버티는 힘 때문에 목적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나 뒤에서 꼬리를 당기면 쉽게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 고정관념을 깬 사우디 주베일항만 공사

     

  • 현대건설이 완공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만 공사ⓒ
    ▲ 현대건설이 완공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만 공사ⓒ

    사우디 주베일항만 공사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콘크리트로 만드는 스타비트가 16만개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하루에 200개씩 800일이 걸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는 황급히 현장에 가보았다.

     

    그런데 레미콘 트럭에서 직접 거푸집으로 콘크리트를 부어넣은 게 아니라 트랙에서 크레인 버킷으로 일단 큰크리트를 쏟아낸 다음에 이것을 다시 거푸집으로 옮기고 있었다. 두 단계면 될 일을 세 단계에 걸쳐서 하니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었다.

     

    ‘왜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하느냐’고 물으니, ‘레미콘 트럭의 배출구 높이와 거푸집 높이가 안 맞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그들의 모습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레미콘 트럭의 배출구를 개조해서 높이를 거푸집에 맞추는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레미콘 트럭은 완제품으로 나오는 것이니 아무도 개조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당장 배출구를 개조하라고 불호령을 내렸고, 그 이후 스타비트 생산량이 200개에서 350개로 대폭 늘어났다.
     
    ▶ 거북선 그려진 지폐와 허허벌판 사진으로 조선소 건설비용 조달 

     

  • - 야, 니는 꿈이 뭐고 (손님)
    - 선장이 꿈입니더 (덕수)
    - 선장? 내 꿈은 말이다 배를 만드는게 꿈이다(손님)
    - 에이~ 울나라가 어찌 배를 만듭니까? 자동차도 못만드는 나란데...(덕수)
    - 거봐라, 내가 생각이 있다 (손님)
    - 뭐인데요? (덕수)

    - 우선 큰 땅을 사놓고, 외국회사들한테 이걸 보여주면서 자! 이렇게 넓은 땅에서 배를 지어서 팔테니 투자를 해달라! 이 얼마나 놀라운 생각이냐! (손님)
    - 아, 거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이소 (덕수)
     야. 저 사람 미친거 아이가? 울 나라가 어째 커다란 배를 만드나? (덕수 친구)

     

    최근 흥행하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물론 손님은 젊은시절의 정주영이다.

     

    이 영화 속 얘기는 실제 정주영 회장이 현대중공업을 창립할 때의 상황 그대로였다.

  • 세계 조선업을 이끄는 현대중공업의 오늘날 모습ⓒ
    ▲ 세계 조선업을 이끄는 현대중공업의 오늘날 모습ⓒ

    1960년대 후반 정 회장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울산의 백사장에 초대형 조선소를 짓기로 결심했다. 당시 우리나라 조선업은 돗단배나 만드는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대형 조선소를 짓기 위한 경험이나 기술, 자금도 없었다.

     

    정 회장은 조선소 부지로 점찍어 둔 울산 미포만의 모래사장 사진 한 장과 지도 한 장, 그리고 유조선 도면 한 장을 가지고 세계를 돌았다. 그가 바클레이즈은행 고위층을 찾아가 거북선이 나온 오백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며 '영국보다 300년 앞서 우린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 산업화가 늦었지만 잠재력은 그대로'라는 말로 차관을 빌려 거대 조선소를 건립한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정주영이 고정관념의 틀을 깬 사례는 울산조선소 도크(dock)를 완성할 때도 있었다. 도크가 미완성이었던 터라 대형 자동이동 크레인 설치도 역시 불가능했다. 그러기에 대형 불록과 3만 마력 엔진은 물론 그 부품들을 운반하기가 쉽지 않았다.

     

    작은 조립품들을 12m 도크 바닥으로 옮기는 일은 특수 트레일러를 동원해서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뱃머리 부분 조립이 끝난 제1호선을 제3도크로 운반하는 일은 가능성이 극히 적어 보였다. 이렇게 문제가 생기자 현대건설 기술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조립품을 제3도크로 옮기려면 골리앗 크레인이 설치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지만 골리앗 크레인을 들여와 설치하는 데만도 최소한 석 달이 걸리는데 그럼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그보다 크레인을 설치하기 전에는 배를 만드는 일을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결론은 석 달을 기다려 골리앗 크레인을 설치한 뒤에야 조립품을 옮기고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주에게 배를 인도해야 할 공기가 촉박한데 석 달을 허비해야 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이러니 불같은 정주영이 그대로 앉아 있을 리가 없었다.

     

    “모두 당장 그만둬! 그렇게 말로만 들볶고 있으면 해결이 날 건 뭐야? 생산적인 해결책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만 하고 있으니 나 원 참.”
       
    정주영은 종이와 펜을 가져오게 해 직접 도면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이렇게 뱃머리 블록을 트레일러에 싣고 뒤에서 불도저가 반대로 당겨 속도를 늦춰준다. 그러면 배가 경사진 언덕을 따라 천천히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아무 사고 없이 옮길 수 있을 텐데 이 방법이 가능해, 불가능해?”

     

    그러자 기술진들은 한결 같이 이론적으론 가능하다고 동의했다.

     

    “가능한데도 마냥 앉아서 석 달을 기다릴 거야? 군소리 말고 당장 이 방식대로 시행해!”

     

    기술진들은 호랑이 회장의 불호령에 정신없이 뛰어나가 회장이 가르쳐준 방식대로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참으로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 방조제 공사의 역사를 새로 쓴 서산방조제 유조선공법

     

    1983년 말, 충남 서산에 대규모 간척지를 만들려던 현대건설은 큰 난관에 빠졌다. 마지막 남은 A지구 물막이 공사, 전체 6400m에 이르는 방조제 중 270m만 메우면 되었지만, 불가능한 상황을 만난 것이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데도 천수만의 거친 물살은 트럭이 바윗덩어리들을 쏟아붓는대로 쓸어가 버렸다. 현대건설에 비상이 걸렸고, 전 사원의 머리를 쥐어짜도 초속 8m의 물살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4.5톤이 넘는 바위를 쇠줄로 서너 개씩 묶어서 던져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방법이 전혀 없어 보였다. 빠른 물살을 이용 왜군의 배를 침몰시켰던 명량해역이 초속 6.5m인데 견주어 여긴 무려 8.2m나 되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답답한 상황이 지속됐다.

     

  • 그 때 정주영의 머릿 속에는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해체해서 고철로 쓰려고 30억 원에 사다가 울산에 정박시켜 놓고 있던 스웨덴 고철선 워터베이호를 이용해보면 어떨까? 끌어다 가라앉혀 물살을 막아놓고 바위 덩어리를 쏟아 부으면 될 것 아닌가?”

     

    정 회장의 지시로 현대건설 작업진은 폭 45m, 높이 27m, 길이 322m의 대형 유조선 탱크에 물을 집어넣어 가라앉혔다. 배는 아직 메우지 못한 방조제의 틈을 서서히 막아주었다. 물살이 잦아들자 수많은 바위덩어리들로 완전히 막아 방조제가 완성되었다.

     

    이로써 공사기간은 무려 3년이나 단축됐고, 공사비도 290여억 원이나 절감했다. 이른바 ‘정주영공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정주영공법으로 새로 생긴 땅은 여의도의 33배에 이르고, 전북 김제 만경평야보다도 넓은 새 땅을 대한민국 국토에 덧붙여 지도를 고치게 했다.

     

    이 사건은 미국 뉴스위크와 뉴욕타임즈에 소개되는 등 전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