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세-에너지-환경세-주행세-교육세' 이어 부가세까지
  • ▲ 주유소 자료사진.ⓒ뉴데일리
    ▲ 주유소 자료사진.ⓒ뉴데일리


    국제유가(Crude Oil)가 하락세를 지속하면서 휘발유값 하락에 대한 소비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가 하락 폭과 달리 휘발유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자,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정유사의 폭리'라는 음모론까지 등장한 상태다.

    하지만 휘발유 가격이 비싼 이유는 정유사가 아닌 정부의 세금 문제다. 휘발유에 부과된 세금이 유가 하락과 관계없이 늘 동일하기 때문에 국제유가의 하락폭과 연동될 수 없다. 또 현재 거래되는 국제유가의 적용시기가 한달 뒤라는 것 역시 소비자 체감을 어렵게 한다.

    22일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434원. 최근 국제유가는 배럴당 30달러 수준에서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평균 국제유가는 90달러. 당시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769원이었다. 

    지난해 보다 올 국제유가가 60% 이상 떨어졌지만, 휘발유 가격은 고작 19% 밖에 반영되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많을 수 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휘발유 1ℓ에 부과되는 세금이 '종량세'라서 원유 가격 하락과는 무관하게 늘 일정한 금액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휘발유나 국제유가에 상관 없이 정부는 ℓ당 900원 이상의 세금을 부과한다. 정유사가 폭리를 취한다는 이야기는 아무런 근거 없는 음모론일 뿐이다.

    휘발유가 1400원이라면 정부 몫인 900원의 세금 부분을 제외한 500원. 이중 생산비용과 관리비용, 그리고 전국 주소의 유통마진등이 포함되는 만큼 정유사의 몫은 훨씬 더 줄어들게 된다.

    정유사는 국제 원유 시장의 흐름에 따라 가격을 반영해 왔지만, 정부는 세금을 유가 변동과 관계없이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시장에서 싸게 물건을 살 권리가 있는 소비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 ▲ 2015년 예산안.ⓒ기획재정부
    ▲ 2015년 예산안.ⓒ기획재정부



    정부가 휘발유를 비롯한 정유사 석유제품에 높은 세금을 책정하는 것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올해 376조를 예산으로 사용한 정부는 전체 세수의 8% 이상을 정유사로부터 거둬들이고 있다. 회사 운영에 따른 법인세와 원유 수입에서 부과되는 관세를 제외한 순수 석유제품 판매 수입에서 정부가 거둬들이는 돈이 23조원이 넘는다.

    정부는 휘발유에 ▲교통·에너지·환경세 ▲주행세 ▲교육세 등을 일괄 부과한다. 또 주유소에서 소비자가 차량에 휘발유를 채우는 순간 10%의 부가가치세가 더 늘어난다.

    정부가 휘발유에 부과한 교통·에너지·환경세로 벌어들인 세수가 13조9000억원. 이 금액은 정부가 사용하는 재난· 안전 1년치 예산, 일자리 창출 1년치 예산과 비슷한 규모다. 또 문화체육관광과 환경에 쓸 1년치 예산을 합친 금액 보다 크다. 별다른 소비자 저항과 정책 고민 없이 쉽게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을 정부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ℓ당 1434원에 거래되는 휘발유는 ℓ당 1765원인 콜라 보다 더 저렴하다. 휘발유에 세금이 없다면 사실 정유사는 생수 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휘발유를 판매할 수 있다. 리터당 800원 정도에 거래되는 생수 보다 300 이상 저렴한 가격인 500원이 휘발유의 세전 가격이기 떄문이다.

    국제유가가 20달러 선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잇따르고 있다. 이미 30달러 선으로 떨어진 상황이지만 석유를 팔아야만 살림살이가 가능한 산유국들에게는 당장의 손해 보다 미국의 셰일가스(천연가스)와의 에너지 주도권 경쟁이 더 중요하다.

    국가의 운명을 건 석유가 가스에게 자리를 내준다면 산유국들은 줄줄이 도산할 수 밖에 없다. 벼랑 끝으로 몰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산유국들은 이미 과잉공급인 시장에 더 많은 원유를 생산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생산할 수 밖에 없다.

    알래스카의 여름 처럼 당분간 지속될 저유가 흐름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정부 세금 정책으로 국내 소비자들이 저유가 상황을 체감할 수 없는 구조다.

    지난해 유가 급락으로 발생한 수조원대의 손실은 국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연말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 정유사들의 고민만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