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건축법 구별도 못하는 경찰-구청…"불법 집회 수수방관"앞에서 정의 외치고, 뒤에선 불법… "법, 엄격히 적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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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희 기자.


    반올림이 삼성본관 앞에서 200일 넘게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농성이 실질적으로 사유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은 지난해 말부터 204일째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부지 내에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경찰에 집회 신고를 마친 합법적인 집회로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법 정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반올림의 농성장 자리는 현재 건축법상 '공개공지'로 지정돼 있다. 공개공지는 연면적의 합계가 5000㎡ 이상인 문화 및 집회시설, 종교시설, 판매시설 등을 지을 때, 대지면적의 10% 이하 범위로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휴식 공간을 말한다.

    삼성은 본관 건물을 올리면서 이 땅을 공개공지로 풀었다.

    공개공지로 정해진 땅에는 건축법에 따라 적재물을 쌓아둘 수 없다. 시민들이 오가는 데 거치적거리는 울타리와 같은 물건도 세울 수 없다. 시민 다수가 문화행사를 열더라도 60일을 넘겨선 안 된다.

    시민 모두에 개방된 쉼터를 특정인이나 단체가 무단 또는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같은 이중삼중의 제재 조치를 마련했다.

    그런데 반올림은 이곳을 제집 마냥 쓰고 있다. 이들 제재 조항을 적용하면 모두 걸릴 수밖에 없는 데도 해당 감독 당국들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버젓이 불법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건축법 중 어떤 법을 우선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가 없어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관할 지역 구청 역시 경찰에서 허락한 집회이기 때문에 마땅히 막을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경찰에게 돌리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법이 충돌하면 판례를 따르는데 집시법과 건축법에 대해선 아직 그런 내용이 없다"며 "공중이 통행하는 인도에서 하는 집회도 법에서 허가하는 만큼 반올림 농성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안을 바라보는 법조계의 시각은 다르다. 집시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도 다른 실정법이 보호하는 법익을 침해한 사실이 있다면, 해당 집회를 적법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회 신고가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해도, 해당 집회 참가자들의 소란행위로 인근 상가에 입점한 점포들이 매출 하락 등의 피해를 입었다면 민법상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책임(같은 법 750조 이하)이 발생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집시법과 건축법은 법률이 보호하는 법익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두 법의 우열을 따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집시법이 공공의 질서와 안녕 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특별법이라면, 건축법은 부동산과 관련된 행정행위를 다루는 특별법이다.

    최진영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전 대변인)는 "집시법과 건축법은 일반법과 특별법 관계로 볼 수 없다"며 "서로 완전히 다른 영역의 법이어서 집시법은 경찰이, 건축법은 구청이 판단해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올림이 삼성의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삼성은 공개공지 명목으로 땅만 내줬을 뿐 여전히 법적인 소유권을 쥐고 있다.

    최 변호사는 "집회 신고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도 의심스럽다"며 "비록 공익적인 차원에서 제공하는 땅이라고 해도 특정 단체가 허락 없이 쓰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건축법을 어겼는데도 집시법만 바라보고 법 집행을 주저하는 관계 당국의 미온적 태도 탓에 반올림만 활개를 치고 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실장은 "경찰과 구청의 뜨뜻미지근한 법 적용이 사회 질서만 어지럽히고 있다"며 "반올림도 앞에선 정의를 외치면서 뒤에선 작은 법이라고 무시한다면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