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학계 “시대 역행한 퇴행적 발상” 성토
  • ▲ 박원순 서울시장.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 등 서울시 산하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근로자이사제 도입 논란이 서울시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시대를 역행한 퇴행적 발상"이란 비판이 나오면서,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박원순 시장이 노동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공업 및 산하기관)이사회와 근로자간 소통이 원활해져 사회갈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며, 근로자이사제를 서울메트로-도시철도공사 통하 법인은 물론 시 산하기관 15곳에 전면 시행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근로자이사제 도입 결정은 ‘강행’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제도는 서울시의 대표적 공기업인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를 산하기관 구조조정 차원에서 통폐합하기로 하면서, 통합에 반대하는 노조를 위한 ‘당근’으로 처음 제시됐다.

제도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하자마자 경영계는 즉각 반발했다.

가뜩이나 정치성이 강한 강성노조에게 ‘경영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준다면, 조직의 군살을 빼 경영을 효율화한다는 ‘공기업 구조조정’은 먼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반대의 주요 이유다.

이미 노동계는 근로자이사제를 통해 공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성과연봉제- 공정인사제’ 시행을 막겠다는 의사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학계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근로자이사제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이 20여년 전부터 도입한 선진화된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제도를 처음 도입한 독일 내부에서조차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크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학계는 독일의 경우 주요 경영사안에 대한 의결 지연 등 근로자이사제 도입에 따른 역기능이 심각해지자, 철도부분을 완전히 민영화하는 등 노동자 권익보호’보다는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며, “박원순 시장이 시대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위기에 직면에 공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한 일부 국가는 제도 폐지를 심각하고 고민하고 있다”며, 박원순 시장의 근로자이사제 강행 추진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 각국이 도입한 근로자이사제는 근로자에게 ‘경영 참여’가 아닌, ‘감독 참여’를 보장한 것"이라며, 박원순 시장이 도입을 강행하고 있는 근로자이사제는 유럽에도 없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근로자이사제는 법률을 근거로 하고 있으나 서울시는 상위법이 없는 상태에서 조례만을 근거로 하고 있다며, 입법의 정당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크다고 덧붙였다.

현재 공공기관의 경영에 노조 혹은 근로자의 참여를 의무화한 법령은 없다. 때문에 근로자이사제 도입을 추진한 노사정 대표단도, 새로 서울시 조례를 제정해 법률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허점을 메운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근로자이사제 도입이 단순히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만으로 가능한 사안인지는 법리적으로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벌써부터 제도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견해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해당 제도의 위헌 여부를 떠나, 노조의 경영참여를 의무화한 근로자이사제 도입은, ‘공기업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시대착오적 결정이란 비판이 적지 않다.

공기업 구조조정은 대다수 국민들의 바라는 요구사항이라는 점에서, 박원순 시장의 근로자이사제 도입 강행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런 문제들은 3월28일 정책연구를 주로 하는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토론회를 통해 이미 논의됐다. 
당시 서울시 노동전문관은 토론회를 지켜 본 뒤, “서울시는 노조의 경영참여를 법제화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없으며, 관련 제도 도입 여부는 검토 중에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서울시 노동전문관은 “연구진들이 유럽 각 국가를 직접 방문하는 등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했으며, 유럽의 다수 국가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서울시 노동전문관은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노조가 아닌 근로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라며,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는 이상 해당 근로자는 노조원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노동전문관의 반론에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조동근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경영에 참여하는 근로자가 형식적으로 노조원이나 아니냐는 지엽적인 문제”라며, “통합 예정인 공공기관의 경영에 노조의 참여를 의무화하겠다는 기본 방침은 바뀐 게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노조의 경영차여를 법제화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없다는 서울시 노동전문관의 해명은, 박원순 시장이 제도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빈말이 됐다.

박 시장을 지지하는 일부 진보성향 매체를 제외하고, 근로자이사제 도입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 언론은 없다. 학계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평소 여론의 흐름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는 박원순 시장이, 근로자이사제 도입을 둘러싼 부정적 기류를 모를리 없는데도, 제도 추진을 강행하면서 그 배경에 대한 다양한 추론도 나오고 있다.

‘경영참여’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노동계의 입장에서 볼 때, 근로자이사제 도입 소식은 낭보다. 따라서 박 시장이 재계와 학계의 비판을 누르고 제도 도입을 강행하는 모습은 노동계의 마음을 얻는데 있어 호재임이 분명하다.

박원순 시장의 근로자이사제 도입 강행을 두고 “대권을 향한 노림수”, “정치적 승부수”와 같은 해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슷한 측면에서 박 시장이 근로자이사제 도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 문제가 정치쟁점화될 경우 ‘선점효과’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박원순 시장이 말씀하신 근로자이사제는 유럽과 같이, 노사의 협치가 가능한 ‘이상적인 노사관계’ 아래서는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투쟁과 거리투쟁 일변도의 강성노조가 주류인 우리 현실을 고려하면 도저히 맞지 않는 제도”라고 말했다.

박주희 실장은 “근로자이사제는 노사간 소통이 아닌, 노조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창구가 될 수 있다. 강성노조의 정치적 권력만 키워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박주희 실장은 박 시장의 근로자이사제 강행 추진이 ‘공공개혁 발목잡기’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에 따르면 근로자이사제가 우선 도입되는 15개 공기업 및 출연기관은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SH공사, 시설관리공단, 서울의료원, 세종문화회관, 농수산식품공사, 신용보증재단, 서울산업진흥원, 서울디자인재단, 서울문화재단, 시립교향악단, 서울연구원, 복지재단, 여성가족재단 등이다.

제도 도입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위 공기업 및 공공기관은 10월쯤 각 기관 별로 1~2명의 비상임 근로자 이사를 선임한다. 임기는 3년이며, 예산과 사업계획, 정관개정 등 주요 경영사안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