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지엠의 차기 CEO가 철수설 진위 파악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이르면 이번주, 늦어도 다음주쯤에는 제임스 김 사장의 후임자를 선임해 판매 부진과 노사 문제, 철수설 등 당면한 현안들에 적극 대처할 예정이다.

    이번 인사에 이목이 집중된 것은 한국지엠(한국GM) 철수설이 자동차 업계에 큰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잊을만 하면 반복되는 단골 시나리오다. 매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럴듯한 근거가 있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우선 GM이 2002년 당시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향후 15년간 경영권을 유지하겠다는 기한이 오는 10월로 끝난다. 당시 GM은 산은에게 한국지엠 이사회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비토권(Veto, 특별결의 거부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2009년 유상증자 과정에서 산은 지분이 28%에서 17.02%로 줄어 비토권이 없어졌다. 이에 2010년 GM은 산은이 보유한 지분 17.02%로도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추가 합의했다. 오는 10월 16일이면 해당 합의가 만료된다.


    즉, GM이 한국지엠 지분을 처분하고 '철수'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려도, 이를 견제하고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최근 산은에서 나온 우려다. 현재 GM은 한국지엠 지분 76.96%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KDB산업은행은 17.02%로 2대주주이고, 상하이자동차도 6.02%를 갖고 있다.


    문제는 GM이 한국에서 철수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지엠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자꾸 철수설이 나오는 것은 GM한테 한국에서 빨리 떠나라고 등떠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계속 자동차를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GM을 향해 때마다 철수설을 꺼내는 것처럼 모순된 일은 없을 것이다.


    GM과 산은이 비토권 연장이라는 추가 합의를 할지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비토권 이외에도 산은이 GM을 견제할 장치가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한다는 게 한국지엠 관계자의 설명이다.


    산은의 비토권 언급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자칫 GM이 철수할 경우 2대주주로서 이를 막지 못했다는 국민적 비난을 의식,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밑밥을 깔아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보다는 한국지엠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2대주주로서 산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지엠은 올 뉴 크루즈와 스파크 등의 판매가 부진하면서 내수시장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6년부터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가 철수하면서 수출 실적은 3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순손실이 6300억원에 이른다. 3년간 누적적자 규모는 2조원에 육박한다.


    최근 제임스 김 사장이 오는 9월 1일부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대표 및 회장에 취임하기 위해 8월 31일부로 돌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위기 상황에서 갑자기 사임하겠다고 하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말을 갈아 탄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철수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꼴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지엠 노동조합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는 변화가 없다. 올해 교섭에서도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어 임금협상의 난항이 예상된다. 노조 역시 상황의 엄중함을 깨닫고 파업 같은 공명의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노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지엠의 이같은 상황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고, 최대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수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와 불안감이 자동차 업계는 물론 산업계에 팽배해지고 있다. 올해 1~7월까지 한국지엠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약 8%이다. 10대 중 1대 정도는 한국지엠 차량인 셈이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매출 12조23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 10조원이 넘는 대기업이어서 만약 국내에서 철수하면 큰 파급력은 엄청날 수 밖에 없다. 고용 인원도 1만6000여명에 달해 일자리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다. 부평을 비롯해 군산 등 각 공장이 위치한 지역경제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지엠의 철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우려는 제임스 김 사장의 후임자로 누가 올지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새로운 한국지엠의 사장이 구조조정 및 재무에 정통한 인물이라면 철수설을 뒷받침할 사전 작업의 일환이라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판매 및 노사 베테랑이라면 철수설은 넣어두는 것이 맞다고 본다. 판매 부진과 노사 갈등이 한국지엠의 고질적인 문제라는 인식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임자가 새 CEO가 될 경우 GM의 진정성을 더 이상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해외에서 잇따라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GM의 행보가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GM 역시 한국 소비자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줄 수 있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비토권 등 한국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이유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다. 조기에 적절한 새 CEO가 선임돼 철수설을 잠재우고, 한국지엠이 하루빨리 안정화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