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정치권·시민단체와 갈등 '답보'내년 지방선거에 장기 표류·사업 무산 우려도
  • ▲ 경남 김해시청 앞에 김해신공항 건설 반대 대책위원회가 내건 김해신공항 결사반대 현수막. ⓒ연합뉴스
    ▲ 경남 김해시청 앞에 김해신공항 건설 반대 대책위원회가 내건 김해신공항 결사반대 현수막. ⓒ연합뉴스


    "해외시장은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고, 몇 년간 기댈 언덕이었던 분양시장도 우려가 큰 상황입니다. 내년 SOC예산 감축까지 있어 대형 사업인 공항 프로젝트가 한 줄기 빛이 될 줄 알았는데, 사업팀에서 사업성 평가조차 못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공항건설 실적이 있는 대형건설 A사 관계자)

    서서히 발주가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됐던 대형 공항 프로젝트들이 제자리걸음 중이다. 지역민의 거센 반대가 있는가하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치권과의 이해관계도 엮였다. 하릴없이 시간만 흐르다보니 공항 건설 추진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배고픈 건설업계는 지붕만 쳐다볼 처지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제주 제2공항 프로젝트의 경우 지역민과의 갈등으로 국토교통부가 마련한 간담회(8월), 서귀포시가 주관한 설명회(9월)가 모두 파행을 겪고 있다. 여기에 최근 제주도가 국토부에 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도는 해당 공문에 제2공항 찬성 여론이 63.7%에 달한다는 점을 적시했지만, 설문조사 자체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 '제2공항 전면 재검토 도민행동'의 설명이다.

    도민행동은 "도가 설문지 작성 과정에서 보기를 찬성과 반대만으로 제시해 공항 인프라 확충에 대한 다양한 선택을 막아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 결과의 핵심은 일방적으로 진행된 제2공항 건설 과정을 중단하라는 것"이라며 "제2공항 부지 선정 과정의 부실용역 문제와 도의 항공정책·관광정책 문제에 대해 정부가 조속히 해결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영남권 신공항을 두고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며 전국적 관심을 모았던 김해신공항 프로젝트는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당시 경합을 벌였던 지역에서 김해신공항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면서다.

    김해의 소음피해지역 주민과 지역 정치권은 김해신공항 활주로가 'V'자형으로 건설될 경우 이륙 항공기가 김해시가지 상공을 통과하게 돼 소음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해시가 경남발전연구원을 통해 실시한 소음영향평가 용역 결과를 보면 김해신공항 활주로 확장으로 인한 소음피해지역은 현재 2.0㎢에서 12.2㎢까지 6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피해지역 인구수도 8만6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문제는 최근 김해와 거제 지역 정치권을 비롯해 일부에서 김해신공항 '소음피해' 등을 이유로 가덕신공항 재추진을 주장하고 나섰으며 대구시도 김해공항 확장만으로는 '관문공항'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등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 15년간 빚어온 갈등을 겨우 봉합하고 확정 지은 김해신공항 건설을 반대하고, 가덕신공항 건설을 다시 언급하면서 갈등을 촉발시키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ㄷ고 일부 정치권에서 선거 쟁점으로 이용하려는 꼼수"라며 "지금은 김해공항을 명실상부한 영남권 신공항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모을 때"라고 밝혔다.

  • ▲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 성산읍대책위원 등이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저지를 위해 지난 10일부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 성산읍대책위원 등이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저지를 위해 지난 10일부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도심의 민간공항(대구공항)과 K2공군기지를 경북 지역으로 이전하는 대구 통합신공항 건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정부는 영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하고 그 대안으로 김해신공항과 대구 통합신공항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구 신공항의 경우 1년이 지나도록 이전부지 선정조차 못 하는 등 답보 상태에 놓였다.

    게다가 우력 후보지로 거론되던 경북 군위군에서는 통합신공항을 반대하는 시민대책위원회가 김영만 군수를 '주민소환'하는 사태까지 발생해 사업 추진에 강력한 제동이 걸렸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대구시와 시만 단체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시가 다양한 찬반 여론을 무시하고 공항 통합이전만 강행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시는 현실적이고 가능성 높은 방안은 통합이전뿐이라며 맞서고 있다.

    건설협회 한 관계자는 "정부가 통합신공항 추진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서 지역 내 갈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조속한 사업 추진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지역 갈등이 더 확산되기 전에 올 연말까지는 이전부지를 반드시 확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자 국책 공항건설 사업 일정이 추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행정적 절차와 법적 결정을 미룰 가능성이 커지면서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는 문재인 정부의 중간 평가 성격이 짙은데다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 승리로 보수 부활을 노리고 있는 만큼 여야 모두 사활을 걸 게 분명하다"며 "내년 초부터 선거 정국에 돌입하면 이들 사업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올해에 이어 또 다시 장기 표류한다면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지부진한 공항 사업들은 한껏 기대감이 부풀었던 건설업계에도 비보다. 통상 공항 공사기간이 5년인 점을 감안하면 몇 년간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원이 될 수 있을뿐더러 공항과 연결된 고속도로·교량·철도 등 대형 토목공사가 이어질 개연성도 높다. 또 그에 따른 시설 유지·보수 등 수요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공항건설 실적이 있는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공고가 나오면 입찰할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발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우려되는 수주절벽에 기대할 수 있었던 대형 프로젝트들이 제자리걸음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중견건설 C사 관계자는 "대형 국책사업인 만큼 어느 정도 이견은 있을 것으로 예상은 했었다"며 "일정이 불확실할 뿐 예산은 잡혀있는 만큼 발주를 대기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