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뇌물사건' 항소심 심리 종결… 특검, 1심 동일 형량 구형결정적 근거 부족에도 '유죄' 고수… '객관적 시각-중립적 자세' 아쉬워


  • "피고인 이재용 징역 12년, 피고인 박상진 징역 10년, 피고인 최지성 징역 10년, 피고인 장충기 징역 10년, 피고인 황성수 징역 7년"

    삼성 뇌물사건 항소심 공판이 지난 28일 특검의 구형을 끝으로 모든 심리가 종결됐다. 지난 9월 28일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지 91일만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에게 1심에서와 동일한 형량을 구형했다. 17차례의 항소심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의 유·무죄 입증을 위한 치열한 법리다툼이 이어졌지만 결국 반전은 없었다. 이번엔 재산국외도피 혐의 금액 78억9430만원이라는 추징금도 따라붙었다.

    이날 논고문을 읽는 박영수 특검의 목소리에는 피고인들의 죄를 엄중히 묻고 처벌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논고문 속 내용은 정작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논고문에 담긴 '정경유착의 전형', '재벌총수와 정치권력 간 검은거래',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모독' 등 해당 사건을 지칭하는 문구들은 졸지에 피고인들을 대역죄인의 신세로 만들어버렸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모관계부터 승마지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등 혐의가 어느 하나 명확히 입증된 것이 없음에도 말이다.

    엄격한 증거조사에 입각해 증거의 분석에 정확성을 기하려 했다는 특검의 발언은 1심에서부터 70회 가량의 공판을 유심히 지켜봐 온 이들에게 혼란만 가져다 주었다.

    약 1년간의 공판 과정에서 수많은 국내외 언론이 지적한 '결정적 증거의 부재' 및 삼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근거없는 비판으로 전락했다. 특검과 변호인단 못지 않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공판 내용을 살피고 분석한 이들의 목소리를 특검은 단순히 재판에 영향을 끼치려는 여러가지 시도로 치부해버렸다. 

    헌법재판소도 인정한 '정부의 강압에 따른 기업들의 피해' 역시 특검의 시선엔 단지 재벌과 정치권력 간의 '검은 거래'에 불과했다. 삼성에만 유독 엄중한 잣대를 들이민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쯤되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바로 잡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은 오로지 피고인들을 구속시키기에만 혈안이 된 모습으로 비춰질 뿐이다. 그토록 중시했다는 중립적 자세와 객관적 시각도 행방이 묘연하다.

    지난 3월 특검은 이번 사건을 두고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에 걸맞게 1심에서는 53차례, 2심에서는 17차례 정식 공판이 열렸으며 증인으로 출석한 이들만 70여명에 달했다. 공판 진행 과정에서는 3400여개에 이르는 증거와 수만 페이지의 증거기록들이 제시되는 등 국내외 정·재계와 언론, 국민들 사이에서 뜨거운 이슈로 자리했다.

    수많은 관심 속에 시작된 '세기의 재판'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를 드러냈다. '여론 재판', '맹탕 재판', '끼워맞추기 재판' 등이 당초 명성을 대신했다. 길고 긴 법정공방 끝에 남은 초라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특검은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항소심 구형의견에서 '피고인들이 진실을 외면해 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부각시켰다.

    국민적 여망을 앞세우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항소심 공판에서도 피고인들의 유죄를 인정할만한 어떠한 사실관계가 입증되지 않았지만, 어느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삼성 뇌물사건은 내년 2월 5일 재판부의 최종 선고만을 남겨두고 있다.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1심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가 더 이상 말 뿐이 아닌 '증거재판주의-무죄추정의 원칙'의 의미를 되새겨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