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공공기관 230여곳, 비용 부담 한숨 공기업 '質 보다 量', 민간기업 정부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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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이 한마디에 각종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8개월여가 흐른 지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이슈는 우리 사회의 또다른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첫 단추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제로화' 1호 공공기관인 인천공항공사는 정규직화 논의 과정에서 일어난 노조와 사측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으로 몇차례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노조 지도부가 정규직 노조원들의 불신임을 받아 사퇴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면서 결국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의 '연내 100% 정규직 전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정 사장은 문 대통령 방문 당시 "공항 가족 1만명 모두를 금년 내(2017년)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나마 지난해 말 정규직 전환 방안에 대한 노사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인천공항공사 노사는 지난해 12월26일 소방대·보안검색·보안경비 3000명은 인천공항공사가 직접고용하고 나머지 7000명은 공항운영과 시설·시스템 관리 등 2개 별도법인을 설립해 고용키로 합의했다. 정규직 전환 완료 시점은 정 사장이 약속한 날보다 1년 미뤄진 올해 말까지로 했다.

     

    그럼에도 아직 넘어야 할 난관은 적지 않다. 정규직화에 따른 임금 체계와 채용 방식이 대표적이다. 현재 인천공항공사는 기존 수준의 임금을 설계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조는 임금 인상을 포함한 처우개선 요구하고 있다.

     

    채용 방식을 두고도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간 이견을 보이고 있어 합의점 도출까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현재 정규직 노조는 시험을 통해 입사해야 한다는 '완전 공개채용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조는 "별도 절차 없이 직접고용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정규직화 추진 과정에서 초래되는 갈등은 인천공항공사만의 사례는 아니다. 한국마사회와 서울교통공사,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도 가시밭길을 걸었다.

     

    공채 과정을 뚫고 입사한 기존 정규직 직원들이 "특혜성"이라며 반대를 표하는 가 하면, 정규직 전환 대신 해고를 통보해 비정규직 직원들의 반발을 사는 일도 있었다. 농협중앙회의 경우엔 계열사별 업무 성격과 고용 형태가 달라 논의가 길어지면서 정규직 전환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앞서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5월 범농협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하고 26개 계열사 비정규직 5200여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키로 했다.

     

    이와 관련 도로교통연구원 박지호 선임연구원(경영학 박사)은 "공공기관에서 발생하는 노사갈등은 정부의 양보와 노동자의 이해를 통해 충분히 조정이 가능하다"며 "물론 각자의 이익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공공성과 미래 관점에서 해결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노노갈등은 공정성이라는 관점에서 심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정규직이 양보해야 된다', '정규직화되는 비정규직이 양보해야 된다' 등 갑론을박이 있다"며 "현재의 비정규직이 만들어진 것은 과거 정부에서 재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정부가 중재 노력을 해야하고, 정규직의 이해와 정규직 대상자들의 양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 지난해 6월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지난해 6월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정상윤 기자

     

    노노‧노사 간 갈등뿐 아니라 공공기관이 재정 부담을 이유로 청년 신규 채용을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공공부문 852개 기관에 근무하는 인원은 총 184만명으로 이중 비정규직 근로자는 31만여명(기간제 19만1000명, 파견·용역 12만1000명)이다. 이들 모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엔 약 4조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공공기관 332곳 가운데 230곳이 적자일 정도로 경영 상태가 좋지 않다.

     

    파이터치연구원 김강현 연구위원(행정학 박사)은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일자리 질을 높이기 위해 추진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책적 쟁점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공정경쟁의 큰 틀에서 능력을 바탕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리한 정규직 전환 추진은 현 세대의 고용안정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지언정 미래세대엔 그만큼 좁은 취업문으로 큰 장벽이 될 수 있다"며 "이런 비정규직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면 정권의 큰 업적으로 남지만 공정경쟁 원칙을 훼손한 대가는 국민전체가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은 민간부문에 큰 제도적 압력(Institutional Pressure)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공기업 등 공공부문이 앞장서 정규직 전환을 하게 되면 정책학적으로 강제적 동형화(Coercive Isomorphism)를 촉박하게 돼 민간기업들은 눈치를 보게되고 어쩔 수 없이 이러한 형태를 따르게 되는(동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결국 중요한 건 '사회공공성'과 '시장자율성' 간 저울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시장자율성과 사회공공성을 대립적 관계로 규정하고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면 자율성과 공공성 모두를 잃을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새로운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선임연구원은 "비정규직이라는 단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선진국에선 비정규직이 오히려 더 많은 임금과 혜택을 보고 있는데, 이는 고용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에 기여를 하고 이에 대한 임금 이외의 과실을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향후 파견직과 용역직 등 비정규직에 대한 다양한 용어 정리와 함께 사회적 제도와 의견을 통해 비정규직에 대한 실질적인 개념과 대우, 지원 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