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승계 등 포괄적 현안 대한 '묵시적 청탁' 증거 없어"재산국외도피 '무죄'… '석방' 이끈 결정적 요인종잇조각 된 특검의 히든카드…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배제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뇌물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으며 영어의 몸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2월 17일 특검에 구속된 이후 353일만에 석방되면서 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지난 5일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공여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 위증 등 혐의에 대해 대부분 무죄를 선고했다.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1심 재판부의 법리 해석을 사실상 뒤집은 셈이다.

    특히 뇌물죄의 근거가 된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점과 재산국외도피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인정한 점이 감형의 주된 요인으로 풀이된다. 

    "'묵시적 청탁' 인정 안돼"… 완전히 뒤집힌 '1심' 논리

    이날 재판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1심이 유죄의 핵심 근거로 내세운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이다. 

    앞서 1심은 개별 현안 모두에 대해 명시적·묵시적 청탁이 인정되지 않는다면서도 승계작업과 관련해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며 뇌물죄를 인정했다. 때문에 항소심 재판부가 이 같은 1심의 판단을 뒤집을 수 있을지 여부는 재판의 가장 큰 쟁점으로 분류돼왔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은 명확하게 관련 증거에 의해 합리적 의심없이 인정돼야 한다"며 "특검의 주장과 같이 안정적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성을 갖는 개별 현안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의미의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괄적 현안으로 승계작업을 추진했다고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전제로 박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을 인식했다거나,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승마와 영재스포츠센터 등을 지원한다는 묵시적 인식과 양해, 묵시적 청탁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성을 갖는 작업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점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 작업이 있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점 ▲승계 작업이 존재하더라도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점 ▲박 전 대통령이 승계 작업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 등이 뇌물죄 판단의 핵심 근거로 작용했다.

    재산국외도피 '무죄'… '석방' 이끈 결정적 요인

    1심과 달리 재산국외도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인정한 점 역시 감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특히 재산국외도피죄의 경우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5가지 혐의 가운데 가장 무거운 형량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관련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삼성전자 명의의 독일 하나은행 계좌로 송금한 42억원에 대해선 무죄를 인정했지만, 코어스포츠로 보낸 용역대금 37억원에 대해선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37억원의 용역대금과 관련한 1심의 판단을 지적하며 79억원의 재산국외도피 금액 전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용역대금은 뇌물수수자인 최씨가 해외에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임의로 지배했을 뿐, 뇌물공여자인 피고인들이 용역대금에 대해 지배·관리했다고 볼 수 없다"며 "용역대금은 단지 뇌물공여 장소가 해외일 뿐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킬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 독일 계좌로 송금된 42억원 상당에 대해서도 예치사유에 어떠한 허위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무죄를 인정했다. 앞서 특검은 해당 금액이 최씨의 딸 정유라의 마필 구입을 위한 비용임에도 이를 숨기기 위해 삼성전자 승마단 선수들의 해외전지훈련 용도로 허위 신고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재판부는 "예치사유는 삼성전자 승마단 소속 선수들이 독일 전지훈련에 필요한 마필 및 차량 구입 명목이 아닌 우수 마필 구입으로 기재돼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사용됐기 때문에 예치사유에 허위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종잇조각 된 특검의 히든카드…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배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과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일지 등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점도 감형의 주요 근거로 작용했다. 특검은 해당 수첩과 일지를 이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을 입증할 핵심 증거로 앞세워 왔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증거능력을 상실하면서 그간의 주장도 힘을 잃게 됐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처럼 수첩에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내용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대화가 기재돼 있다는 그 자체를 들어 대화 내용을 인정할 간접사실에 대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면 전문증거가 우회적으로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며 "이는 전문법칙의 취지를 잠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안 전 수석의 수첩은 기재 존재에 관해서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지만 내용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간접증거로도 사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항소심에서 특검이 결정적 증거로 내세운 '0차 독대'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검은 기존 1차 독대보다 사흘 앞선 2014년 9월 12일 청와대 안가에서 추가 독대가 있었다는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의 진술 등을 근거로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뇌물수수합의가 이뤄졌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결심공판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선 해당 내용을 추가해 4번째 공소장 변경에 나서는 등 혐의 입증에 무게를 뒀지만, 재판부가 독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재판부는 "김건훈 전 행정관의 일지에 삼성의 독대 일정이 기재된 점과 안 전 비서관이 항소심에서 독대와 관련해 구체적 진술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김 전 행정관의 일지는 안 전 수석의 지시에 따라 사후에 작성된 것으로 신빙성을 확인하기 어렵고 대통령 경호처 역시 이 부회장의 안가 방문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 전 비서관이 이 부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명함의 존재도 확인되지 않으며. 실제 독대가 있었다해도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전혀 입증되지 않아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