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관이 조사받느라 더 바빠

"시간이 부족해요"… 경찰·감사원 조사에 BMW 결함진단 하세월

여론 의식 국토부 "연내 완료"… 졸속 결과 나오나 우려도

임정환 기자 프로필보기 | 2018-08-10 18: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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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난 BMW 차량.ⓒ연합뉴스


조사할 사람이 조사받느라 더 바쁘다면? 정부가 비엠더블유(BMW) 차량 화재사고의 원인 분석에 박차를 가해 올해 안에 조사를 끝마칠 방침이지만, 조사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에 사정 당국의 조사까지 겹쳐 이중고를 호소한다.

정부가 국민 불안을 의식해 조사 기간 절반 단축카드를 꺼낸 가운데 졸속 조사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8일 경기 화성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하 연구원)을 찾아 BMW 차량 화재사고 조사 상황을 점검했다.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제기된 모든 원인을 조사하고 올해 안에 최대한 완료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국토부는 사고 조사·분석에 통상 10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일각에선 국토부 생각대로 연내 제대로 된 조사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사현장의 여건을 고려할 때 녹록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현장에선 먼저 전문조사 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연구원 조사인력은 13명이다. 정보분석 인력까지 포함해도 22명쯤이다. 국민적 관심은 커지고 현장에 일손은 달리다 보니 담당 부서장까지 현장에 출동해 직접 사고 차량을 살피는 처지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려진 바로는 미국의 경우 조사관 1명이 연간 처리하는 조사 건수는 0.4건쯤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3배에 달하는 1.4건을 소화한다. 국토부는 조사인력을 내년 상반기까지 35명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관련 업계에선 이마저도 최소한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인력 확충을 장담하기도 쉽지 않다. 칼자루를 국토부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어서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매해 결함조사 인원 확대를 요구한다. (기재부에서) 조금씩 늘려주고는 있으나 늘 몇 명 수준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엔 국가적 사태가 됐으니 기대를 한 번 걸어본다"고 덧붙였다.

인력 충원이 언제 얼마나 이뤄질지 알 수 없어 이번 BMW 사고조사는 사실상 현재의 인력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민간 전문가 등이 조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사업무 과부하는 국토부가 지난 5일 낸 보도참고자료를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국토부는 연구원에 무상점검·수리내용 자료만 월 100만건쯤 수집된다고 부연했다. 기술정보자료는 500건쯤, 화재·사고 관련 기술자료도 150건쯤 들어온다.

새 차 구매 후 고장이 반복되면 교환·환불받는 일명 '레몬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가운데 중대한 하자 등에 관한 세부 사항도 연구원의 업무에 포함됐다.

설상가상 조사에만 전념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조사관들은 경찰과 감사원 등 사정 당국의 조사를 받거나 수사에 협력해야 할 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BMW 피해자 모임' 회원 20여명은 지난 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요한 에벤비힐러 본사 품질관리부문 수석 부사장과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 등 BMW사 관계자들을 고소했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BMW가 2년 반 가까이 실험만 하면서 결함 여부를 결론 내리지 못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수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사건을 지능범죄수사대에 배정했다. 경찰은 국토부 등 관련 기관과 함께 제기된 결함은폐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결함조사를 진행하는 틈틈이 경찰 수사에도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사협조뿐 아니라 감사원 감사도 받아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조사만 하기에도 바쁜데 감사원 조사까지 받는 상황"이라며 "이런 얘기가 보도되면 해명자료를 만드느라 시간을 또 뺏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김 장관은 지난 3일 자신의 이름으로 낸 정부 입장 발표문에서 "지금까지 정부 기관과 BMW의 대응과정이 적절했는지도 함께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와 학계 일각에선 정부가 뿔난 민심을 달래려고 성급하게 조사 기간 단축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내야 하는데 시간에 쫓겨 보여주기식의 졸속 결과가 도출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사람들이 리콜과 관련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면서 "현재의 리콜 체계는 선조치 후확인"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제작사를 믿고 먼저 조치한 이후 철저한 원인조사를 통해 확인하는 체계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 지목되는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결함은 BMW 측의 추정일 뿐으로) 원인을 모르니 운행 정지를 못 시킨다"면서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모든 BMW 차량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긴급안전진단을 받지 않았거나 진단 결과 위험하다고 판단된 BMW 차량에 대해선 운행정지명령 발동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조급증을 보인다고 우려한다. '늑장 대응' 질타를 받은 정부가 손 놓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다 보니 현장의 여건은 고려하지 않은 채 조사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리콜 제도 개선안 발표하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연합뉴스


한편 국토부는 10일 리콜대상 BMW 차량에 대한 후속 조처를 발표했다. BMW 차량을 중고차로 매매할 때 성능·상태 점검기록부에 리콜 대상 여부를 기록하고 소비자에게 분명히 알리게 했다. 중고차 매매업자에게는 긴급안전진단과 리콜 조치 후에 차량을 팔도록 했다.

자동차검사소에선 고객에게 긴급안전진단과 리콜에 대해 적극 안내하도록 당부했다. 자동차 통합정보 포털인 '자동차365'에서도 긴급 알림창을 통해 관련 내용을 홍보하도록 지시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리콜 대상 차량의 소유주는 국민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긴급안전진단을 조속히 받아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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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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