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안전공단 "시험 요청 거의 수용"… 스트레스 주행시험 등은 당장 어려워
  • 교통안전공단-BMW 피해자 모임 협의.ⓒ교통안전공단
    ▲ 교통안전공단-BMW 피해자 모임 협의.ⓒ교통안전공단
    정부가 비엠더블유(BMW) 차량 화재사고 조사와 관련해 피해자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했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에 화재 원인 분석을 의뢰하는 문제는 피해자 모임이 개별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늑장 대처 비난을 받는 정부의 신뢰도가 떨어지다 보니 사공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3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공단 회의실에서 'BMW 피해자 모임'과 만나 차량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한 의견을 수렴했다. 이 자리에는 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장과 피해자 모임의 소송인,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바른 하종선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공단은 피해자 모임이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요청한 요구사항 대부분을 수용하기로 했다.

    앞서 피해자 모임은 자동차 주행 시험장에서 에어컨을 켠 BMW 520d 차량을 불이 날 때까지 시속 120㎞ 이상으로 고속주행하는 '스트레스 시험'을 하라고 요청했다. 엔진룸 등 차량 내부에 열 감지 적외선 카메라 등을 설치한 다음 불이 나면 끄고서 원인을 분석하자는 것이다.

    공단은 10만㎞ 스트레스 시험을 가정해도 시속 120㎞로 하루 800㎞씩 4개월 이상을 달려야 하는 데다 BMW 평균 화재 발생 비율이 1만대당 3건쯤이어서 유의미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냉각수 누출 등 화재 발생 조건을 찾아내면 짧은 시간에 재현하는 방법으로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모임은 시동을 건 BMW 120d를 주차상태에서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 화재 여부를 살피자고도 했다. 지난 12일 인천에서 에어컨을 켠 채 대기 중이던 같은 모델의 차량 실내사물함 쪽에서 불이 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화재 원인이 BMW 측의 주장대로 디젤엔진의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결함이 아니라 외국 사례처럼 전기배선 결함이나 전기적 과부하 때문일 수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공단은 화재 원인 조사 후 제작결함과 관련 있다고 판단되면 불이 난 차량과 같은 모델을 사서 시험할 계획이라고 했다.

    피해자 모임은 차량 화재사고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유럽에서 520d 중고차를 사서 장착된 EGR 모듈과 국내 판매 차량의 부품이 같은 것인지 확인할 것도 재차 주문했다. 또한 이날 추가로 EGR 모듈 교체 리콜 이후 연비 등 차량 성능에 차이가 있는지 실험을 통해 비교해달라고 요청했다.

    공단은 이들 두 가지 사안에 대해 이미 조사계획에 반영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BMW가 '화재 원인 불명'으로 결론 내렸던 화재 차량 1대를 세계적인 공신력이 있는 미국 NTSB에 보내 정부가 화재 원인 분석을 공식 의뢰하는 문제는 피해자 모임에서 따로 추진하기로 했다.

    공단은 리콜조사에 대한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역량이 충분하니 믿고 기다려달라는 입장이다. NTSB 조사 기간이 통상 2~3년 이상 걸린다고도 부연했다.
  • 화재 발생 BMW.ⓒ연합뉴스
    ▲ 화재 발생 BMW.ⓒ연합뉴스
    공단은 구체적인 화재 원인 조사 일정과 관련해선 오는 12월 첫째 주까지 조사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EGR 모듈 비파괴검사를 시작으로 EGR 특성시험과 흡기계통 내 화염가시화 확인, 후처리시스템 재생시험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매연저감장치(DPF) 작동 조건 등 EGR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오류 조사는 11월쯤 시작해 12월 첫째 주까지 불볕더위와 같은 고온환경시험까지 모두 마칠 계획이다.

    공단 관계자는 "협의 결과를 민관합동조사위원회에서 검토해 실험을 추진하겠다"며 "민간부문에서 제기하는 의혹을 해결하고자 학계 전문가와 시민단체, 소비자협회, BMW카페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만들고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BMW 화재사고를 미숙하게 처리하면서 신뢰도가 추락했다고 지적한다. 이번 사태 초기 정부 대응이 BMW 측 입장을 단순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공신력 추락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피해자 모임이 NTSB에 화재 원인 분석을 의뢰하자고 요청한 배경에 이런 불신이 깔려있다는 견해다. 피해자 모임은 국토교통부가 2012년 자동차 급발진 문제에 대해서도 민관합동 조사단을 꾸렸지만,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는 견해다.

    문제는 정부가 믿음을 주지 못하면서 민간부문에서 사공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 조작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는 상황이지만, 피해자 모임은 이에 대한 검증은 불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일각에서 국민 혼란만 커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