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은행 본점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 ⓒ뉴데일리
    ▲ 기업은행 본점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 ⓒ뉴데일리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대책 핵심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금융사들의 움직임은 그 누구보다 빨랐다. 100% 정규직화 등 놀랄만한 공약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부 기조에만 맞춰 보여주기식의 무리한 추진이 이어지다 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농협의 경우 현재 1918명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존 계획에서 절반 이상 줄어든 숫자다.

    농협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계열사 전 직원 3만5289명 가운데 비정규직 5245명의 100% 정규직 전환을 호언장담했다.

    인원을 축소한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직, 산전후 대체직 등을 제외한 전환대상으로 직무분석, 현장실사, 정부 민간부문 가이드라인 등을 감안해 단계적 추진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게 농협 측 설명이다.

    하지만 약속을 1년 만에 뒤집으면서 초반의 무리한 추진이 결국 화를 불러온 것이라는 시각이 크다. 심지어 지난해 정규직 전환대책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범농협일자리위원회는 단 한 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농협 계열사 중 비정규직 분포가 높은 농협은행의 경우 2014년 4명, 2015년 16명, 2016년 4명, 지난해 4명의 직원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4년간 28명만 혜택을 봤고, 올해 전환된 직원은 없다.

    전체 비정규직 2932명 중 산전후 대체직과 명예 퇴직자 재채용, 시간선택 근로자, 신토불이 창구 직원 등을 제외하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인원은 500여명 수준이라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실제 농협은행의 올해 5월 기준 일반계약직 519명 중 정규직 전환이 예정된 인원은 130명으로 지난해 약속보다 75% 급감했다.

    올해 국감에서도 다수의 국회의원이 농협의 말 바꾸기 행태에 대해 집중 질타를 날렸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현재 추진 중인 정규직 인원이 기존 약속보다 낮고 1년 만에 대폭 축소된 점은 농협에 대한 신뢰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비정규직 대책이 졸속으로 수립됐다거나, 정규직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사례 또한 정부의 눈치를 보며 과도한 추진을 벌인 것이 반발을 샀다. 

    앞서 기업은행은 준정규직으로 뽑은 텔러 직군 3300여명의 정규직 전환을 마쳤다.

    현재 파견·용역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도 추진 중이지만 노동자 측 반대가 극심하다. 지난해 11월부터 노·사·전문가협의기구를 가동해 20여 차례 실무협의를 했음에도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은행 측은 자회사를 세워 파견·용역직 정규직화를 마무리하려고 하지만, 노동자 측은 사실상 꼼수라며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진 계획'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파견·용역 노동자도 전환 대상이다. 파견·용역 노동자는 직접 고용이 아닌 파견·용역업체 직원들을 받아 관리·감독하는 간접 고용 방식으로 통상 비서, 운전기사, 시설관리, 경비, 청소 등에 종사한다. 정부는 이들 역시 정규직으로 고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금융사들이 정부의 일자리정책 코드에 맞춰 발 빠른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환영받을 일이지만 이를 둘러싼 갈등을 조율하는 과정은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기존 정규직 직원과 전환된 직원의 월급, 처우, 복지 등 형평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는 노동자의 안정된 근로 형태를 보장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점에서 금융사의 정규직화가 선심성 공약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세밀한 의견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