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규제에 11월 분양 모두 지방서 공급"지방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 내놓아야 할 것"
  • ▲ 자료사진. 세종시의 아파트 견본주택 밀집지역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자료사진. 세종시의 아파트 견본주택 밀집지역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울며 겨자 먹기'. 지방 분양을 앞둔 중견건설사들의 속내를 표현하기 더할 나위 없는 속담이다. 지방 주택시장을 보면 적체된 미분양, 낮은 입주율 등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도권 사업지는 낮은 네임밸류 등으로 진입도 어렵고 미뤄오던 분양도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지난달 30일 대한주택건설협회가 7712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이달 분양계획을 집계한 결과 지난 10월 8052가구의 3분의 1 수준인 2757가구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단 한 건의 분양도 없다. 지난달의 경우 수도권에서 6399가구, 지난해 11월에는 4970가구를 공급한 바 있다.

    그나마 지방에서는 8개사가 8개 사업장에서 2757가구를 선보인다. 이는 지난달 1653가구보다 66.8% 늘어난 수준이지만 지난해 11월 10만390가구에는 크게 못 미친다.

    구체적으로 △강원 776가구 △광주 772가구 △충남 745가구 △전북 338가구 △부산 80가구 △제주 24가구 △경북 22가구 등이 계획됐다.

    주건협 측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분양물량이 대폭 줄어든 주된 이유로 최근 정부가 잇달아 내놓은 부동산 규제를 들었다.

    지난 5월 정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무등록 분양대행업체의 분양대행 업무 금지' 공문을 보내 건설업 등록사업자가 분양대행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도록 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준수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그동안 건설업 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해온 중소 규모의 분양대행사 역할을 두고 혼란이 빚어지면서 예정된 분양물량의 상당수가 연기됐다.

    지난 9월에는 9.13대책과 추석 연휴가 끼면서 분양 예정물량이 대거 미뤄졌다. 최근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9.13대책 후속조치 적용을 위해 하반기 분양 예정이었던 경기 하남시 위례신도시, 성남시 판교대장지구, 과천시 등에서 추진되고 있는 사업에 대한 건설사들의 분양보증을 연기했다.

    주건협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분양이 한 건도 이뤄지지 않는 것은 수년 만에 처음"이라며 "분양시장이 침체기로 들어서면 중견·중소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내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제 주택시장 활성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 자료사진. 지난 2일 견본주택을 개관한 '부산 오션시티 푸르지오' 견본주택 내. ⓒ대우건설
    ▲ 자료사진. 지난 2일 견본주택을 개관한 '부산 오션시티 푸르지오' 견본주택 내. ⓒ대우건설

    정부의 연이은 규제뿐만 아니라 적체된 미분양, 낮은 입주율 등 시장 상황도 건설사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3분기 기준 전국 미분양 물량은 모두 5만2945가구로, 지난해 말 4만6943가구보다 12.7% 늘어났다. 전국 미분양은 6만596가구, 수도권은 7651가구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도 전국 1만4946가구 중 1만2421가구로 80%를 넘는다.

    입주율도 저조하다. 9월 입주율은 전국 75.3% 수도권 84.7%(서울 87.6%) 지방 73.2%를 기록했다. 서울 및 수도권의 경우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지방은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분양사업 체감도도 떨어지고 있다. 분양시장 체감경기 실적치 61.9는 전월에 비해 10.2p 하락했다. 9.13대책 등 규제 강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9월 분양경기가 좋지 않았다는 인식이 우세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서울과 지방 간 양극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며 "지방의 경우 공급물량이 몇년간 쏟아지면서 수요가 그만큼 못 따라간 경우로 볼 수 있고, 지방 거점의 주요 산업도 위축되면서 자연스럽게 부동산시장도 침체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침체된 여건에도 건설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분양에 나서야 된다는 점이다.

    내년 지방 부동산 경기가 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공급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분양 일정이 미뤄질 경우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고, 사업 수행이 어려워 매출도 일으킬 수 없게 된다.

    중견건설 A사 관계자는 "지방 주택시장 상황을 주시하면서 분양일정을 고민하고 있다가 결국 분양하기로 했다"며 "내년 지방 주택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연내 진행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내 분양하려는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금전적 리스크를 고려해야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조금이라도 분양에 성공해 손실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아음이 앞선다"고 덧붙였다.

    중견건설 B사 관계자는 "분양을 늦추는 곳은 그나마 비교적 자금압박이 덜한 곳"이라며 "분양사업을 지연시키면 금융비용 등 사업비가 계속 늘어나게 되는데 재무구조가 열악한 곳은 더 이상 늦추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침체된 지방 부동산시장에 대한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시장 대책을 발표하면서 모두 수도권과 관련된 대책만 발표하다보니 부동산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수도권 규제와 더불어 침체된 지방시장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분양업계 한 관계자는 "지방 분양단지 중에서도 입지가 좋거나 수요자들의 관심을 받는 곳도 있어 분위기를 보고 연내 분양에 나설 것"이라며 "분양을 계속 미루다보면 내년에 분양물량이 모이는 특정 지역은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전부 수도권 관련이고, 그 정책 때문에 또 지방시장이 침체되고 있다"며 "당국이 지방 맞춤형 대책을 언급한 바 있는데, 빨리 나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