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규제 영향 미미… 서민 '내 집 마련' 부담만 가중8·2대책 후 1년간 갭투자 24%p 증가…"투자 양성화 모색해야"
  • 서울 강남구 일대 아파트단지 전경. ⓒ연합뉴스
    ▲ 서울 강남구 일대 아파트단지 전경. ⓒ연합뉴스
    정부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잇단 대책을 내놓으면서 치솟는 집값을 잠시 잠재웠지만 투기수요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금이 풍부한 자산가들은 대출규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데다 최근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단지가 늘어나는 점도 투자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8일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지난 6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래미안 리더스원'은 평균 41.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단지는 서울 서초구 '서초 우성 1차'를 재건축한 단지로, 발코니 확장비를 포함한 최소 분양가는 12억7000만원에 달한다.

    정부의 대출규제가 강화되면서 사실상 보유 현금 10억원가량이 필요한 청약이었지만 9671명이 몰리면서 흥행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보면 인근에 2016년 준공된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 전용 84㎡(25층)의 지난 8월 매매가는 18억9500만원에 달했다. 준공 40년이 지난 '서초 신동아 1차' 전용 87㎡(1층)도 14억5000만원에 팔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첨만 되면 '로또'라는 기대감에 자금이 풍부한 투자자들이 몰린 것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이 단지는 대출이 제한되는 지역임에도 예상과 달리 높은 경쟁률이 나왔다"며 "최근 부동산시장이 침체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강남은 강세가 예상되는 지역인데다 정부가 분양가도 잡아주면서 재력가들의 투자가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서울의 문제만이 아니다. 앞서 지난 2일 견본주택을 개관한 경기 하남시 소재 '하남 호반베르디움 에듀파크'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음에도 오히려 분양가상한제 적용으로 주변 시세와 비슷한 분양가가 책정되면서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당시 견본주택을 방문한 A씨는 "노른자 땅이라 불리는 현안2지구 마지막 분양인데다 분양가상한제까지 적용돼 당첨만 되면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지는 지난 7일 진행한 1순위 청약에서 11.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정부가 투기를 잡겠다고 공언하면서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애꿎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만 더 힘들어진 상황이다.

    이미 집값이 치솟은 상황인데다 투기과열지구 지정으로 DTI(총부채상환비율)· LTV(담보인정비율)가 40%까지 강화돼 실수요자의 자금조달도 덩달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장재현 본부장은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만으로 투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며 "오히려 대출규제는 실수요자에게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의 정책 발표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갭투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국토부가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투기과열지구 자금조달계획서 분석 현황'을 보면 8·2대책이 발표된 후 1년간 서울의 투기과열지구에서 이뤄진 매매거래 중 갭투자의 비율은 지난해 10월 21.2%에서 지난 9월 56.1%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주거가 아닌 임대 목적으로 구매한 비율도 31.4%에서 63.4%로 치솟았다. 서울 내에서도 △성동구 49.6% △용산구 47.4% △송파구 45.2% △강남구 40.9% 등은 타 자치구에 비해 갭투자 비율이 높았다.

    김상훈 의원은 "1년 전 국토부는 투기수요를 막고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시장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허언이 됐다"며 "주거와 주택을 선악의 도덕적 관점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기가 아니라 투자의 양성화, 징벌이 아니라 거래의 활성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