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나 수정 초안 나와… 연구용역 해 넘길 듯
  • KTX산천-SRT.ⓒ연합뉴스·SR
    ▲ KTX산천-SRT.ⓒ연합뉴스·SR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수서발 고속철도(SRT)를 운영하는 ㈜에스알(SR)의 통합 여부를 논의하는 연구용역이 진행 중인 가운데 연구진이 대국민 설문조사를 코레일에 유리하게 진행하려다 국토교통부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연구용역을 맡은 김태승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장은 코레일 철도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다. 연구용역의 공정성 논란이 증폭될 전망이다.

    애초 다음 달 중순까지 이뤄질 예정인 연구용역은 설문조사 지연으로 말미암아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29일 철도업계에 따르면 인하대 산학협력단은 지난 6월부터 국토부가 발주한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 평가'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연구진은 최근 통합 필요성에 관해 대국민 설문조사를 벌이겠다며 설문 문항 초안을 만들어 국토부에 보고했다가 퇴짜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가 설문조사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했고 전문가 검토 의견을 들어 초안을 반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설문조사 내용을 '철도산업 구조평가 협의회'(이하 평가협)에 회람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평가협은 연구용역을 공정하게 진행하고 이해관계자와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자 국토부가 총 12명으로 구성한 모임이다.

    한 철도전문가는 설문조사 초안이 방법과 시기 등에 있어 부적절하고 코레일에 유리하게 구성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확인된 내용을 종합하면 연구진은 설문 대상자를 KTX와 SRT 이용자가 아니라 역사에서 적당한 사람을 골라 조사한다는 계획이었다. 철도전문가는 조사원이 직접 KTX와 SRT를 타고 이동하면서 주 이용객을 대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철도전문가는 "역사에 머무는 사람이 고속철을 탄다는 보장이 없다. 역사에서 연결되는 노선의 지하철 이용자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또 "열차를 타려고 바쁘게 이동하게 사람이 설문조사에 흔쾌히 응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며 "고속철 주 이용객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노인을 상대로 설문을 진행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설문 대상에 고속철 이용자가 아닌 새마을·무궁화호 일반열차 이용자도 포함하려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되면 조사의 모집단 범위는 늘어나지만, 주 조사대상 중 하나인 SRT 이용자의 편익이나 만족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거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문조사 시기도 부적절하다는 의견이다. 조사가 연말에 이뤄지면 특정한 이용 시기의 특성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어 신뢰도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철도전문가는 "평소 KTX 이용 패턴을 보면 주로 출장을 가면서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연말에 조사하면 여행 등 놀러 가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어 통상적인 이용자 의견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보기 어려워진다"고 꼬집었다.

    요금 관련 설문 문항도 모호하게 짜깁기됐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KTX와 SRT 요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주지 않고 단순히 현재의 요금 수준에 불만이 있느냐고 묻는 문항을 끼워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철도전문가는 "(구체적인 비교가 아닌) 현재의 요금에 대한 불만을 물었을 때 불만이 없다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나중에 설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관련 답변을 코레일에 유리하게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 국토부.ⓒ연합뉴스
    ▲ 국토부.ⓒ연합뉴스
    연구용역 발주기관인 국토부가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설문조사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연구용역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번 연구용역은 다음 달 19일까지 수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국토부가 수정을 요구한 설문조사 초안은 다음 주에나 다시 제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설문조사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초안이 나오면 이를 파일럿 분석하고 조사한 뒤 응답 결과를 분류, 분석하는 데 보통 5주쯤 걸린다"며 "일러야 내년 초에나 설문조사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문조사가 늦어지면서 전체 연구용역 일정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평가협 한 참석자는 "대학 연구진이 내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용역을 마무리 지으려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늦어도 내년 2월까지는 용역 결과가 나올 거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편 이번 편향된 설문조사 초안 논란은 파장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연구용역 책임자인 김 교수는 철도 경쟁체제를 강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처음부터 용역이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김 교수는 국토부의 연구용역 공고 이후 사임하긴 했으나 직전까지 코레일 철도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4년엔 철도경쟁체제 도입을 반대하는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추천으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연구진 구성의 면면도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연구진은 김 교수 말고는 행정·회계·로스쿨 관계자로 짜졌다. 평가협 한 관계자는 "그나마 회계 전문가는 철도운영사 재무분석이라도 할 수 있겠으나 나머지 연구원은 이번 연구용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호하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