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현장 44% 공기 부족… 탄력근로제 적용도 한계"양질의 시설물 준공 위한 적정 공기 제대로 산정해야" 주장 힘실려
  • ▲ 자료사진. ⓒ한국안전연대
    ▲ 자료사진. ⓒ한국안전연대

    주 52시간 근무제가 실시된 이후 건설현장들의 공사기간 준수가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칫 무리한 공사로 건설품질 하락이나 안전사고 증가 등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양질의 시설물 준공을 위한 적정 공기가 제대로 산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12일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3개 대형건설사가 현재 수행 중인 국내 건설사업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109개 건설사업 중 48개 사업(44.0%)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해 기계약된 공기를 준수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 유형별로는 77개 토목사업 중 34개(44.1%), 건축사업 32개 중 14개(43.7%) 사업이 공기가 부족한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11개 중 9개 사업의 공기가 부족한 지하철사업(81.8%)과 14개 중 11개가 부족한 철도사업(78.5%)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영향이 매우 큰 것으로 조사됐다.

    발주자 유형별로는 63개 공공사업 중 26개(41.2%), 13개 민자사업 중 8개(61.5%), 32개 민간사업 중 13개(40.6%)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공기가 부족해 질 것으로 분석됐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한 공기 부족 현상은 현장 운영시간의 변화가 주된 원인 중 하나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시행 후 주당 현장 운영시간은 평균 60.0시간에서 57.3시간으로 2.7시간 단축된 것으로 조사됐다.

    61개 공기적정사업의 경우 주당 57.9시간에서 55.8시간으로, 48개 공기부족사업은 주당 62.6시간에서 591시간으로 단축돼 공기부족사업에서 기존 운영시간이 길고, 운영시간 단축 폭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건설현장의 공정관리를 위해서는 탄력근로제 등과 같은 유연한 근무시간 적용이 필요하지만, 근로자 측과의 합의 문제 등으로 인해 대부분 공기부족사업이 탄력근로제를 2주 단위로 적용(48개 사업 중 35개)할 수밖에 없어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탄력근로제는 취업규칙 2주, 노사합의 3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사합의 3개월의 경우 근로자와 합의한 시점에서 계획한 3개월 단위의 근로자 업무가 변경될 경우 계획 변경 후 재합의가 필요하다.

    불확실성이 큰 건설사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3개월 단위의 근로자 업무를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탄력근로제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수영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연장된 공기 산정 기준이나 돌관 작업에 따른 비용 산정 기준 등 구체적인 지침 마련이 필요하며 지침 마련 전에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기상 요인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큰 건설사업의 특성상 유연한 현장 운영이 가능토록 탄력근로제 확대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부족한 공기에 따라 적정 공기의 산정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사업의 다양한 내‧외부 영향으로 건설품질 하락, 안전사고 증가, 기업의 이익 하락 등 산업 차원의 피해도 유발하는 만큼 절차적 보완 중심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산연 보고서 '공공공사 공기의 적정성 확보를 위한 공기 산정 기준의 방향과 요인'을 보면 공기 부족으로 인해 기업이 받는 가장 큰 부정적 영향은 '공사비 및 간접비 증가(32개 기업 중 26개, 복수응답)'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어 △협력업체와의 갈등 발생 11개 △안전사고 발생 6개 등이 우려됐다.

    해당 설문은 지난 7월 4주간 67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로, 이 가운데 공공공사 수행시 공기 부족을 경험한 32개 기업의 사업을 분석한 결과다.

    공공공사의 공기 부족 발생 주요 원인들의 순위를 묻는 항목에서는 '착수시기와 무관한 정책성 사업의 고정된 준공 기간'이 1위로 평가됐으며 이어 '예산 확보 등 정책적 요인에 따른 사업 발주 지연', '체계적이지 못한 발주기관의 공기 산정 방식' 등이 꼽혔다.

    손태홍 건산연 연구위원은 "과거와 달리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미세먼지 저감 조치, 기상조건 악화 등 보다 다양한 외부요인의 영향을 공기 산정시 고려해야 한다"며 "발주기관 산정 공기의 적절성 검토, 입찰자의 공기 적정성 검토 의무화, 공기 부족시 이의제기 허용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의 도입도 함꼐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재 건설현장을 주 52시간 이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현장 셧다운 횟수 확대와 탄력근무제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고는 근로시간 규정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사업의 경우 공기가 부족할 경우 공기 연장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로 인한 건설기업의 피해를 보전할 방안은 현재 없다. 가령 고농도 미세먼지와 폭염 등으로 인한 건설공사 중단은 준공 시점의 임박 여부와 상관없이 건설기업에게는 공정관리상의 리스크로 작용하게 된다.

    손태홍 연구위원은 "건설사업 수행에 있어 공기와 공사비 및 품질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하지만 최소 공사비로 최대 품질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시공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면서 "좋은 품질과 빠른 시공을 위해서는 높은 비용이 수반되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좋은 품질의 목적물을 시공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결국 최소한의 비용으로 빠른 시공을 목표로 할 경우 낮은 품질의 시설물이 생산되는 것"이라며 "'제값과 필요한 시간을 제공하고 제대로 시공하는' 건설문화 정착을 위한 산업 참여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 건설사업의 Iron Triangle. ⓒ건설산업연구원
    ▲ 건설사업의 Iron Triangle. ⓒ건설산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