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광고실행위원회(CAP), 성 고정관념 부정적 영향 미치는 광고 금지키로 성차별 이슈, 글로벌 광고업계 화두로 떠올라
  • ▲ 관련 사진. ⓒWeRSM
    ▲ 관련 사진. ⓒWeRSM
    주차를 못하는 여성과 기저귀를 잘 갈지 못하는 남성 등 성(性) 차별적인 광고가 올해 영국 내에서 사라질 전망이다.

    성별 고정관념을 고착화하거나 성별의 차이에 따른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광고와 관련한 논란이 전세계적으로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영국이 가장 먼저 제재에 나서면서 광고 업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2일 외신과 업계 등에 따르면 영국광고실행위원회(CAP)는 성역할과 성별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광고를 올해부터 금지하기로 했다. 

    영국 내 TV와 라디오, 신문, 잡지는 물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SNS) 상에서도 오는 6월 14일부터 성차별적 요소를 담은 광고를 더 이상 내보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CAP 측은 "성 고정관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심각하고 광범위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광고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영국 광고심의위원회(ASA)가 지난해 성별 고정관념을 검토하고 "유해한 성 고정관념이 아동과 청소년 및 성인의 선택과 기회 등을 제한할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발견했다"며 "이러한 고정관념은 동등하지 않은 성 역할을 보여주는 일부 광고에 의해 악화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CAP는 ASA의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광고 내 성역할과 성별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광고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해왔으며 올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CAP는 광고 업계가 새로운 규칙과 적용 방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광고에 담아서는 안되는 성 고정관념과 관련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 ▲ 해외에서 논란이 '프로틴 월드' 광고. 다이어트 제품 광고에서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성 사진 뒤로 '바닷가에서 선보일 몸이 준비됐느냐'(Are you beach body ready?)'라는 문구를 넣어 비판을 받음. ⓒ유튜브 캡처
    ▲ 해외에서 논란이 '프로틴 월드' 광고. 다이어트 제품 광고에서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성 사진 뒤로 '바닷가에서 선보일 몸이 준비됐느냐'(Are you beach body ready?)'라는 문구를 넣어 비판을 받음. ⓒ유튜브 캡처
    ◇ 집안 곳곳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가족과 이를 지켜만 보고 있는 남편, 엉망이 된 집을 치우는 모든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음을 묘사하는 광고. 

    ◇ 기저귀를 잘 갈지 못하는 남성, 주차를 잘 하지 못하는 여성 등 특정 업무를 잘 해내지 못하는 것이 성별의 차이 때문임을 묘사하는 광고. 

    ◇ 낭만적이거나 활발한 사회 생활 등 성공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이상적인 신체를 갖지 못했기 때문임을 암시하는 광고. 

    ◇ 성별에 따른 전형적인 성격으로 묘사되는 소년의 대담함과 소녀의 세심함과 같이 성별의 차이에 따른 대비를 강조하는 광고. 

    ◇ 외적으로 매력적이거나 아주 깨끗한 집을 유지하는 엄마의 모습을 제안하는 광고.(이같은 광고는 정신적인 행복과 같은 개인의 감정적 요인보다 그러한 모습을 우선시 하게 될 수 있음.)

    ◇ 정형화 된 여성의 역할이나 업무를 수행하는 남성을 폄하하고 희롱하는 광고. 
  • ▲ SK텔레콤이 지난해 선보인 T플랜 요금제 홍보 광고 문구. ⓒ온라인 커뮤니티
    ▲ SK텔레콤이 지난해 선보인 T플랜 요금제 홍보 광고 문구. ⓒ온라인 커뮤니티
    CAP 측은 이 같은 새로운 지침은 성별의 차이에 따른 모든 광고를 제재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매력적이고 성공적이고 건강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묘사하는 광고, 하나의 성별만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을 위한 광고, 성 고정관념의 부정적 영향에 도전하기 위해 만든 광고는 CAP의 제재 대상에서 제외된다.

    새로운 광고 지침은 다음달부터 시행되며 CAP는 이후 12개월 간 효과를 지켜볼 계획이다.

    성 차별적 내용을 담은 광고와 관련한 논란은 글로벌은 물론 국내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은 가족끼리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요금제 광고에서 "아들, 어디 가서 데이터 굶지 마", "딸아, 너는 데이터 달라고 할 때만 전화하더라"라는 문구를 사용해 성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치킨 브랜드 bhc는 과거 대표 메뉴인 '뿌링클'을 광고하면서 공식 트위터 계정에 "뿌링클 사 줄 사람 없는 여자분들 필독하세요. 이 문장을 매일 밤 20번씩 연습하세요. 나 꿍꼬또 뿌링클 멍는 꿍꼬또"라는 글을 올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밀크티 브랜드 '공차'도 과거 광고에서 여성은 어장관리를 하는 존재라는 내용을 담아 빈축을 샀다.

    이 밖에도 많은 기업과 브랜드들이 성 차별적인 내용과 성별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광고를 선보여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국내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제13조(차별금지)를 보면 "방송광고는 국가, 인종, 성, 연령, 직업, 종교, 신념, 장애, 계층, 지역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기준이 불분명해 실질적인 제재 효과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국내 광고업계의 한 관계자는 "성차별 문제와 젠더 이슈 등은 인공지능(AI)과 환경문제 등을 포함해 올해 글로벌 광고업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라며 "국내에는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규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이 먼저 제재에 나선 만큼 유럽 국가와 미국 등 선진국들도 이를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라며 "국내 광고업계도 제재는 없지만 성차별 논란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를 더욱 의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성 차별적 요소가 광고 크리에이티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거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같은 제재가 광고업을 위축시키거나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현실과 타깃 소비자를 반영한 광고에까지 무조건적인 성차별 잣대를 들이댄다면 광고효과나 크리에이티브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