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출산정책도 나름 성과… 대상별, 장단기 대책 세밀히
  • ▲ 신생아실 빈 카트.ⓒ연합뉴스
    ▲ 신생아실 빈 카트.ⓒ연합뉴스
    "저출산을 획기적으로 해결할 도깨비방망이는 없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포함 유럽에선 저출산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인구 전문가들은 저출산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출산은 시대·사회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를 극복한다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견해다.

    김종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 연구위원은 "국내외에서 저출산 대책이나 극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국가가 별로 없다. 인구정책이란 말을 쓴다"며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 측면이 있어 대응이 필요하지만, 외국 사례를 봐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이 바닥에서 반등한 사례는 있어도 저출산을 걱정하던 시점 이전으로 되돌아간 나라는 없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인구 문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식의 사고로 접근해선 안 된다"며 "단기대책도 필요하나 때론 5년 이상 지나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정부로선 알면서도 급하니까 (단기 성과에) 매달리는데 삶의 질을 높이는 것부터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난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저출산정책 기조를 출산장려에서 삶의 질 개선으로 바꾼 것에 대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시대변화를 인정하고 정책을 탄력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과거 산아제한 정책은 사회·경제 성장 속도보다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실소득 상승과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국가정책이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며 "지금은 가족 구성 형태는 물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각 등이 달라져 정부 정책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젊은 층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인구절벽이 미칠 악영향에 대해선 동의하지만, 결혼 계획을 물으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나온다는 것이다.

    8일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에 실린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과 이성 교제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미혼인구 비율은 지난 20년간 급속히 증가했다.

    국내 남성 미혼율은 25∼29세의 경우 1995년 64%에서 2015년 90%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34세(19%→56%), 35∼39세(7%→33%), 40∼44세(3%→23%) 나이대에서도 크게 올랐다. 여성 미혼율도 25∼29세(30%→77%), 30∼34세(7%→38%), 35∼39세(3%→19%), 40∼44세(2%→11%) 등으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2015년 들어 한국의 미혼율이 사회문화적 환경이 비슷하고 중요 사회현상이 우리나라보다 일찍 일어나는 일본을 앞질렀다고 밝혔다.

    설상가상 결혼을 고려할만한 20∼44세 미혼 남녀 중 이성 교제를 하는 사람은 10명 중 3∼4명에 불과하고, 30∼35세를 기점으로 교제율은 더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결혼의 선행조건이라 할 수 있는 이성 교제 비율이 낮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혼 비율이 지속해서 증가할 개연성을 보여준다.

    김 연구위원은 "양성평등 등 사회인식 변화로 여자가 애 낳는 기계냐는 반발심도 있다"면서 "저출산을 위기로 보는 국가의 인식과 개인 생각의 틈새를 메워줘야 한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네덜란드의 경우 일정 비율의 여성에 대해 비혼을 전제로 인구정책을 편다"며 "이들의 선택을 인정해주고, 대신 결혼·육아를 통해 인구·사회적으로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이들에 대한 세금 지원과 비혼 여성에 대한 상대적 혜택 축소 등을 설득해 저출산 문제가 심화하는 것을 막는 방향으로 접근한다"고 소개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런 인식 전환을 계기로 그동안 쏟아냈던 100여개의 저출산 대책 중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출산장려금이나 대학등록금 경감 등이 저출산 대책으로 합당한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 ▲ 직장어린이집.ⓒ연합뉴스
    ▲ 직장어린이집.ⓒ연합뉴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정부에 조급증을 경계하면서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먼저 "저출산은 장기적으로 해결할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저출산 대책에도) 출산율은 그리 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이 교수는 "보통 정책 성공 여부를 따질 때 출산율 제고만 보는데 속도를 늦추는 것도 중요하다"며 "30~40% 급감할 것을 10%로 낮추거나 10년 동안 줄어들 것을 30년에 걸쳐 감소하게 속도를 늦췄다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미칠 영향도 달라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한국경제학회의 '경제학연구'에 게재한 '한국의 출산장려정책은 실패했는가?: 2000∼2016년 출산율 변화요인 분해'라는 보고서에서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5년 이후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출산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면서 "출산 장려정책이 없었다면 2016년 합계출산율이 0.73명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보고서에서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덜 낳기보다는 결혼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정부 대책이 합계출산율 제고 등의 수치에 연연하지 말고, 대상을 나누어 단기대책과 장기대책을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단기적으로 여러 대상 중 결혼하거나 아이 낳을 용의가 있는 그룹을 파악해 결혼과 출산의 장벽을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그룹 규모에 따라 정책적 지원 효과는 다를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 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미래 세대의 전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견해다. 이 교수는 "우선 노동시장의 일자리를 높이고 일자리 질을 높여야 한다"며 "어려운 문제지만, 개선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교수는 집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신혼부부와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 정책이 도움은 되겠으나 10여평 규모 임대주택에서 일생을 보내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며 "교육여건 등이 좋고 더 넓은 집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비용 부담을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집값이 오르면 결혼율은 낮아진다면서 정부의 지속적인 주택가격 안정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특히 저출산과 관련해 교육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최근 '저출산·고령사회 로드맵'은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것은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그러나 대책에 국공립어린이집·유치원 확대, 보육시설 이용시간 연장 등 현장에서 요구하는 내용은 미흡해 정책 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교수는 "교육 문제는 출산율 제고뿐 아니라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