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의식했나… 선심성 나눠 먹기·혈세 낭비 우려경실련 "무분별한 토건사업, 과거 답습"
  • ▲ 지난해 10월24일 정부가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 지난해 10월24일 정부가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업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추진할 총 42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사업들이 다음 주 초 발표될 예정이다. 신청 사업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의 대규모 숙원사업이어서 전국 지자체가 기대감으로 들썩이고 있다.

    반면 일각에선 내년 총선을 의식해 정부가 또 혈세 퍼주기에 나섰다며 선심성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면제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설 민심잡기용 선물 보따리 푸나… 시·도별 1건 기대감

    22일 세종 관가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8일쯤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서울 동작구 소상공인연합회를 찾아 대화를 나누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예타 면제 기준 등을 다음 주나 다음다음 주 종합적으로 발표하겠다"며 "(예타 면제는) 지역균형 개발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초 이르면 오는 24일 정부가 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기재부가 아직 발표 일정을 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다음 주 초 발표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는 지난해 10월24일 발표한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에서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예타 면제 사업을 선정하기로 했다.

    예타는 나랏돈이 투입되는 대형 신규사업에 대해 미리 사업성을 따지는 심사제도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신규 사업은 예타를 통과해야 한다. 예타를 면제하면 중간 절차를 생략할 수 있어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

    정부는 SOC에 대한 예타 면제를 통해 최근 줄고 있는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복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공공인프라 사업은 엄격한 선정기준을 세우고 지자체와 협의해 예타를 면제하고 조기 착공을 지원하겠다"며 "광역별로 1건 정도의 공공인프라 사업은 우선순위를 정해 선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국 17개 시·도는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균발위)에 총 30여개의 예타 면제 사업을 신청했다. 총사업비 규모가 61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설 연휴를 앞두고 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해 명절 민심 잡기에 나설 예정이다.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근 잇단 지역현장 방문 행보를 통해 예타 면제 사업의 긍정적 검토를 언급하며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이 총리는 지난 19일 충남 홍성 광천시장을 찾아 "대전시와 충남도가 예타 면제를 신청한 7000억~8000억원 규모 두 사업을 적극 검토하고 있고 거의 마무리단계에 있다"며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사업 규모를 고려할 때 이 총리가 언급한 두 사업은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노면전차) 건설과 충남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 인입 철도 건설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대선 공약 사업인 도시철도 2호선과 외곽순환도로 건설을 신청했고 트램 건설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며 "애초 고가건설 방식으로 예타를 통과했다가 트램으로 운영방식을 바꾸면서 예타를 다시 받는 등 사업이 늦어져 어려움이 많다. 예타가 면제되면 관련 용역을 마친 상태여서 바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총리는 앞서 18일에는 전북 익산시 왕궁면 국가식품클러스터지원센터를 찾아 입주기업인과 간담회를 하고 "전북이 원하는 새만금 신공항 건설과 상용차 혁신성장 구축산업을 위한 예타 면제 결정이 이달 안에 결정된다"며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예타 면제 신청 사업에는 사업비 규모가 수조 원을 웃도는 대형 사업도 포함돼 있어 선정되면 파급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경남에서 신청한 김천~거제 KTX남부내륙철도(5조3000억원), 인천이 신청한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B노선(5조9000억원), 제주 신항만개발(2조800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 ▲ GTX-B노선 예타 면제 촉구하는 시민들.ⓒ연합뉴스
    ▲ GTX-B노선 예타 면제 촉구하는 시민들.ⓒ연합뉴스
    ◇5~6년만 나라살림 하고 말건가… 난개발·혈세 낭비 우려

    일각에선 정부의 선심성 정책으로 난개발과 혈세 낭비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지자체장들이 표를 의식해 굳이 예타를 면제받지 않고도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을 지역 내 휘발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신청하는가 하면 환경 오염 우려나 경제성이 낮아 적자 운영이 불가피한 사업도 묻지마식으로 신청한 사례가 없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이 신청한 GTX B노선은 굳이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적잖다. 이 사업은 인천 송도에서 여의도~용산~서울역~청량리를 거쳐 경기 남양주 마석까지 80㎞ 구간을 최고 시속 180㎞의 고속전철로 연결하게 된다. 완공되면 인천 송도에서 서울역까지 26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지난해 GTX A노선(경기 파주 운정~서울 삼성)이 착공식을 했고 C노선(양주~수원)도 예타를 통과했다"며 "B노선에 기존 A노선 수요뿐 아니라 C노선 수요도 추가로 반영되면서 예타 통과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타 면제 신청 당시 C노선은 예타가 통과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인천시로선) 최소 6개월 이상 사업을 앞당길 수 있으므로 신청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GTX B노선은 국토부 장관으로부터 연내 추진이 가능하단 약속을 받은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인천시 관계자도 "예타 면제를 통해 사업추진이 다소 앞당겨질 수 있다"며 국토부 설명에 동의했다.

    제주도가 신청한 신항만 건설사업은 대규모 매립이 필요한 사업으로 환경 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

    제주도는 예타 면제 사업으로 제주신항만 건설과 제주시 도두동 공공하수처리시설 현대화사업을 신청했다.

    제주신항만은 2030년까지 총사업비 2조8000억원을 들여 제주시 삼도·건입·용담동 항만 부지와 배후 부지 135만8210㎡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2만t급 등 선석 9개를 갖춘 국내 여객부두와 22만t급 등 선석 4개가 있는 크루즈(유람선) 부두를 건설하게 된다. 배후 부지에는 쇼핑시설 등도 조성한다. 사업을 위해선 제주시 앞바다를 대규모로 메워야 한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5일 성명을 발표하고 "대규모 해양 매립으로 말미암은 환경 훼손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크루즈산업을 위해 예타 면제를 신청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해양수산부가 밝힌 '제주신항만 건설 기본계획 수립 및 예정지역 지정 전략환경영향평가 항목 결정내용'에도 해양환경 오염 문제가 야기될 수 있어 사전에 철저한 타당성 조사가 필요하다고 돼 있다"고 지적했다.

    경남에서 신청한 남부내륙철도 건설사업은 이미 경제성이 낮다는 판정을 받은 사업으로 꼽힌다. 예타 면제가 확정되면 적자 운영 등 재정 누수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18일 낸 성명에서 "지자체별로 1건의 예타를 면제하면 최소 20조, 최대 42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무분별한 토건사업 추진은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혈세 낭비만 부추긴다"고 나눠먹기식 예타 면제 중단을 촉구했다.

    경실련은 "예타 면제 사업 상당수가 민자사업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비싼 요금과 운영비 지원 등으로 수십 년간 혈세를 낭비하고 시민 부담을 증가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진정 필요한 사업이라면 최소한의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로 비판해온 과거 정부를 답습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예타 면제는 표면적으론 균형발전이지만, 사실상 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토건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DJ(김대중) 정부 시절 예타를 도입한 것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정작 필요한 사업은 혐오시설이라며 반대하면서 결국 땅값 올리는 사업만 추진하겠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정부는 균형발전 등을 위해 예외를 인정한 법적 근거에 따라 예타 면제를 추진한다지만, 정부 설명대로면 예타를 통과 못 할 사업이 있겠냐"며 "국가를 시한부로 5~6년만 운영하다 말 것도 아니고, 내년 총선과 지지자 이탈 방지를 위해 나눠먹기식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정부가 예산 운용과 관련해 마땅히 해야 할 규칙을 허물고 있다.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세금 낭비를 조장하는 것"이라면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그동안의 경제정책을 봐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전영향조사 등을 안 하고 저질러버리는데 (예타 면제도)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 지자체 제출 예타 면제 사업 현황(변동 있을 수 있음).ⓒ경실련
    ▲ 지자체 제출 예타 면제 사업 현황(변동 있을 수 있음).ⓒ경실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