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인 잘못 여부와 도덕적·윤리적 비난은 구분돼야대한항공 주가·실적, 더 양호해져 주주가치와 무관
  •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예고된 가운데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이른바 강성부 펀드(KCGI)가 한진그룹에 대해 지배구조 개선과 조양호 회장의 이사 해임 등을 요구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사모펀드인 KCGI는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 지분을 10.81% 보유한 2대주주이고, 국민연금은 7.34%를 갖고 있는 3대주주다. 이외에도 KCGI는 (주)한진 지분도 8.03% 보유하고 있으며, 국민연금도 대한항공 지분을 12.45% 갖고 있다. 주요 주주들이 지위를 앞세워 조 회장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건에서 비롯됐다. 조 전 전무의 갑질 언행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문재인 정부는 11개 사법 및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20차례 가까이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오너 일가와 한진그룹을 샅샅이 털었다. 조 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에 5번의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모두 기각됐다.

    결국 검찰은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사기,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조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조 전 전무의 ‘물컵 폭행사건’과 관련해서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공소권 없음’, 특수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는 각 ‘혐의 없음’으로 마무리됐다.

    도화선이 된 조 전 전무의 물컵 사건은 법적으로 처벌 대상이 되지 않았다. 다만 도덕적·윤리적 비난의 대상이 됐을 뿐이다. 그게 본질이다. 그러나 그 불똥은 조 회장의 불구속 기소로 이어졌고 지난 연말부터 재판이 시작됐으며, 오는 28일 2차 공판준비기일이 예정돼 있다.

    이것이 물컵 사건으로 비롯된 한진그룹 수난의 간략한 스토리다.

    문제는 이같은 내용이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개입과 사모펀드의 이사 해임 요구 등으로 이어질만한 것이냐는 점이다.

    법적으로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조사 및 수사가 이뤄졌고, 조 전 전무는 법적 처벌을 피했다. 조 회장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합당한 처분을 받으면 된다. 사법기관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도덕적·윤리적 일탈이 있었다고 개별 기업의 경영권을 임의로 박탈해서는 안된다. 즉, 법적인 부분과 도덕적·윤리적인 부분을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한진그룹의 주주가치가 훼손됐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조 전 전무의 물컵 사건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지난해 4월 12일 대한항공의 주가는 3만3550원을 기록했다. 9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난 22일 종가는 3만6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당시보다 오히려 주가가 7.3% 올랐다.    

    영업실적도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매출은 역대 최대를 달성했다.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3.7% 증가한 3928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3분기 이후 13분기 연속 흑자행진 중이다. 

    주가와 실적이 대한항공의 안정적인 경영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 회장의 이사 해임 요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주들에게 어떤 피해를 줬기에 재선임이 불가능한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배당률은 5%, 배당성향은 3.04%로 낮은 편이다. 향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배당을 늘려가야 하는 과제는 안고 있다. 배당이 작다고 이사 해임을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행동주의 사모펀드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된다. 2000년대 이후 행동주의를 표방한 사모펀드들이 주주 권익을 명분으로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지만, 실제로는 차익을 챙기고 먹튀하는 사례가 많았다. 최근 들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반대했던 엘리엇도 그렇고 한진그룹을 공격하는 KCGI도 마찬가지다.

    행동주의 사모펀드는 대량 주식매수를 통해 특정기업의 주요 주주 지위를 확보한 이후 적극적인 경영 관여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다. 하지만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 제고가 아닌 단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려 시세차익을 챙기는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다. KCGI가 밝힌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도 그 수단이자 명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제 애널리스트이자 칼럼리스트인 라나 포루하(Rana Foroohar)는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Makers & Takers)’라는 책에서 행동주의 사모펀드 등 금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저자는 로브, 아이칸, 아인혼을 비롯한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배당 규모를 더욱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이런 단기적 사고를 부추기는 망가진 경제 생태계에 일조하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단기적 성과를 내라는 압박이 가중되면 경제성장의 핵심인 기업활동의 동력은 훼손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만드는자(Makers)가 거저먹는자(Takers)들에게 예속되고 있다며, 만드는자는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창출하는 사람과 기업, 아이디어이고 거저먹는자는 고장난 시스템을 이용해 자기 배만 불리는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 그리고 그릇된 사고에 젖어 있는 민간 및 공공부문의 리더들이라고 꼬집었다.

    오너 일가의 일탈이 행동주의 사모펀드의 먹잇감이 되고, 국민의 종자돈을 모아 노후자금을 운영하는 국민연금이 그 행태에 부화뇌동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를 뿐이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앞세워 대기업을 길들이는 첫 사례가 되선 안된다. 행동주의 사모펀드가 대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며 결국 시세차익만 챙기는 먹튀가 되풀이 되서도 안된다. 국민연금과 KCGI의 한진家 압박이 정당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