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 소상공인연합회 책망… "열심히 하는 데 왜 뭐라 그러냐"격의없는 소통보다 보여주기 위한 '쇼통' 지적도
  • ▲ 청와대에서 열린 소상공인 간담회.ⓒ연합뉴스
    ▲ 청와대에서 열린 소상공인 간담회.ⓒ연합뉴스

    청와대가 만든 어용단체라는 말을 듣는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깜짝 발언이 나왔다.

    소상공인 업계에서는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싫은 소리를 그나마 아군의 입을 통해 순화해 들으려고 고육지책을 냈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상총련을 소상공인을 대변하는 대표 단체로 인식시키려는 고도의 노림수가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자영업·소상공인과의 동행-골목상권 르네상스'라는 구호로 소상공인들과 만났다. 중소·벤처기업, 대·중견기업, 혁신 벤처기업과의 간담회에 이어 문 대통령이 경제계와 소통하는 4번째 자리다. 특히 소상공인이 다른 경제단체의 들러리가 아닌 주빈으로서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과 대화하는 것은 역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행사에는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 하현수 전국상인연합회장, 방기홍 한상총련 회장, 김윤규 청년장사꾼 대표 등 소상공인 단체와 창업 자영업자 등 190여명이 참석했다. 정부 부처 장관과 여당 국회의원도 참석 대상이다. 대화는 사전 시나리오 없이 방송인 서경석씨의 사회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업계에서 의견을 제시하면 중간중간 정부 관계자가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간담회에서 방 회장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상공 업계에선 예상 못한 깜짝 발언이라는 반응이다. 한상총련은 인태연 청와대 자영업 비서관이 임명 전 만든 단체다.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며 현장 의견과 엇박자를 내 업계에선 어용단체로 분류하는 곳이다.

    소상공 업계에선 방 회장 발언을 비롯해 이날 소통의 자리가 결국 '쇼통'의 자리가 됐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어차피 맞을 매라면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립각을 세웠던 소상공인연합회가 아닌 한상총련을 통해 순화된 표현으로 듣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소상공인연합회에는 이날 발언에 대해 사전 검열을 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현장에 참석했던 다른 소상공인 관계자도 "청와대에서 소상공인 불러놓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달래주려고 부른 것 같다"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회의가 진행돼 이렇다 할 발언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소상공인연합회에 '(정부와 여당이) 열심히 하는 데 왜 뭐라 그러냐'고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 청와대와 여당이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 목소리를 낸 소상공인연합회를) 불러 혼을 낸 셈"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설명대로 격의 없는 대화가 사전 시나리오 없이 진행된 게 아니라 결국 '쇼통'에 그쳤다는 얘기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자신의 어릴 적 얘기를 통해 소상공인 어려움에 공감한다며 한걸음 다가서는 모습을 연출했다. 문 대통령은 "자영업자는 호칭은 사장님이지만, 실상은 자가고용 노동자에 해당하는 분이 많고 중층·하층 자영업자의 소득은 고용노동자보다 못한 실정"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저는 골목 상인의 아들로, 어릴 때 부모님이 연탄가게를 하신 적도 있다"며 "주말이나 방학 때 어머니와 연탄 리어카를 끌거나 배달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도 골목상인과 자영업자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여러분의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은 희망을 가지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자영업과 소상공인은 과다한 진입으로 경쟁이 심한 데다 높은 상가임대료와 가맹점 수수료 등이 경영에 큰 부담이고 설상가상 최저임금 인상도 어려움을 가중한 측면이 있었으리라 본다"면서 "올해는 자영업 형편이 나아지는 원년이 됐으면 한다. 최저임금 인상 결정 과정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의견도 충분히 대변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정부의 최저임금 속도 조절론에 힘을 보탠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더불어민주당과 고용노동부는 국회에서 비공개 당정 협의회를 열고 다음 주 중반 이후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에는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고용 수준과 경제성장률, 기업의 임금 지급 능력 등을 포함한 '경제 상황'을 추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이런 발언이 사후약방문 식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속도 조절 언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14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 10.9% 인상을 결정하자 이틀 뒤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최저임금위 결정을 존중한다"고 사실상 수용 의사를 밝혔다. 문 대통령 공약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려면 내년 이후 평균 15.2%씩 올라야 했다. 10.9% 인상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공약에서 한발 물러서 속도 조절을 인정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7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도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에 대해 "필요하면 보완조치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 새 경제정책은 경제·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발언들이 집권 3년 차를 앞둔 시점에 지지율이 내림세를 보이자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소상공인 의견 수렴에 나선 배경에는 집권 중반기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경제활동인구의 25%쯤을 차지하는 자영업자의 신뢰없이는 국정지지도 하락세를 막기 어렵다는 분석이 깔렸다는 것이다.

    소상공 업계에선 이미 대선 공약은 현실화됐다고 말한다. 정부가 주휴시간을 최저임금 산정기준으로 명문화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올해 실질 최저임금은 8350원이 아닌 1만20원이 됐다는 주장이다.

    소상공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장에선 이미 최저임금이 대선 공약을 넘어 실현됐다고 느끼는데 어용단체에서 하는 내년 동결 발언이 곱게 들리겠느냐"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2022년까지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한 18조원 규모의 전용 상품권이 발행된다"며 "이른바 할인 깡 같은 불법유통을 단속해 지역상권과 서민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하겠다"고 밝혔다.

    또 "골목상권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추진된다"며 "전국 구도심 상권 30곳의 환경을 개선해 지역 특성에 맞는 테마공간과 쇼핑, 지역 문화와 커뮤니티, 청년창업이 어우러지는 복합공간을 조성한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전통시장 활성화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전통시장 지원 예산이 5370억원으로 크게 증액됐다"며 "전통시장 주변 도로에 주차를 허용했더니 이용객 30%, 매출 24%가 늘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전통시장 주차장 보급률을 100%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이날 대화에서 문 대통령은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본격 시행하고, 유통산업발전법 등 상권 보호법도 개정해 자영업자·소상공인 생업을 보호하겠다"며 "올해 근로장려금을 3조8000억원으로 확대했고 자영업자 115만 가구가 혜택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자영업자의 사회안전망을 더 강화하고자 한국형 실업부조제도도 도입하겠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이날 제시된 업계 의견을 지난해 마련한 '자영업 성장·혁신 종합대책'에 추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