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근 용퇴에 채권단 압박 작용했다는 해석…실적부진에 대한 책임론 후임으로 금융 분야 등 타 전문가 올 가능성…한진해운 출신은 반발 클듯
  • ▲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 ⓒ현대상선
    ▲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 ⓒ현대상선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다. 유 사장의 후임 인선도 채권단의 결정에 달렸는데, 새 CEO로 어떤 인사가 물망에 오르고 있는지도 관심사다.

    21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유 사장의 용퇴 의사 표명에는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지난 2011년부터 현대상선이 8년째 매년 적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유 사장이 최고경영자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전날 현대상선은 유 사장이 다음달 주주총회를 계기로 임기 2년을 남기고 용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유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메시지를 통해 "2020년 이후 현대상선의 새로운 도약은 새로운 CEO의 지휘 아래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전달했다.

    사실 업계에서는 유 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용퇴론'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초 3년 임기 연임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유 사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현대상선 정상화'였다. 유 사장 역시 지난해 3분기를 흑자전환 시기로 밝혔지만, 경영 환경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현대상선에 대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압박이 거세졌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상선에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고, 혁신 마인드가 실종됐다"고 지적했고, 급기야 현대상선에 옛 한진해운 출신 외부 인력을 투입했다.

    현대상선의 경영 악화는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576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4분기에만 835억원의 손실을 기록해 2011년부터 8년째, 분기로는 2015년 2분기부터 15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산업은행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유창근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까 예상했다"면서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 책임을 누군가는 짊어져야 하는데, 최고경영자인 유 사장이 용퇴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도 더 나은 그림"이라고 말했다.

    이미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유 사장의 후임 인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최근 현대상선의 사무금융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 반발에 나서는 등 노조 이슈가 불거지면서 해운 전문가가 아닌 금융 분야 등 타분야 전문가가 대표이사로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한진해운 출신도 새 CEO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렇게 될 경우 현대상선 내부 반발이 거셀 수 밖에 없다. 사실상 해운전문가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출신들밖에 없기 때문에 현대상선 내부 사람이 아니라면 타 분야 전문가가 후임자가 될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다. 

    산업은행이 마땅한 적임자를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난 2016년 현대상선 차기 CEO 인선 작업에서도 해외 전문가까지 범위를 넓혀 적임자를 물색했지만, 결국엔 유 사장를 선택했다. 유 사장은 지난 2014년 3월 현대상선을 떠난 지 2년 반 만에 다시 구원투수로 돌아왔다.

    당시에도 채권단은 우선 '현대상선의 경영 실패에 책임이 있는 인사는 배제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현직 임원들은 현대상선에 대해 잘 알고 해운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높지만, 경영 악화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 사장을 다시 대표이사 자리에 올린 것은 그만큼 적임자가 없었다는 반증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대상선이 '도약의 해'로 삼은 2020년을 앞두고 해운에 대해 잘 모르는 인사가 경영을 책임지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오는 2020년 2분기부터 지난해 현대상선이 발주한 친환경 초대형 선박(20척)이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 후임 대표이사로 금융 전문가가 오는 경우, 고강도 혁신을 주문함으로써 회사 경영 정상화를 빠른 시일 내에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해운 업황 특성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시기에 잘못된 판단을 할까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후임 인선에 대해 "대표이사 후임 인선은 산업은행 경영진추천위원회에서 결정할 문제라 예상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