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투자 협약… "토지 3.3㎡당 10만원 올라"국내 생산량 위축 등 車산업 부진 노조 반발 등 숙제도
  • ▲ 전남 함평군 일대 빛그린산업단지 조성 현장. ⓒ성재용 기자
    ▲ 전남 함평군 일대 빛그린산업단지 조성 현장. ⓒ성재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 정책 중 하나인 '광주형 일자리'가 서막을 알렸다. 23년 만에 국내에 완성차 공장을 설립, 1만명이 넘는 고용 효과가 기대되면서 부동산시장도 들썩거리고 있다. 이미 공장부지 주변의 땅값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공장발 훈풍은 광주 일대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메인 투자자 중 한 곳인 현대자동차가 최근 실적 부침을 겪고 있는 데다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노동조합의 반발도 거세게 일어나고 있어 부동산 업계에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광주시가 제시한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지속 창출을 위한 완성차 사업 투자 협약' 최종안에 합의하고 시와 1차 투자 협약을 맺었다.

    이번 협약으로 신설되는 법인은 자본금 약 2800억원 등 7000억원 규모로 설립된다. 시가 자본금의 21%인 590억원가량을 출자한 최대주주이며 현대차는 약 530억원을 출자해 19% 지분 투자자로만 참여한다.

    현대차의 광주 공장은 전남 함평군에 위치한 빛그린국가산업단지 내 약 62만여㎡ 부지에 건설되며 연간 10만대 규모의 완성차를 생산한다. 신규 투자자 유치 등 시의 계획대로 진행되면 2021년 하반기에 가동될 예정이다. 1998년 당시 삼성자동차의 부산 공장 이후 23년 만에 국내 완성차 공장이 들어서는 것이다.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촉진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근 광주는 자동차 산업의 생산 감소로 지역 경제가 침체되고 매년 약 5000명의 청년이 빠져나가는 어려움을 겪었다"며 "하지만 현대차의 완성차 공장이 들어서기만 해도 1만20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고향을 떠났던 청년들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광주의 지난해 연간 총전입은 21만8892명에 그친 반면 총전출은 22만5108명에 달했다. 1년새 6000명 이상이 빠져나간 셈이다.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협약식 이후 시와 현대차가 긴밀한 협의를 하는 중이며 법인 설립은 상반기 내에 마칠 것"이라면서 "생산 판매에 들어가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돌파구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균형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 ▲ 전남 함평군에 위치한 빛그린산업단지 일대. ⓒ이성진 기자
    ▲ 전남 함평군에 위치한 빛그린산업단지 일대. ⓒ이성진 기자
    광주형 일자리가 추진되면서 광주 일대 부동산에도 훈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광주의 경우 지난해 분양시장에서 청약경쟁률 33.8대 1을 기록하는 등 아파트 수요도 높은 편이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인 15.0대 1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특히 광산구의 경우 공장이 들어서는 빛그린산단과 가까워 광주형 일자리의 수혜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광산구 A공인 대표는 "빛그린산단 주변의 땅값이 현대차 공장이 들어선다는 발표 이후 3.3㎡당 10만원가량 올랐다"며 "고용 창출이 본격화되면 지리적 조건이 좋은 광산구 일대까지 부동산 호재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근 B공인 대표도 "빛그린산단은 사실상 광주 권역으로 봐야 한다"며 "예비 근로자들의 수요도 공장 인근보다 광주 도심 쪽이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다만 금방 될 것 같았던 정책이 좌초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현대차 노조의 반발도 심한 상황인 만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광주형 일자리가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풀어야할 숙제가 남아있다.

    우선 현대·기아자동차 노조가 민주노총 등과 연대해 '광주형 일자리' 철회를 위한 3년 투쟁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울산공장에서 경형 SUV를 생산하기로 약속했는데, 광주공장에서도 경형 SUV가 생산될 예정이다.

    현대차가 경형 SUV 생산목표를 대거 높이지 않는 이상 울산공장의 생산물량을 광주공장에 넘겨줄 수밖에 없고, 광주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던 기존 울산 노동자에게는 그만큼 고용불안이 가중되는 셈이다.

    현대차가 레드오션인 내수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결국 일감을 놓고 다른 지역 공장과 '제로섬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기아차 노조,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공동성명을 내고 "광주형 일자리는 전체 노동자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는 '나쁜 일자리 정책'으로 사회 양극화 확대, 소득 불평등 성장을 촉진한다"며 "광주형 일자리 공장이 완공되는 2021년까지 3년간 사업 철회를 위한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특히 현 정부가 노동적폐 1호인 광주형 일자리 협약을 체결하고 탄력근로제, 최저임금제, 노동법 개악 등 반노동·친재벌 정책을 강화하고 적폐 청산과 재벌 개혁을 회피하며 보수화의 길로 가는 것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 ▲ 지난 1월31일 광주시청 앞 광장에서 민주노총 광주본부 노조원들이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1월31일 광주시청 앞 광장에서 민주노총 광주본부 노조원들이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문제는 자동차산업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5년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었지만, 3년 만인 2018년 두 계단 떨어진 7위로 주저앉았다. 2016년 인도에 밀린 데 이어 지난해에는 멕시코에 추월당했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은 내수와 수출이 동반으로 부진해 400만대에 턱걸이했다. 중국, 미국, 일본 등 세계 10대 생산국 가운데 3년 연속 생산이 줄어든 곳은 한국이 유일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통상 압력이 현실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이 역시 부담이다. 미국 정부는 갈수록 늘어가는 자동차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자동차 관세 폭탄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완성차뿐만 아니라 자동차부품에도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안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중국과 유럽이 주요 대상이지만, 한국에 불똥이 퇼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노조 측은 "국내 자동차시장은 이미 포화해 생산시설이 남아돌고 있다"며 "광주형 경차가 내수·수출이 부진해 중도 좌초하거나 실패하면 한국 자동차 산업 위기가 가속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한편, 현대차의 실적 부진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의 지난해 잠정 실적은 매출 97조2516억원, 영업이익 2조4222억원, 순이익 1조6450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의 경우 지난해 96조원에 비해 0.90% 증가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4조5000억원대에서 각각 47.0%, 63.8% 줄어들었다. 특히 2012년 영업이익 8조원, 순이익 9조원 등을 기록한 이후 6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됐다.

    최중기 나이스신용평가 실장은 "현대차와 기아차는 판매 부진 및 가동률 저하로 공정비 부담이 증가한 가운데 국내 공장의 장기간 파업, 통상임금 소송 패소, 리콜을 비롯한 대규모 품질 비용 발생 등 부정적 이슈가 지난 수년간 이어지며 2016년 이후 영업수익성이 주요 경쟁사 평균 이하로 저하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비우호적으로 변화된 산업 환경을 감안할 때 중단기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