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틀 '철도안전원' 초미의 관심사국토부 출신 기관장들 입김 우려
  • ▲ 강릉선 KTX 탈선사고 현장.ⓒ연합뉴스
    ▲ 강릉선 KTX 탈선사고 현장.ⓒ연합뉴스
    철도 당국이 국민이 신뢰하는 철도를 만들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여기저기 흩어진 철도안전 관련 업무를 한데 모아 가칭 '철도안전기술원'이란 컨트롤타워(지휘소)를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유럽연합(EU)의 선진국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철도안전전담기구를 두어 사고징후 조사부터 통계분석을 통한 제도 개선, 차량·장비 인증, 안전교육, 철도사업자·시설관리자 감독까지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철도전문가들은 지난해 발생한 강릉선 KTX 탈선 등 잇단 사고로 철도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만큼 이번에야말로 철도안전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문제는 여건이 녹록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기존 업무를 수행하던 철도기관들의 반대를 넘어야 한다. 조직의 생리상 설령 계륵과 같은 업무라도 막상 내 것을 떼어 다른 누군가에게 주려면 배가 아픈 법이다. 해당 업무가 차량·시설, 안전관리체계 등 인증·평가와 관련돼 있어 '갑(甲)'의 지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더욱 그렇다.

    일각에선 기존 기관에 부족한 인력만 지원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국토교통부가 옥상옥으로 기관장 자리 만들기에 열을 올린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기존 방식대로 단순히 인력을 늘려주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철도전문가들은 우리 철도가 관행대로 '관성'에 따라 흘러간다고 지적한다. 시설 유지보수만 해도 대부분 안전문제가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반복업무가 이뤄지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혁신을 위해선 새로 틀을 짜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는 배경이다.

    가령 자격관리부터 안전관리체계(SMS) 승인·검사, 사고통계, 안전진단, 시설물 검증과 영업시운전(운전·영업·관제) 등의 업무를 보는 한국교통안전공단 내 철도항공안전실에 인력을 추가 배치하면 1인당 업무량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업무 개선 없이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면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사고징후' 등에 대한 조사나 사고사례 분석은 계속 남의 일로 남을 공산이 크다. 관행대로 업무가 이뤄질 수밖에 없어서다. 유럽의 철도선진국들이 독립적인 철도안전전담조직을 두고 관련 업무를 체계화하면서 지속해서 정책·제도, 업무를 개선하는 것과 비교된다. 철도안전기술원 설립은 단순히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려고 다른 조직의 업무를 뺏어오는 차원이 아니라 산재한 업무를 모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검증된 해법인 셈이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쥔 관제권이나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연구·개발(R&D) 인력이 곁다리로 보는 형식승인 업무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해당 업무를 자신이 꼭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국민 안전이나 업무의 효율성보다는 조직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코레일 손병석 사장이나 교통안전공단 권병윤 이사장이 국토부 고위공무원 출신이고, 나희승 철기연 원장이 현 정부 들어 소위 잘 나가는 국책연구기관장인 점도 철도 당국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대표로 있을 때 조직이 쪼그라드는 것을 반길 리 없다.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데도 조직적인 반발을 묵인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대목이다.

    철도 당국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들 기관의 이기주의에 발목이 잡혀 철도안전기술원 설립을 어영부영 처리해선 안 된다. 업무 이관이 생색내기 수준에서 '찔끔' 이뤄져 용두사미가 되면 말 그대로 옥상옥 구조만 만들게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철도 당국은 '지금 아니면 언제, 이 방법이 아니면 어떻게'라는 각오로 철도안전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