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억 넘은 아파트 무순위 청약에 2001명 몰려20개중 17개 단지서 무순위 청약 경쟁률이 본청약 경쟁률 웃돌아정부 분양가 규제도 현금부자에게 유리한 '규제의 역설'
  • ▲ 고객들이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뉴데일리경제DB
    ▲ 고객들이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뉴데일리경제DB

    지난해 9·13부동산대책 이후 대출 및 청약 등 각종 규제로 인해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현금 부자들의 파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출규제로 자금줄이 막힌 서민들은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현금 부자들이 무순위 청약에서 잔여 물량을 쓸어가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21일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20가구가 미계약된 서울 강남 일원동 '디에이치포레센트' 무순위 청약 접수에 총 2001명이 접수해 평균 1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는 3.3㎡당 4569만원으로, 가장 작은 전용면적 59㎡도 분양받으려면 최소 11억5000만원이 든다. 9억원이 넘어 중도금 대출이 어려운만큼 청약 문턱이 높았고 당첨된 사람 중에서도 일부 부적격자나 미계약자가 나오면서 30%가 미계약 됐다.

    이처럼 아파트 무순위 청약에 현금 부자들이 몰리는 것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비롯해 인기 지역에서 아파트가 분양되면 일반적인 모습이 됐다. 대부분의 아파트 분양에서 무순위 청약경쟁률이 본청약경쟁률을 크게 웃돈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실제 올해 2월 아파트 미분양·미계약분에 대한 무순위청약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난 13일까지 사전 및 사후 무순위 청약접수를 진행한 전국 20개 민간분양단지 가운데 17단지에서 본청약 경쟁률보다 무순위 청약경쟁률이 높게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지난 4월 분양한 '구리 한양수자인구리역' 아파트 무순위 청약(21가구)은 19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본청약시에는 94가구 모집에 990명이 청약해 평균 11대 1의 경쟁률에 그쳤다.

    분양업계에서는 현금동원력이 큰 다주택자들이 청약통장이 필요없는 무순위 청약을 통해 미분양 아파트를 쓸어 담는 '줍줍 현상'이 무순위 청약경쟁률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민들은 이미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고 대출규제로 인해 자금마련이 어려운 탓에 청약이 쉽지 않아서다.

    이에 국토부가 지난달 예비당첨자 비율을 80%에서 500%로 확대했지만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대출규제가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막고 분양가상한제가 현금부자들이 싼 값에 집을 사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정부의 규제들이 분양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수요자들을 구분 짓거나 장벽을 높게 만들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최근 정부가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 집값 상승세를 막기 위해 분양가도 규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분양가를 규제해도 이미 인기지역에서는 9억원이 넘기 때문에 중도금 대출이 필요없는 현금 부자들에게만 기회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분양가 산정에 부담을 느낀 조합‧시공사들이 후분양으로 전환하거나 분양 물량을 축소하게 되면 오히려 주택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한 전문가는 "후분양의 경우 분양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더더욱 청약이 어렵다"면서 "정부 규제가 까다로워지면서 자산가들에게 유리한 시장이 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