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산업성 "한국조선업, WTO 제소 우선순위"…지속적인 제동 걸어조선사 합병에 불똥 튈 가능성 적어…WTO 제소와는 별개의 사안으로 분석일본 조선사가 합병 반대할 명분 없어…"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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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중공업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여파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 조선업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현대중공업 합병 승인은 엄연히 다른 사안이고, 설사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더라도 일본이 직접적인 경쟁 관계가 아닌 한국 조선사의 기업결합 심사를 불승인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한국 조선업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여가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에도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하고 있다.

    일본 경쟁당국이 두 회사의 결합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달 말 '2019년 불공정무역보고서'에서 "한국 조선업을 WTO 제소 우선순위에 두겠다"며 "국책금융기관(산업은행)이 조선산업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지원한 것은 WTO의 '보조금과 상계조치에 대한 합의'에 어긋난다"고 적시했다.

    일본은 한국 조선업에 시비를 건 적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한국 정부의 조선·해운 정책이 글로벌 해운 운임과 선박 가격에 영향을 준다면서 보조금 협정 위반 명목으로 WTO에 제소해 분쟁 절차에 들어간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선사 합병에도 불똥이 튀진 않을까 걱정이 컸지만, 업계 안팎에선 두 사안을 별개로 보고 있다. 보조금 협정 위반에 대한 일본의 주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돼 왔던 사안으로 이번 조선사 합병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기업결합 심사는 국가별로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글로벌적 차원의 기준을 갖고 임해야 한다. 개별 기업에 집중하기 보다 업계 전반에 걸쳐 나타날 영향을 고민해야 한다. 더군다나 앞서 WTO 제소를 언급한 경제산업성은 기업결합 승인을 결정하는 당사자도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한국 조선업 보조금 관련 WTO 제소는 지난해부터 이미 나왔던 내용이고, 달라진 건 없다"면서 "일본의 WTO 제소 문제와 기업결합심사 승인은 다른 기준을 갖고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조선업을 대변하는 단체인 일본조선공업회(IHI) 회장은 지난달 열린 기자회견에서 "압도적인 조선그룹이 탄생하는 건 매우 위협적"이라며 "각 국 공정기관이 이를 그냥 지켜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통합 실현에 회의적 견해를 보인 것은 맞지만,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절차의 일환으로 기업결합 신고서를 각국 경쟁당국에 제출하고 있다. 한국 공정위와 중국 정부에 기업결합 승인을 요청한 데 이어 EU와는 사전협의 중이다. 일본과 카자흐스탄에는 아직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여파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더라도 일본이 기업결합 승인을 반대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 조선사 합병을 끝까지 반대할 경우, 일본이 얻는 것 보다 잃는 게 더 많아질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일본 선사들은 대부분 선박을 자국 조선소에서 발주해 한국 주요 조선사의 주요 고객이 될 수 없다. 또 합병을 불허하게 되면, 일부 선종을 한국 조선소에 발주하게 되더라도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현대중공업이 일본 당국의 허가를 꼭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된다. 일각에선 일본 정부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끝까지 반대하면 일본에서의 영업을 포기해도 현대중공업이 손해볼 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기업결합 심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국가는 중국이다. 현대중공업 계열사들의 경우 산업용 로봇, 중장비, 건설기기 등에 있어서 중국과의 거래량이 꽤 많기 때문이다. 중국이 큰 시장인 만큼, 현대중공업도 중국의 심사 결과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국 1~2위 조선소인 중국선박공업(CSSC)과 중국선박중공업(CSIC)이 통합하며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한국과 중국의 양국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서 현대중공업 합병에 우호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와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본과의 거래량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통합에 반대한다고 해도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오히려 중국 시장에서 현대중공업 계열사들이 거래량을 늘리고 있어 중국의 심사 결과를 더 신경써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