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시설 철거 문제 관련 정부 실무회담 제안 거절현대그룹, 당혹감 감추지 못해… 신중함 유지하면서도 답답한 상황정부, 부정적 여론 의식… 금강산 관광 재개 소극적인 태도 일관 문제
  • ▲ 현대그룹 금강산관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가 열린 지난해 11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리택건 부위원장이 금강산관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위해 금강산호텔을 찾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현대그룹
    ▲ 현대그룹 금강산관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가 열린 지난해 11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리택건 부위원장이 금강산관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위해 금강산호텔을 찾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현대그룹
    북한의 금강산 시설 철거 통보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다시 안갯속으로 빠지면서 재계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당초 정부 기조에 맞춰 남북경제협력에 대비하는 등 관련 준비에 나섰으나, 소극적인 정부 탓에 남몰래 속앓이만 하다가 피해만 입게 될 상황이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금강산 시설 철거 문제와 관련 상황이 악화된 만큼, 이번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이 실무회담까지 거절하며 우리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는 등 사태가 이렇게까지 온 데에는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한몫 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대북사업을 주도해온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아산을 비롯해 남북경협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중소기업들은 물론, 정부 기조에 발맞춰 관련 사업 모색에 나섰던 일반 기업들도 자칫 불똥이 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9일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문제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실무회담 제안을 거절했다. 통일부는 "오전에 북측이 금강산국제관광국 명의로 통일부와 현대아산 앞으로 각각 답신 통지문을 보내왔다"며 "북측은 시설 철거 계획 및 일정과 관련해 우리 측이 제안한 별도의 실무회담을 가질 필요 없이 문서교환 방식으로 합의할 것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 시찰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북측에 실무회담을 열어 철거 문제를 포함한 금강산 관광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안했으나 하루만에 거절당한 것이다. 

    재계는 신중함을 잃지 않고 있지만,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남북 관련 문제는 정부 없이 논의가 불가한 만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북 경협의 상징이었던 현대그룹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금강산관광 20주년 행사를 진행하는 등 대북사업을 찬찬히 준비 중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난 것이다. 현대아산은 "차분히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지만 회사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금강산관광산업 관련 50년 독점사업권을 보유한 현대아산이 금강산에 투자한 금액은 총 7670억원에 이른다. 현대그룹은 5597억원을 투자해 금강산 사업 관련 해금강-원산지역 관광지구 토지 지용에 대한 50년 독점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다. 관련 시설에는 2268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현재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살사건 이후 중단된 상태다. 북한은 2010년 금강산 지역의 남측 자산을 몰수·동결하기도 했다. 현대그룹은 사업 중단 전 연 30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지만,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후 매출손실 1조5000억원, 영업손실 22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방 식어버린 경협 논의… "정부 책임 커"


    재계에선 남북경협과 관련해 이같은 상황이 벌어진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채 금강산 관광 재개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일을 키웠다는 비판이다. 남북경협을 시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재계는 지난해 9월 '평양 공동선언' 이후 남북경협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제단체와 주요 그룹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사례 발굴과 시장 조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관련 논의에도 속도가 붙는듯 했다. 삼성그룹과 GS그룹, 한화그룹도 경협과 연관성이 높은 계열사 주도로 TF를 구성했다.

    하지만 남북경협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팀을 운영했던 한 그룹 관계자는 "팀을 구성하고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긴 하지만, 경협 관련해서 진행 중인 내용이 없다"면서 "관련된 활동을 하지 않아서 이번 사태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도 사실상 할말이 없다"고 전했다. 

    경협 논의도 보여주기식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경제단체와 기업들도 경협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일 수 있지만, 정부의 허가 없이는 어떠한 것도 진행할 수 없는 남북경협에서 최종 책임자인 정부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금강산 시설 철거가 현실화될 경우, 다음은 개성공단이라는 위기의식이 재계에 번지고 있다. 정부가 남북경협에 대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북한에 제시할 경우도 부담은 있다. 관련 논의를 이어왔던 기업이나 손 놓고 있던 기업들 모두 다시 새 판을 짜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단순한 관광 재개 이외에도 이번 사태 해결을 놓고 다양한 해법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입장에서도 금강산 관광을 포기할 수 없는 만큼, 북한을 만족시키기 위한 솔깃한 제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북사업은 정부 없이는 진행을 할 수가 없는 만큼, 정부가 그동안 북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 "금강산 다음에는 개성공단이 위험해질 수 있어 정부가 확실한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기업들 모두가 힘들어질 수 있는 위기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