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22.53달러… 2002년 이후 최저조선·해운업계 불확실성 확산선주들 관망 → 투심 위축 → 발주 연기
  • ▲ 삼성중공업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삼성중공업
    ▲ 삼성중공업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삼성중공업
    최근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조선·해운업계 낯빛이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유가 하락까지 겹치면서 해양플랜트 일감을 기다리던 조선업계 뿐만 아니라 해운업계 마저 투자 심리 위축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제유가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배럴당 20달러선까지 밀리면서 급락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10.6%(2.69달러) 폭락한 22.53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 19일 미국의 '석유 전쟁' 중재 기대감 등으로 20% 이상 반등하며 역대 최고 상승을 보였지만 다시 하락한 것이다. 그 전날인 18일에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6.58달러(24.4%) 내린 20.37달러에 거래를 마치면서 2002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내기도 했다.

    급락의 주요 원인은 코로나19 여파가 원유 수요 감소로 이어진 탓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감산 합의에 실패 이후 가격 인하와 증산 계획을 밝히면서 석유 전쟁에 돌입한 것도 유가 폭락의 원인이 됐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연료 수요가 최대 20%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 등을 비롯한 산유국들이 이번달 안으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거나 코로나19의 불확실성이 완화되지 않는 한 국제유가가 안정화될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선·해운업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번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업황에 가장 큰 변수인 유가가 요동치면서 불확실성을 떨쳐버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올해 초 해양플랜트 일감 확보를 위해 채비에 나섰던 조선업계도 근심이 쌓이고 있다. 해양 설비 프로젝트가 올해 초부터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조선 3사가 일감을 따낼 가능성도 커졌으나, 저유가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해양플랜트 발주가 급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규 발주 급감 뿐만 아니라 선주사들이 프로젝트를 취소하거나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 통상적으로 해양설비는 국제유가가 60달러 이상일 때 신규발주가 늘어난다. 하지만 이같은 하락추세가 지속되면 조선업계의 수주 목표 달성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조선업계는 지난해 해양플랜트 수주를 잇달아 따내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던 참이었다. 삼섬중공업은 작년 4월 인도 릴라이언스의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및 하역설비(FPSO), 대우조선해양은 미국 셰브런으로부터 수주한 반잠수식 원유생산설비 선체 1기를 수주했다.

    해운업계도 마음이 편치 않다. 사실 해운업종의 경우 유가 급락이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나 코로나19 사태 장기화가 변수가 됐다. 보통때라면 유가 급락으로 해운업계의 부담이 다소 완화되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야 하지만, 과잉공급 및 수요부진 상황으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특히, 올해부터 시행된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영향으로 선박 투자와 거래에도 단기적인 타격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투자 심리가 위축돼 선사들이 발주를 늦추는 사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환경규제로 저유황유를 사용해야 하는 해운업계의 경우 유가 하락이 운항비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 한편, 재무적 여건이 악화된 선주들로 하여금 "노후선으로 더 버텨보자"는 식의 관망세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아 신규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해운업계에서는 이미 코로나19 영향이 감지되고 있다. 벌크선 운임지수인 BDI는 중국 원자재 해상물동량이 감소하며 2주간 26% 하락해 지난달 10일 411로 최저점 기록했다. 중국발 컨테이너 운임지수(CCFI)는 지난 13일 기준 898.44로 지난해 말에 비해 두 달 만에 7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발원지인 중국의 공장가동률 감소, 세계적인 수요감소 등의 영향으로 해운 교역량이 최근 1~2개월간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IMO 규제시행 이후 해운·조선 업황에 가장 큰 변수인 유가가 크게 변동함으로써 선박 투자와 거래에도 단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