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침체 속 공격적 투자 단행 여파 겹쳐4개사 부채 47조… 전년 41조 대비 15.5% 증가코로나19 등 대외변수 여전… 업황 부진 탈출 당분간 어려워
  • ▲ 자료사진. ⓒ정상윤 기자
    ▲ 자료사진. ⓒ정상윤 기자

    지난해 부채가 전년 대비 6조원 이상 늘어나는 등 국내 정유4사의 전반적인 재무안정성이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업황 침체기 이전에 단행한 공격적인 투자들이 침체기를 맞으면서 역효과가 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러 대외변수로 당분간 업황 부진 탈출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재무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31일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4개사의 부채는 모두 47조원으로, 전년 41조원에 비해 15.5%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4개사의 자본이 41조원대를 유지하면서 부채비율도 99.9%에서 116%로 높아졌으며 부채가 늘어나면서 이자비용도 28.8% 증가했다. 여기에 업황 침체에 따른 영업성적 저하가 겹치면서 이자보상배율은 8.05에서 4.16으로 반토막났다.

    4개사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의 재무 성적이 전년대비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SK이노베이션의 부채비율은 117%로 전년 86.9%에 비해 30.0%p 악화됐다. 같은 기간 정유4사의 평균 부채비율 변동률은 16.7%p이며 SK이노베이션이 유일하게 평균 이상의 변동률을 기록했다.

    차입금의존도는 54.7%로 전년 35.4%보다 19.3%p 높아졌다. 이 기간 정유4사의 평균 차입금의존도 변동률은 11.6%p로, 이 역시 SK이노베이션만 평균 이상의 변동률을 보였다.

    유동비율 역시 187%에서 165%로 저하되면서 -21.6%p의 변동률을 기록, 정유4사의 평균 1.59%p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단기차입금 비중이 2.26%에서 11.3%로 악화된 만큼 지난해 4분기와 같은 수천억원대 순손실이 재현될 경우 유동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기차입금 비중의 변동률 역시 SK이노베이션이 가장 높다.

    2017년 이후 투자 부담 증가, 대규모 배당 및 자기주식 취득에 따라 부족자금 발생이 가중되고 있는데다 최근 업황 부진에 따라 영업성적도 내리막을 걸으면서 재무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 역시 이 같은 점을 반영, 기업 신용등급을 'Baa1'에서 'Baa2'로 한 단계 강등시켰다.

    무디스는 "SK이노베이션의 재무지표가 지난해 상당히 악화했으며 향후 12~18개월간 의미 있게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반영했다"며 "핵심사업인 정유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의 지속적인 부진, 높은 수준의 설비투자 및 주주환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S&P도 영업환경 악화에도 공격적인 투자계획으로 향후 2년간 재량적 현금흐름이 적자를 지속할 것이라며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0'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S&P는 SK이노베이션의 조정 차입금이 올해 10조4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SK이노베이션의 전년대비 성적이 4개사 중 최악이었다면, 지난해 가장 낮은 재무성과를 보인 곳은 에쓰오일인 것으로 조사됐다.

    에쓰오일의 부채비율은 151%로, 4개사 중 가장 높았으며 차입금의존도 역시 90.4%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4개사 평균 차입금의존도는 평균 55.9%다. 이에 따라 이자보상배율 2.29 역시 4개사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년대비 6.55p 낮아지면서 4개사 중 가장 많이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유동비율도 97.9%로 가장 낮았으며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도 2910억원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4개사 평균 유동비율은 141%이며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는 평균 1조311억원이다. 단기차입금 비중(39.4%) 역시 에쓰오일이 가장 낮았다.

    에쓰오일 역시 공격적인 투자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에쓰오일은 정유사업의 불확실성과 큰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몇년간 석유화학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2015년부터 약 4조8000억원 규모의 잔사유 고도화시설(RUC)과 올레핀 다운스트림(ODC) 등 본격적인 투자 진행으로 꾸준히 재무 부담이 확대됐으며 사업다각화와 별개로 대규모 배당이 진행되면서 재무건전성이 지속 악화됐다.

    여기에 최근 국내외 영업 환경마저 불확실해지면서 창사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전반적인 지표들이 경쟁사에 비해 열위하지만, 유동성 관련 지표들은 전년대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장 유동비율이 2018년 95.2%에서 111%로 16.5%p 개선됐으며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도 1626억원에서 4804억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또 단기차입금 비중도 39.2%에서 22.1%로 17.1%p 낮아졌다.

    이외에 차입금의존도(66.2%), 부채비율(136%), 이자보상배율(4.61) 등의 평균에 못 미쳤으나, 전년에 비해서는 평균 이상의 개선세를 보이면서 안정성이 제고됐다.

    다만 이 같은 재무성적은 코람코자산신탁과 함께 SK네트웍스의 직영주유소를 인수하는 작업의 여파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1분기 재무구조는 재차 저하될 공산이 크다. 최근 몇년간 준비 중이던 기업공개(IPO) 역시 업황 부진과 재무부담 가중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권기혁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정유업계는 사업다각화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왔으며 이에 따라 차입금이 2016년 이후 크게 증가했다"며 "투자가 완료된 이후에도 이익창출 규모가 축소세를 보이고, 전망도 밝지 않다면 수익창출능력 대비 차입금 부담 측면에서 재무안정성 악화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