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D-11, 2022년 효력… 한국 2025년 도입 결정인기협 "게임과몰입 질병 분류시 '생산·고용' 감소"'게임계 VS 의료계' 입장차 속 민관협의체 해법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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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국제질병사인분류 개정안(ICD-11)을 채택한 지 1년이 됐다. 전세계 게임업계와 게임 관련 정부기관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 지난해 5월 '게임과몰입'을 질병으로 공식 인정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임=질병'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국내에서도 향후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두고 게임계와 의료계 간 찬반 논쟁이 여전히 뜨겁다. 관련 부처까지 입장차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정부가 해법 마련에 나선 상태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게임과몰입' 질병 분류, 총생산 '5조' 감소… 고용기회도 상실"

    ICD-11이 오는 2022년부터 WHO 회원국에 효력을 미치면서 국내에는 통계청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이 논의되는 2025년부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지난해 WHO의 결정 이후 관련업계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시 3년 간(2023~2025년) 최대 11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데 입을 모아왔다. 

    각종 대내외적 악재로 국내 게임산업마저 침체기에 빠진 가운데 관련업계에선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이 미칠 부정적 영향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게임시장이 2017년 이후 지속적인 성장률 하락세를 보이면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시 관련 산업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으로 인해 연간 5조원 이상의 총생산 감소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협회가 발표한 '(ICD-11) 게임이용 장애 질병 분류의 경제적 효과 분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로 게임산업은 연평균 2조~3조 5000억원 규모의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 게임산업 위축에 따른 불필요한 수입액은 연간 8600억원, 치유부담금 등 추가 사회적 비용은 7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협회 측은 "게임산업이 질병 분류에 따라 28%의 매출 감소가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5조 2526억원의 총생산 감소효과가 예상된다"며 "고용창출 측면에서도 3만 4000명 이상이 고용기회를 잃는 것으로 분석되는 등 청년실업 문제를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유병준 서울대학교 교수는 "게임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높고 국내 게임업체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상황"이라며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로 인해 발생하는 산업 위축, 사회적 비용 증가, 게임 이용자의 부담 증가를 따졌을 때 그 긍정적 가치가 분명한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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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계-의료계' 입장차 여전… 난항 빠진 민관협의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두고 게임계와 의료계 간 갈등은 현재진행형인 상황이다. 과학·의학적 근거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만큼 게임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해서는 안된다는 게임계와 달리, 의료계는 게임과몰입에 대한 진단 및 치료가 일부 이뤄지고 있는 점에 비춰 질병코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관련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두 부처 모두 유기적 공조를 통해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는데 뜻을 같이 하고 있지만,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근본적 인식은 각각 게임계, 의료계와 궤를 같이 한다.

    최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게임의 순기능이 부각되면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일부 개선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지만, 게임을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기만 하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WHO까지 게임을 권장하고 나섰지만, 게임과몰입과는 별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언택트 문화 확산에 따라 게임의 일부 기능들이 재평가되고 있지만, 이는 여가문화로서의 게임을 대변하는 정도에 그칠 뿐 게임과몰입 문제와는 별개로 따져야 한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과 관련,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출범한 국무조정실 중심의 민관협의체 역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1차 회의(7월) 이후 총 다섯 차례 회의가 진행됐지만, 올해에는 코로나19 등에 따라 관련 논의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말 5차 회의에서 결정한 연구용역 계획(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의 과학적 근거 분석·게임이용장애 국내 실태조사·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분석) 역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한 부담감을 비롯 연구 난이도에 비해 짧은 수행기간 등에 따라 연달아 유찰되기도 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게임에 대한 WHO의 인식조차도 변화가 생긴 시점에 의료계는 여전히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점이 아쉽다"며 "게임의 순기능이 잇따라 부각되고 있는 만큼 민관협의체에서 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들이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