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지친 경제계 규제철폐 기대 불구 현행기조 유지청년·노인 치중 한국판 뉴딜…3040일자리대책 미비높은 최저임금·주52시간제 기업부담 여전…원격의료 기대감도 차단
  •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권창회 사진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권창회 사진기자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두고 경제계 반응이 신통치 않다.

    코로나19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한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극복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그동안과는 다르다는 분위기가 감돌면서 꽁꽁 묶였던 규제가 철폐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에 못미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고심끝에 내놓은 경제전략이 기존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일자리사업 역점두면서 경제허리 40대 또 찬밥

    정부가 지난 1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가진 비상경제회의에서 "위기상황에서 국민의 삶을 지키고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경제시대 일자리의 대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포용국가 기반을 빠르게 확충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이런 정부의 의지를 하반기 정책방향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을 위한 선도형 경제를 구축하겠다는 정부의 첫번째 전략은 한국판 뉴딜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판뉴딜 사업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신규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투자규모를 대폭 확대하며 진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공일자리를 늘려 청년과 노인인구에 제공하는 기존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작 경제중추인 3040 고용률 진작에는 소극적이었다.

    통계청의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40대 실업률은 2.8%로 지난해 같은달 2.5%보다 0.3%p 늘었다. 지난 3월(2.7%)보다 0.1%p가 증가했다. 실업자만 놓고 볼때 청년층은 작년 50만7000명에서 올해 37만3000명으로 13만4000명 줄어든 반면 40대는 16만9000명에서 18만2000명으로 늘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산업이 확산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청년층의 경우 본업인 학업으로 돌아가는 등 비경제활동 인구로 편입됐지만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40대 구직자들은 여전히 실업자로 떠돌고 있는 셈이다.

    미래통합당 추경호 의원이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1~4월 실직자 207만명중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구주는 86만6000명으로 41.7%에 달했다. 지난해 보다 24.4% 폭증했다. 가구주 실직자중 52만3000명은 비자발적 실직자였다.
  • ▲ 4월 고용동향. 연령계층별 실업자 및 실업률. 20대 실업률은 줄어든 반면 40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 4월 고용동향. 연령계층별 실업자 및 실업률. 20대 실업률은 줄어든 반면 40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직한 3040을 위한 정부정책은 재취업을 위한 교육, 이들을 고용한 기업에 고용촉진장려금을 지원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교육프로그램이나 지원비중도 청년, 경력단절여성 등에 비해 열악하다.

    '리바운드40'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나온 일자리 패키지 정책은 40대 구직자들에게 현장밀착형 직업훈련을 제공하거나 단기 실무 재교육을 위한 전문대 조기취업형 계약학과 개설해 구직활동을 돕는다.

    고용촉진장려금을 받을 수 있는 대상도 중위소득 100% 이하로 제한됐고 재취업교육을 받는 동안 지급하는 생계비는 4인가구 기준 월 110만원에 불과하다. 구직활동 지원금 규모가 대폭 확대되고 취업성공패키지, 다양한 공공 일자리가 공급되는 청년·여성·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과는 대조적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단기알바나 공공일자리로 채워넣을 수 있는 청년·노령 일자리 대책과 달리 중장년층 고용대책은 단순히 재원투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기업이 이윤을 낼 수 있는 생산환경을 조성하는 등 근원적인 고용환경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세금감면 '찔끔' 공장 지을땅도 안내주는 리쇼어링

    위축된 투자활성화 대책의 대표격인 리쇼어링(유턴기업 정착지원) 정책도 부실하기만 하다.

    해외로 진출했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기업에게 세금 감면이란 당근을 제시했지만 정작 수도권 공장총량제와 같은 규제에는 손대지 않았다. 유턴기업이 국내에 투자하는 돈에 대한 세액공제도 대기업 1%, 중견 3%, 중소 7%로 나뉜 기존제도를 일원화해 간편하게 바꾸겠다는데 그쳐 실질적인 효과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쇼어링 정책에서 그나마 개선된 부분은 해외사업장 생산량을 50% 이상 줄이고 국내로 들어와야 세제 감면 혜택을 받던 것에서 생산 감축량에 비례해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을 택한 점이다. 해외사업을 전면 축소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국내 이전을 도모하겠다는 전략인데 이같은 방식은 생산방식이 고도화돼 있고 생산량이 많은 대기업 유턴에는 도움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세액공제율 일원화나 생산량 감축 기준 완화 등이 중소기업의 국내 복귀에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방글라데시에 진출했다가 4년전 경기도 고양시로 복귀한 유진엘이디 유원종 대표는 "당시 국내 복귀기업 선정을 위한 절차가 복잡했고 국내 부지 매입과 공장 신축·생산설비 구축이 필요했지만 수도권은 이에 대한 지원이 없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며 "수도권내 유턴기업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입지 및 설비 보조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 ⓒ한국경제연구원 자료
    ▲ ⓒ한국경제연구원 자료
    기업 해외 진출의 가장 큰 원인인 고임금 저효율 노동력 문제를 개선할 정책도 미비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 단위노동비용은 116으로 중국, 미국, 인도, 일본, 독일 등 글로벌 기업이 많이 진출한 주요 10대국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가별로 2010년 단위노동비용을 100으로 할때 2018년 한국의 단위노동비용은 116으로 상승한데 비해 리쇼어링 경쟁국들은 94로 하락했다. 상품 1개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비용을 뜻하는 단위노동비용 폭증으로 노동생산성이 급감해 제조원가 경쟁력이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일본 -3.8%, 독일 -2.7% 등 주요 제조국 단위노동비용이 하락하는 동안 한국은 가장 높은 2.5% 상승했다.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폭과 주52시간 등 노동규제가 강화된 탓이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주52시간제 완화는 커녕 3개월 이내 탄력근로제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정부는 다만 최대 6개월까지 이를 늘릴 수 있는 별도 유형을 신설하기로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못했고 근무체계 개편을 위한 무료 노무상담 지원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1년에 90일로 제한돼 있는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상반기에 이미 소진한 기업들이 많다"며 "이들 기업에 대한 인가 제한기간에 대해 한시적으로 보완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 ▲ 현대중공업 노조 시위 현장ⓒ뉴데일리 DB
    ▲ 현대중공업 노조 시위 현장ⓒ뉴데일리 DB
    원격의료 길 열리나 싶더니…"그럴 의도 없다"

    그린뉴딜과 함께 한국판뉴딜의 두축중 하나인 '디지털뉴딜'이 추진됨에 따라 기대됐던 원격의료 도입 움직임도 거취가 불분명해졌다.

    정부 정책계획에 따르면 향후 5년간 76조원을 쏟아붓는 한국판뉴딜 일환으로 노인·건강취약계층 42만명에게 웨어러블과 모바일 기기, 인공지능 스피커 등을 보급해 원격 건강관리를 추진한다. 1조4000억원이 들어가는 비대면산업 육성 계획의 핵심이다.

    이를 두고 원격의료 도입을 기대했던 경제계에서는 추후 의료법 개정을 통해 원격의료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은 "원격의료에 대해 과거에는 부정적 입장이었지만 최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서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원격의료는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에 일차적으로 허용하되 대형병원 중심의 공공의료체계를 변경하려는 의도는 없다"며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한 원격관리 등 비대면 의료서비스는 여러 비대면산업 육성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비대면 원격의료와는 레벨을 달리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의료부문의 비대면 산업 육성은 디지털헬스와 관련된 것이 중심"이라며 "원격의료라는 명칭도 비대면의료로 바꾸기로 복지부가 얘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전화상담·처방 건수가 26만건을 넘어섰고 서울대병원이 운영한 경북 문경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가 여전히 규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원격의료 허용 기조는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번번히 좌초됐다. 원격의료를 도입하면 환자들이 대형병원에만 몰려 소규모 의료기관들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명분이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비대면진료가 도입될 경우 '활용할 의향이 있다(72.7%)'는 응답이 '없다(27.3%)'는 응답에 비해 2.7배나 높았다. 비대면진료를 활용할 의사가 없다고 답한 응답자중 절반 가까이(47.2%)는 비대면 진료시의 오진가능성, 의료사고 문제 등에 대한 각종 부작용이 해소된다면 활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비대면진료에 대한 국민들의 긍정적 인식이 큰 만큼 도입에 따른 부작용 방지방안 마련을 전제로 관련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