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주도 건의서, 전경련 의사 묻지도 않아이동근 경총 부회장 부임 후 갈등 노골화청 이호승 실장, 상의 무협만 방문
  • 통합론으로 긴장관계가 조성됐던 전경련과 경총과의 갈등설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정부 이후 운신의 폭이 좁아진 전경련은 가급적 잡음을 차단하려 하지만, 정부와 주변 단체들의 도발 아닌 도발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경총은 지난 13일 곧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법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담은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건의서에 뜻을 함께한 경제단체는 경총을 비롯해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곳이었다. 통상 경제5단체로 꼽히는 전경련은 제외됐다.

    전경련은 중대재해법 국회 논의시절부터 함께 해 온 단체다. 지난해 12월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할 때도 참여했고,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이틀 전인 지난 1월7일에도 경총과 자리를 같이 했다. 3월 25일 1차 건의서에도 전경련은 포함 됐었다.

    하지만 이번 2차 건의서 작성 과정에서 경총은 전경련에는 의견을 별도로 물어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뒤늦게 건의서 제출 소식을 들은 전경련 측에서 동참 의사를 전달한 뒤 경총은 전경련을 참여 단체 명단에 추가했다. 경총 관계자는 "1차 건의서는 국회에 보완입법을 요구하는 내용이어서 각 단체가 의견을 교환하는 절차를 거쳤다"면서도 "정부에 의견을 제출하는 이번 건의서는 경총 단독으로 작성한 내용으로 추후 동참 의지를 밝힌 단체를 추가한 것"이라고 했다.

    두 단체의 불화는 지난 2월 불거진 통합론 이후 악화일로다. 손경식 회장은 반기업법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명분으로 전경련 흡수통합론을 제기했고 이에 전경련은 불편한 기색으로 거절했지만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전경련 관계자는 "전경련은 대기업 가입사가 80%이고, 경총은 80%가 중견·중소기업"이라며 "역할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단체가 합친다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다"고 했다.
  • 갈등설은 지난달 이동근 신임 경총 상근부회장 취임 이후 더욱 가열되고 있다. 실질적 진두지휘를 하는 이 부회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을 지낸 인사로 경총의 조직확대를 우선과제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재계 관계자는 "한지붕에서 지내던 두 단체가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부딪히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라며 "덩치 키우기에 집중하는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전경련이란 단체가 불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경련 견제에 청와대는 아예 노골적이다. 김상조 퇴임 이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올라선 이호승 실장은 취임 인사차 경제단체들을 잇따라 방문했는데 전경련만 쏙 뺐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경련은 대한상의나 경총과 회원사가 중복돼 방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회원사 중복은 전국 소상공인부터 대기업까지 모두 아우르는 대한상의과 경총이 더 많이 겹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경제단체들도 전경련을 대하는게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새로 무역협회 수장에 오른 구자열 회장은 취임 인사차 손경식 경총회장만 찾았다. 무협측은 "전경련 일정은 조율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취임한 최태원 상의회장도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만나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로 부터 적폐로 낙인 찍힌 전경련과 가까이 지내는게 부담으로 작용한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반기업 정서가 계속 높아지고 규제가 날로 강해지는데 재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경제단체들의 불화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