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투‧알펜루트 등 수천억~1조 원대 피해팔 때는 '안전성 보장'...환매 중단되니 책임 회피금융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피해 키워
  • ▲ 시위 중인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 뉴데일리
    ▲ 시위 중인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 뉴데일리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이어 최근 디스커버리펀드 사건으로 수천억 대의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금융당국의 안일한 대처와 펀드 판매사들의 무책임한 대응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있다.

    유사 피해 사례가 계속되는데도 금융당국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고 판매사들은 책임을 회피한 채 이리저리 빠져 나갈 구멍만 찾으면서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1일 전국 사모펀드 피해자 단체들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새 '디스커버리펀드' 외에도 '라임CI', ‘젠투(Gen2)’, ‘독일 헤리티지’, ‘이탈리아 헬스케어’ 등 해외 자산 등에 투자하는 형태의 유사 펀드 상품들이 잇따라 환매 중단 사태를 겪었다.

    라임CI 펀드의 피해 규모는 1조6천억 원대에 이르고 젠투 펀드는 1조900억 원, 알펜루트 펀드 3천670여억 원,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1천840여억 원 등 10여개의 펀드 상품들이 잇따라 환매 중단되면서 적게는 1천억 원대부터 많게는 1조 원대가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들 펀드와 관련한 민원이 2천 건에 육박하는 등 피해자들의 원성이 빗발치자 지난 3월 올해 상반기 내로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와 달리 지금까지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팔 땐 “100% 안전하다”…환매 중단 되니 ‘나몰라라’

    사모펀드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판매사들의 무책임한 대응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환매 중단 사태를 겪은 펀드 대부분은 해외 자산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형태로 구조가 복잡해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투자자들은 정확한 이해가 어렵다.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100% 안전한 상품’, ‘원금 손실 걱정이 없다’는 말들로 투자를 부추기는 금융기관들의 권유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피해자들은 "금융기관들은 상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해당 상품에 가입했을 때 얻어지는 보상만 강조한다"며 "안전한 상품이라는 금융기관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 피해를 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150억 원대의 피해가 발생한 ‘피델리스 무역금융 펀드(피델리스자산운용)’에 투자한 A씨는 지난 2019년 신한은행 모 지점 직원의 권유로 퇴직금을 털어 넣었다. 당시 해당 직원은 “해외 우량 수출입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로 검증된 채권에 투자한다, 모든 채권이 보험에 가입돼 있기 때문에 지급이 보장돼 있다”며 적금을 해지해서라도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해당 펀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환매 중단됐고 은행 측은 “매출 채권이 연장됐으니 기다려보고 못 기다리겠으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를 신청하든지 소송을 진행하라”며 '나몰라라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피해자 단체도 “주 판매사인 하나은행은 투자자들에게 만기가 짧고 투자금 회수가 확실한 매출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이라면서 ‘5% 확정 금리 보장’을 내세워 투자를 권유했지만 실제로는 만기가 24~36개월에 달하는 악성 채권에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은행 측이 판매자가 아닌 수탁사로 직접 참여해 고객들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미비한 금융사 제재와 피해 구제 제도…투자자‧업계 혼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당국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구제나 관련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피해자 단체는 "금감원이 금융사 처벌과 손실 구제를 이행하려고 해도 강제 조사 권한이 없는 임의조사라서 은행이 불리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더라도 추가적인 요구를 할 수 없다"고 현행 제도상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제재심을 통해 사건 혐의나 소명이 이뤄지고 처벌과 징계가 확정돼야 배상이 진행되는데 아직까지도 제재심과 관련한 어떤 일정도 확정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3자 대면’이라고 하는 현장 조사 일정을 시작하는 것은 실체 파악도 없이 금전적인 부분만 무마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1조 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한 젠투 펀드도 금감원이 지난 6월부터 불완전 판매 여부 조사에 착수했으나 펀드 측이 오는 2022년까지 환매 중단 연기를 통보해 제재심과 분조위 일정이 미뤄지게 됐다.

    피해자들은 "‘해외 운용사-국내 운용사-판매사-투자자’로 이어지는 복잡한 구조도 정확하고 신속한 책임 규명과 보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한 가지 상품을 여러 금융기관들이 같이 판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 보상이 이뤄지려면 판매사들 간의 협의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핑계를 대면서 보상 기간이 길어지고 보상 비율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처벌 강화로 투자자 보호 시급"

    사모펀드 전문가인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금전적 손해는 결국 한 개인의 인생을 파괴하는 만큼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펀드 투자 사기로 얻어진 부당이득은 대부분 은닉돼 회수가 어려운 만큼 사태 초기에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응으로 피해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실장은 이어 "미국의 경우 금융 범죄에 대해 100년이 넘는 형량을 선고하는 등 선진국에서는 금융 범죄를 매우 엄중히 다루고 있다"며 "최근 옵티머스 사태 책임자에 대해 사법부가 징역 25년의 중형을 선고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금융 범죄 처벌이 약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시장 전반에 잘못된 투자 권유나 투자자 기망 행위 등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강력한 처벌이 내려진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모펀드 전문 변호사는 "금융당국은 일련의 사모펀드 피해 사건들에 대해 처벌 대상을 신탁 회사나 판매사, 자산 운용사 중 어디로 할 것인 지를 우선적으로 결정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다만, 현실을 고려할 때 처벌 만이 능사는 아닌 만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보상책을 만들어 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피해 예방에 힘쓸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변화를 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피해자 단체들은 "금융당국의 규제 공백과 안일한 대처를 틈탄 불법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법규와 제도를 정비하고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금융소비자들을 '봉'으로 인식하는 '후진적 금융시장' 구조가 개선돼야만 같은 피해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힘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더딘 게 사실"이라며 "보다 안전하고 투명한 투자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감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