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수장 행시 28기 동기, 변화보단 안정 택해금융위‧금감원 간 불화→화합 기대, '내부 결속' 방점 '가계부채‧사모펀드 수습‧가상자산 제도화' 과제 산적
  • ▲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좌)와 정은보 금감원장 내정자ⓒ연합뉴스
    ▲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좌)와 정은보 금감원장 내정자ⓒ연합뉴스
    신임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에 행정고시 28기 동기인 경제관료 출신 올드보이(OB)들이 나란히 등판했다. 

    그동안 관료 출신 인사를 적극 배제했던 청와대가 정권만료를 9개월여 앞둔 애매한 시점에 관(官)출신을 중용하면서 "헤드(수장)은 절대 관료출신을 쓰지 않는다"는 기조는 정권말에 무너지게됐다.

    청와대는 5일 신임 금융위원장에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신임 금감원장에는 정은보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 대표를 내정했다.

    3개월간 공석이었던 금감원장 하마평에는 그간 비(非) 경제관료출신인 교수들이 거론돼왔다. 그러나 금감원 노조의 반발과 세평에 대한 잡음으로 교수출신 후보들이 줄줄이 제외되면서 결국 관료 출신이 낙점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선 국면을 앞두고 정책 경험이 풍부한 관료 출신을 금융라인에 전진 배치해 국정 안정을 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이번 인사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 내정자는 1961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재무부, 재정경제부를 거쳐 금융위원회에서 사무처장을 지낸 뒤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맡았다. 이후 금융위 부위원장과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19년 9월부터 외교부 한미방위비분담 협상대표를 맡았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와는 행시 28기 동기다.

    고 내정자는 1962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8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재무부와 재정경제원, 금융감독위원회를 거쳐 금융위 사무처장과 상임위원을 끝으로 2016년부터 한국은행 금통위원을 맡았다. 

    ◇금융사 대표가 금융당국 투톱 선배, 뒤집힌 상하관계 

    행시 28기가 1984년 치러졌으니 두 수장은 올해로 공직생활 36년차가 된다. 

    행시 28기는 우애가 돈독한 편으로 알려졌는데 ‘백사회’라는 동기 모임을 통해 교류하고 있다. 이들은 매월 네번째 월요일 ‘사월회’란 이름으로 오찬 모임을 갖는다. 정부 각 부처의 고위공무원에 포진해 정부 정책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대표적으로 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최만범 한국산업융합협회 회장 등이 현직에 있다. 홍윤식 전 행정자치부 장관, 이병국 전 새만금개발청장, 이경근 전 한국국제조세협회 이사장 등도 동기다.

    금융에서 잔뼈가 굵은 행시 동기들이 금융당국을 이끌게 되자 금융당국의 피감 금융사인 기업은행을 비롯해, 금융사들을 대신해 당국과 긴밀히 소통해야 하는 은행연합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는 난처하게 됐다.  

    윤종원(1960년생) 기업은행장과 김광수(1957년생) 은행연합회장, 정지원(1962년생) 손해보험협회장은 두 금융당국 수장에 비해 1기수 선배이며 윤 행장과 김 회장은 나이도 더 많다. 

    김주현(1958년생) 여신금융협회장 역시 행시 25기로 금융당국 수장들에 비해 3기수 선배라 뒤집혀진 상하관계가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두 수장이 주요 현안에서 한목소리를 내는 등 금융위와 금감원이 긴밀히 소통하면서 당국 간의 갈등이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금감원의 예산 독립과 인사권 등을 놓고 냉기류가 오가기도 했다. 

    ◇매파 고승범, 가계부채 더 조이나…가상자산 제도화 촉각

    두 수장은 문재인 정부 임기가 9개월여 남은 시점임을 감안해 새로운 혁신보다는 당면한 과제 해결에 집중하고 안정적인 정책 수행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최대 현안은 가계부채 관리다. 금융위는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5~6%로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상반기에만 증가율이 8~9%를 기록하면서 금융당국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하반기 증가율은 3~4%대로 방어해야 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고 후보자가 한은 금융통화 위원을 지내면서 통화 긴축을 선호하는 매파로 통했던 만큼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강도높은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 후보자는 지난달 15일 열린 한은 금통위에서 금통위원 7명 가운데 홀로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가계대출 조이기와 금리 인상까지 겹칠 경우 실수요자들에 대한 대출이 막힐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통화위원 때와 같은 목소리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 수습도 당면한 과제다. 2019년부터 연이어 터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사태와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등 대형 사모펀드 사고와 관련한 금융사와 CEO(최고경영자) 징계가 핵심이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결정한 일부 중징계에 대해 금융위가 아직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한 상황이다. 

    금감원은 DLF 관련 중징계를 놓고 손태승 우리금융지주회장과 행정소송을 진행중인데 오는 20일 1심 판결이 나온다.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남아 있는 사모펀드 제재심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가상자산 제도화도 손질이 필요하다. 금융위는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거래소 관리에 대한 책임 역시 은행에 맡기면서 논란으로 떠올랐다.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에 따라 9월 25일부터 은행에서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않은 거래소들은 불법 거래소가 된다. 은행들이 거래소에 계좌발급을 꺼리면서 코인런 사태와 거래소 줄폐업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