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잡겠다더니 대출만 잡는 정부, 실수요자들 패닉 자영업자 다중채무 늘고, 대출 질 악화…지표는 착시기울어진 규제, 전문가 “대출규제 정책 조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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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가계대출을 조여 집값을 잡겠다며 은행권의 신용대출과 전세대출, 주택담보대출 등을 틀어막고 있으나 집값은 잡지 못한 채 대출만 잡는 형국이다. 

    정부의 충격요법에도 오히려 대출 가수요가 늘고, 서민 실수요자들은 대출절벽에 놓여 금리가 더 비싼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반면 영세 자영업자의 생활비 용도로 주로 사용되는 개인사업자(소호)대출은 기업대출로 분류돼 별다른 규제없이 질주하면서 가계부채 부실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전체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413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보다 7%(27조1000억원) 증가했다. 

    이 중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292조원으로 같은 기간 7.8% 늘었다. 직장인이 주로 쓰는 신용대출은 한도가 줄었는데 별다른 규제가 없는 사업자대출은 신용대출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이다. 

    8월 말 기준 소호대출의 잔액은 292조원으로 신용대출 잔액인 141조원보다 더 많다. 

    금융권에서는 개인사업자대출이 가계대출의 우회통로 역할을 하는 ‘숨은 가계 빚’으로 보고 있다. 자영업자는 법인인 동시에 개인의 성격도 갖고 있어 개인사업자대출을 받아도 법인을 위한 용도가 아닌 개인적인 용도로 쓸 수 있어서다. 

    때문에 개인사업자대출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활비 마련 창구로 활용되고 있고, 코로나19로 영업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월세나 인건비를 이유로 개인사업자대출을 받는 경우도 늘었다. 

    그러는 사이 자영업자 대출은 저금리에서 고금리로 옮겨가는 등 대출의 질이 떨어진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자영업자의 폐업 여부나 연체율 등 대출의 부실 징후를 가늠할 지표들은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폐업 현황은 왜곡되고 정부의 대출 만기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등 지원조치로 착시현상을 보이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자영업자 중 개인사업자와 가계대출을 동시에 낸 다중채무자 비중이 늘고 있어 이들의 이자 부담은 한층 커졌다”며 “다중채무자의 연체 급증과 제도권 금융권에서 대출 돌려막기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불법 사금융에 몰리거나 파산하는 취약계층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의 억제 속에서도 부작용을 줄이는 연착륙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정책이 부동산시장 불안과 가계부채의 위험을 증폭하는 등 효과적이지 못했고, 근본적으로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촉발된 집값 상승 문제를 대출 규제로만 해결하는 건 잘못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세대출과 신용대출뿐 아니라 가계대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사업자대출에 대해서도 한계 차주를 중심으로 한 건전성 분석 등을 통해 규제가 한쪽에만 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대출 비용을 높여 꼭 필요한 사람만 대출을 받도록 하고, 대출을 불편하게 하는 등 접근성을 축소해 투기 수요와 불필요한 대출을 막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