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성장 기대 불구 글로벌 공급 확대해상운임 리스크 여전… 올해보다 실적 부진친환경 사업 투자 확대… 재무안정성 저하 전망도
  • ▲ 여수석유화학단지. ⓒ성재용 기자
    ▲ 여수석유화학단지. ⓒ성재용 기자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석유화학업계가 당분간 침체기를 지낸 전망이다. 당장 해상운임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코로나19로 미뤄졌던 신증설 물량까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게다가 친환경 플라스틱 생산부터 CCS, 수소 산업 등으로 이어지는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 국면에서 추가로 진행할 투자 등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재무건전성도 점진적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24일 나이스신용평가 등에 따르면 2020년은 코로나19 영향 둔화로 경기가 개선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석유화학 산업의 기본적인 수요 증대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속적인 변이 발생 등으로 경기 개선 속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지연됐던 신규 증설이 중국을 중심으로 진행됨에 따라 신규 출회 물량이 수급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로 2016~2018년 석유화학 호황기를 거치며 글로벌 공급 확대 계획이 대규모로 세워졌고, 2019년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에틸렌을 비롯한 주요 석유화학 제품의 증설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가 급락하면서 공장 가동률이 빠르게 하락해 증설 계획이 보수적으로 전환됐으며 증설 중인 공사현장 폐쇄까지 발생하면서 공급 확대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 들어 코로나19 영향이 둔화하면서 대부분의 제품군에서 대규모 증설이 예정되고 있으며 특히 공사현장 재개 등으로 내년에 신규 물량 출하 일정이 몰려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표적인 석유화학 제품인 에틸렌의 경우 향후 2~3년간 증설이 지속할 전망이며 PE 및 PP 등 수지 제품 역시 중국을 중심으로 대규모 증설이 예정됐다.

    특히 중국 PE 증설의 경우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증설이 7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최근 높은 수익성을 기록했던 제품의 대규모 증설이 예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정유사들의 화학 사업 진출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의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은 에틸렌 75만t 규모의 생산설비를 조만간 가동할 전망이며 GS칼텍스의 에틸렌 70만t은 이미 상업가동에 돌입했다. 에쓰오일도 에틸렌 150만t 증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진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회복을 바탕으로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규모 증설은 석유화학사들의 수익성에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뿐만 아니라 최근 해상운송 대란은 석유화학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상운임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역내 석유화학 제품이 유럽, 미국 등 역외로 수출되는데 차질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아시아권과 미국-유럽권역 간 가격 차별화가 심화했다.

    일례로 PP의 경우 미국의 허리케인, 한파 영향에 따른 공급 차질 이슈와 함께 해상운임이 크게 상승하면서 국내와 미국(US Gulf) 지역 간의 가격 차가 크게 벌어졌음에도 지역간 거래 확대가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등 공급망 안정성 저하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실제 최고치 경신을 이어가던 발틱운임지수(BDI)가 최근 빠르게 하락하고 있으며 코로나19 영향 감소에 따른 항구 운영 정상화 전망 등을 고려할 때 내년에는 해상운송의 점진적인 안정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상하이 컨테이너운임 지수(SCFI)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등 해상운임의 전반적인 안정화가 지연되는 가운데 선진국에 이은 신흥국의 경제 회복을 바탕으로 한 수요 증가로 공급 병목현상이 지속할 공산이 크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2020년 6월 시작된 항만 정체 상황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항만 인프라가 낙후된 미주와 유럽 중심으로 병목현상이 집중됐다"면서 "중국 및 동아시아의 경우 일시적으로 해소되는 듯했으나, 차츰 재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일부 품목의 스프레드 개선에도 글로벌 판매망 위축 및 높은 운송비 부담에 따른 수익성 저하, 수출 기간 장기화로 인한 매출채권 및 재고자산 증가에 따른 운전자금 부담 확대 등 석유화학사의 실적 및 재무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 글로벌 에틸렌 수급 전망(좌) 및 글로벌 PE, PP 증설 계획. ⓒ한국신용평가
    ▲ 글로벌 에틸렌 수급 전망(좌) 및 글로벌 PE, PP 증설 계획. ⓒ한국신용평가
    이밖에 언택트, 내구재 등을 중심으로 증가했던 수요가 점차 제한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 그리고 최근 강화되고 있는 환경규제 영향으로 관련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석유화학 산업의 업황은 올해보다 저하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성진 수석연구원은 "무엇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규 증설로 역내 석유화학 제품 공급이 증가하는 가운데 해상운송 대란 등 수출환경 악화 및 원자재 가격의 높은 변동성이 지속할 경우 산업환경 저하가 석유화학사들의 실적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도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의 실적이 저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실적 전망 분석 결과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 주요 석유화학업체 4곳의 합산 영업이익은 올해 10조원에서 내년 8조8112억원으로 16.1%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2조5100억원에서 1조5295억원으로 39.0%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LG화학(5조2959억→4조6780억원)과 롯데케미칼(1조8270억→1조6114억원)은 각각 11.6%, 11.8%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부문의 흑자전환 등으로 8798억원에서 9922억원으로 12.7% 늘어날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내년에는 상위 석유화학사들을 중심으로 ESG 관련 친환경 투자, 2차전지, 수소 및 해외 생산설비 투자 등 사업적·지역적 다각화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보수화됐던 국내 석유화학사들의 설비 투자 계획이 최근 다시 확대 추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는 우려됐던 실적 저하가 크지 않았고, 올 들어서는 오히려 산업 호황기 수준의 수익성이 나타나면서 상위 업체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투자 계획이 수립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최근 환경규제 강화 추세에 발맞춰 ESG 관련 친환경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신기술 개발 및 친환경 플라스틱 생산 등 단순 프로세스 개선 차원이 아닌 친환경 생산 체계와 신규 제품군 개발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원유, 가스 기반의 제품 포트폴리오에서 점차 탈석유를 위한 포트폴리오로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2차전지, 태양광 및 수소 산업 등 다양한 소재 및 에너지 산업으로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주요 석유화학사의 투자 성격 및 규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LG, 롯데, SK, 한화 등 상위 업체들이 속한 기업집단이 이러한 투자전환이 대규모로 나타나고 있으며 투자 기간도 대부분 중장기로 계획되고 있어 석유화학 산업의 투자 방향이 빠른 속도로 다양화될 전망이다.

    다만 새로운 시설 투자 및 기업 인수 등으로 자금 부족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며 신규 투자의 이익 창출이 가시화되기 전까지 차입 부담 확대와 재무안정성 저하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영향 둔화를 바탕으로 예상되는 경기 회복이 지연될 경우 투자 확대에 따른 자금 투입과 맞물려 재무안정성 저하가 더욱 급격히 나타날 수도 있다.

    분기보고서 분석 결과 주요 석유화학기업 4개사의 부채 규모는 모두 46조원으로, 지난해 3분기 37조원에 비해 8조1284억원(21.4%) 불어났다.

    같은 기간 자본총액이 41조원에서 51조원으로 9조4052억원(22.4%) 증가했음에도 부채비율이 0.77%p 개선(90.6→89.8%)에 그친 까닭이다.

    김 수석연구원은 "과거의 단순 증설 중심 투자에서 탈석유화 및 지역 다각화로의 투자 방향성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투자는 중장기적으로 환경규제 강화 및 석유화학제품의 Commodity 화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신규 사업 및 지역에 대한 투자가 성과를 내기 전까지는 재무 부담 확대 및 실적 변동성 증가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 ▲ 주요 석유화학기업 수익성 전망(좌) 및 재무안정성 전망. ⓒ한국기업평가
    ▲ 주요 석유화학기업 수익성 전망(좌) 및 재무안정성 전망. ⓒ한국기업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