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낸드 인수 반독점 심사 6가지 '조건부 승인'수급 막힐라 전전긍긍… 딜 승인, '실리' 취하기 전략'경쟁사 진입 지원' 조건 논란… 기술이전 없지만, 향후 '압박' 가능성
  • SK하이닉스가 중국 정부로부터 인텔 낸드사업 인수와 관련한 반독점 심사 허가를 받아내면서 6가지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며 향후 반도체업계에 어떤 파장이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과의 대립으로 반도체 수급 리스크가 커진 중국이 당장은 SK하이닉스를 활용해 자국 반도체 수급 상황에 안정을 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쟁사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자국 반도체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SK하이닉스를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7일 반도체업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 인수 승인을 내리면서 6가지 조건을 앞세운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가뜩이나 중국이 현재 미국과 무역분쟁 등 대립각을 세우면서 글로벌 반도체 쟁탈전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어 이번 SK하이닉스의 반독점 심사 승인을 두고 자국에 이득이 되는 전략을 담았을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우선 지난 22일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 인수를 승인하면서 내건 6가지 조건은 대부분 자국의 반도체 시장 안정화와 수급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승인일 기준 과거 24개월 평균가 이상 제품 판매 금지 ▲향후 5년간 다롄 공장 생산량 지속 확대 ▲공평·합리·비차별 원칙으로 중국시장에 모든 상품 공급 ▲중국 시장에서 제품 조달시 배타적 행위 금지 ▲중국 경쟁업체의 경쟁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서면·구두 계약 체결 금지 등 5가지 조건을 통해 자국 반도체 수급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SK하이닉스가 이 같은 승인 조건들을 위반하면 중국 반독점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중국 정부는 밝혔다. SK하이닉스도 이런 조항들에 대해서 중국 측이 자국 반도체 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하고 지난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위 5가지 조건 외에 중국이 '한 곳의 제3 경쟁자 시장 진입 지원'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점이다. 이 한 곳의 경쟁자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 중 낸드플래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유의미한 기업이 칭화유니그룹의 낸드 제조사 'YMTC' 아니냐는 추측도 있으나, YMTC보다 작은 규모의 기업이라는데 무게를 싣고 있다.

    YMTC의 모기업인 칭화유니는 중국이 지난 2015년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자국 반도체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데 핵심이 됐던 기업인데 최근 경영상 위기를 맞는 등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 ▲ 중국 국가시자감독관리총국 홈페이지에 게시된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 인수 승인 조건 ⓒ홈페이지 캡처
    ▲ 중국 국가시자감독관리총국 홈페이지에 게시된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 인수 승인 조건 ⓒ홈페이지 캡처
    중국이 말하는 제3 경쟁자 지원이 YMTC일지 그보다 작은 기업이 될지는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중국에서 낸드 경쟁력이 그나마 가장 높다는 YMTC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시장 톱티어와의 생산력 수준 차이는 엄청난 정도이고 기술 측면에서도 최소 2~3년 정도의 시간차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분석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YMTC의 낸드사업 매출은 약 5500억 원 수준으로, 점유율은 2.5%를 기록했다. 시장 7위 수준의 점유율로 존재감은 있는 편이지만 최근 낸드시장 주요 플레이어들 사이에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YMTC가 낸드시장에서 대규모 기업들과 경쟁하기는 더 힘든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SK하이닉스가 경쟁사 지원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한만큼 중국 측이 어떤 방식으로 협조를 구하더라도 이에 응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힌다.

    일단 SK하이닉스는 기술이전과 같은 수준의 지원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중국 정부가 말을 바꿔 경쟁사 지원의 수준을 예상보다 높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중국도 미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술이전과 같은 명문화된 형식으로는 SK 측에 요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어쨋든 다롄 공장을 중심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면서 기술이전에 준하는 수준의 요구를 할 수는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동안에도 중국이 한국 반도체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서 인력을 유출해가는 등의 시도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공식적으로도 낸드 분야에서 자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가지 접근을 하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최근 중국이 반독점·반부정 경쟁 관련 법 집행을 강화하고 나섰다는 점도 향후 SK하이닉스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운다. 지난달 중국 정부는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에서 반독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반독점국을 차관급 조직으로 분리해 '국가반독점국'으로 격상했다. 기업의 독과점 행위 단속을 상시화 한다는 방침으로 풀이되는데, 동시에 이 같은 조치를 활용해 외국기업도 얼마든지 더 압박할 수 있다는 경고로도 볼 수 있어 중국 당국의 정책 동향을 예의주시할 필요성이 대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