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원회의 4년여만 결론…공정위 "신고누락 위법"해수부 "세부협의 신고대상 아냐"…해운재건 찬물 우려해운協 "해운법 따랐다"…K-해운 '불법' 낙인찍는꼴
  • ▲ HMM 오슬로호.ⓒHMM
    ▲ HMM 오슬로호.ⓒHMM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23개 해운사의 운임 공동행위를 두고 짬짜미(담합)라며 칼을 빼든지 4년여만에 결론을 내려고 12일 오전 전원회의를 연다. 합의제인 전원회의에는 외부 민간위원도 포함돼 있어 결론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게 공정위 안팎의 반응이다.

    이해당사자 입장은 제각각이다. 공정위는 해운법에서 공동행위가 허용되고 있으나 절차상 위법행위가 있다는 태도다. 해양수산부는 제재 수위가 높을 경우 그동안 지도·감독을 잘못해왔다는 원성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다. 일단은 업계에 다소 유리하게 제재 수위가 조절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해운업계는 과징금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견해다. 혐의없음으로 결론 나지 않으면 소송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강경한 입장이다.
  • ▲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연합뉴스
    ▲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연합뉴스
    ◇기업 '군기반장' 김상조호(號) 공정위 3년 넘게 조사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8년 7월 인천의 목재합판유통협회가 동남아시아 항로에서 수입목재에 붙는 부대운임이 오르자 해운사들의 운임 담합이 의심된다며 공정위에 신고하면서부터다. 협회는 나중에 신고를 취하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직권조사로 방향을 튼 뒤 외국 선사까지 조사대상에 포함해 3년 가까이 조사를 벌였다. 당시 공정위는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공정경제를 기치로 기업들 군기 잡기에 나설 때였다. 당시 김 위원장이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 지각한 뒤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재벌들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공정위는 지난해 5월 해운업계에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HMM(옛 현대상선) 등 국내 12개, 머스크 등 국외 11개 선사가 2003~2018년 15년간 한국~동남아 노선에서 운임을 부당하게 짬짜미했다며 최대 8000억원 규모(전체 매출액의 10% 적용)의 과징금을 매기겠다는 내용이었다.
  • ▲ 조성욱 공정위원장.ⓒ연합뉴스
    ▲ 조성욱 공정위원장.ⓒ연합뉴스
    ◇공정위 "노선·화물별 신고 안 해… 소비자 피해"

    이해관계자 반응은 제각각이다. 먼저 공정위는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태도다. 조성욱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원회의에서 위법성이 있는지 심도 있게 심의하고 위법성이 인정되면 피심인(해운사)들의 재정 상태, 이익을 본 정도,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과징금이 종합적으로 부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업계가 해운법을 이유로 들어 업계 특성상 운임 공동행위가 허용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선을 그었다. 해운법 제29조에는 '해운사들은 운임·선박 배치, 화물 적재 등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는 유엔이 1974년 공포한 '유엔 정기선 헌장'을 토대로 한다. 공동행위 없이 업체 간 가격경쟁이 과열되면 대형 선사가 시장을 장악해 결국 화주가 피해를 본다는 논리가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공정위는 해운업계가 그동안 운임(담합)에 대한 기본합의를 해수부에 신고하긴 했지만, 화주들을 뺀 상태에서 운임을 결정했고 실질적인 국가·노선·화물별 세부 내용은 신고하지 않아 절차상 공동행위 남용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화주나 소비자로선 담합내용을 알 수 없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논란이 불거지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된 해운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이다. 농해수위는 공정거래법 제116조에 '다른 법률에 따른 정당한 행위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 데도 공정위가 칼을 빼 들었다며 '해운사의 운임 공동행위에 대해선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한 해운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특히 개정안에는 이번 공정위 과징금 부과를 무효로 할 수 있는 소급적용 내용도 포함돼 공정위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조 위원장은 지난해 10월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책소통간담회에서 "해양부와 공정위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국무조정실을 통해 함께 이야기를 듣고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국회의 해운법 개정 움직임에 반대 뜻을 내비쳤다. 대신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이번 사건처럼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심의할 땐 관계부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공정위 회의운영 등에 관한 규칙을 고쳤다.

    현재 소급적용을 포함한 해운법 개정안은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상태다. 이날 공정위 전원회의 결과에 따라 개정안 처리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 문성혁 해수부 장관.ⓒ연합뉴스
    ▲ 문성혁 해수부 장관.ⓒ연합뉴스
    ◇해수부 "해운 특수성 고려해야"… 지도·감독 책임 불똥

    해수부는 해운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가 문제 될 게 없다는 견해다. 문성혁 장관은 지난해 9월21일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업계에서 신고한 기본합의 19건 외) 공정위가 신고하지 않았다는 122건의 세부협의는 신고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공정위와 생각이 다르다"고 밝혔다. 세부협의 내용이 기본합의의 신고된 운임 범위를 넘지 않으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해수부의 이런 입장은 해운 매출액과 선복량이 한진해운 파산 이전 수준을 회복하면서 해운 재건을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성과로 치켜세우는 상황에서 공정위발 과징금이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법원의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을 내는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수천억원의 과징금이 확정되면 결과적으로 해운업계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해수부가 그동안 업무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방증이 된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실제로 해운업계에선 과징금 폭탄이 현실화하면 수십 년간 아무런 제재가 없었던 해수부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의견을 숨기지 않는다.

    세종관가 일각에서 공정위가 해수부를 만만히 봤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해수부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해수부 내부에선 공정위가 도를 넘는다는 의견과 함께 김상조 전 위원장 이후 존재감이 예전만 못한 공정위가 3년 넘게 해운업계를 물고늘어지는 배경에는 다른 부처보다 해수부를 만만하게 봤기 때문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공정위와의 견해차가 갈등으로 비치는 게 부담스러운 해수부는 전원회의 결과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다만 업계에 다소 유리한 측면으로 결론이 도출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익명을 요구한 해수부 한 관계자는 "공정위도 (8000억원 과징금을 예고한) 조사국의 입장은 전원회의와 다를 수 있고, 전원회의 때 폭넓게 (업계와 해수부) 의견을 고려하겠다는 태도"라고 귀띔했다. 해수부는 과징금이 부과돼도 애초 알려진 금액보다는 많이 깎일 수 있다는 견해다. 한 발 더 나가 시정조치나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선에서 무마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는 의견이다.
  • ▲ 해상운송 업계 노사와 학계, 부산 시민단체가 지난해 7월5일 부산 중구 마린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국내 해운사들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모습.ⓒ연합뉴스
    ▲ 해상운송 업계 노사와 학계, 부산 시민단체가 지난해 7월5일 부산 중구 마린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국내 해운사들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모습.ⓒ연합뉴스
    ◇협회 '억울'… "40년간 문제없고 해외 제재사례도 없어"

    업계는 억울하다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한국해운협회는 공정위가 이렇다 할 신호를 주지 않아 전원회의를 앞두고 갑갑한 심정이라면서도 과징금 액수는 중요치 않다고 배수진을 쳤다. 협회 한 관계자는 "40년여간 해운법에 저촉되는지를 해수부에 물어보고 지도를 받아 (공동행위를) 해왔는데 이제 와서 그동안 해온 것들이 위법하다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 수 있느냐"며 "과징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위법 결정이 나면) 행정소송을 통해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정위가) 불법 행위를 저질러왔다고 낙인을 찍어버리면 누가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하겠느냐"며 "(한국)해운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협회는 신고누락과 관련해 지난 40여년간 해수부가 한 번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과 공정위 제재도 없었던 점, 외국에도 제재 사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부당함을 호소했다.

    설상가상 이번 결정이 앞으로 있을 한일·한중 노선 운임담합 여부 결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며 답답해했다. 두 노선을 합한 시장 규모는 동남아 노선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최고 수위의 과징금이 결정되면 업계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총 1조6000억원을 넘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공정위 논리에 하자가 있다는 견해다. 해운법에 신고 누락에 대한 벌칙조항(제59조)이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위 주장대로 신고를 빠뜨린 게 문제라면 해운법상 과태료(100만원 이하)를 부과하면 된다는 것이다. 해수부도 특수법인 해운법을 먼저 적용하는 게 옳다는 견해다.

    업계 일각에선 형평성 논란도 제기한다. 동남아 항로의 공동행위에 일본 대형선사도 참여했는데 공정위 조사에는 일본 선사들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협회 한 관계자는 "공동행위 때 일본선사가 의장 역할을 맡기도 했었다. 외국선사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면서 "(공정위는) 증거자료가 불충분해 제외했다는 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