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휴대폰, 12년 태양광 패널 접어눈덩이 적자에 물량 공세까지 '승산없는 경쟁' 판단실리 택한 구광모 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 관심 집중
  • LG전자 초고효율 태양광 모듈 '네온 2(NeON 2)' 약 7500장이 공급된 호주 시드니 소재 '무어뱅크 물류단지(Moorebank Logistics Park)' 현장 ⓒLG전자
    ▲ LG전자 초고효율 태양광 모듈 '네온 2(NeON 2)' 약 7500장이 공급된 호주 시드니 소재 '무어뱅크 물류단지(Moorebank Logistics Park)' 현장 ⓒLG전자
    LG전자가 휴대폰 사업에 이어 태양광 패널 사업에서도 철수키로 하며 선택과 집중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태양광 패널의 경우 구광모 LG 회장의 부친이자 선대 회장인 고(故) 구본무 회장이 몇 차례의 위기에도 지켜내며 추진해왔던 사업이라 의미가 남다르지만, 그만큼 구광모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 철학이 그만큼 굳건함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LG전자는 지난 23일 공시를 통해서 오는 6월 말까지 태양광 패널 사업을 종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태양광 패널 사업의 경쟁 심화와 지속적인 사업부진을 영업 정지 이유로 꼽는 동시에 핵심사업에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사업구조를 개선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에서 태양광 패널 사업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수준에 불과했다. 중국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그나마 1조 원대 매출을 지키던 LG 태양광은 지난 2020년 말 기준으로 매출 규모가 8817억 원으로 줄었고 향후 사업 불확실성도 높아진 상황이었다.

    지난해 7월 전면 철수한 LG전자 휴대폰 사업과 더불어 이번에 태양광 패널 사업까지 접게 되면서 LG전자는 비주력 사업을 상당부분 정리하고 핵심 사업과 미래 사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체질개선에 효과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사업을 접은 휴대폰 사업도 실적악화와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4년 넘게 고전했지만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고 결국 사업 종료 수순을 밟았다.

    LG 태양광 패널 사업은 휴대폰 보다 존재감은 작았지만 LG그룹 역사로 볼 땐 꽤나 의미가 컸던 사업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는 평가다. LG전자가 지난 2010년 본격적으로 태양광 패널 사업을 시작하기 15년이나 앞선 지난 1995년부터 태양광 연구에 돌입한 것까지 따지면 무려 25년의 공이 깃든 사업이 바로 태양광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LG 태양광 사업은 LG 3대 회장이자 구광모 회장의 부친인 구본무 회장이 의지와 애착을 가지고 이어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구본무 회장은 생전 태양광 사업을 포함해 다양한 친환경 사업을 기업가의 사명이라 여기고 어려운 시장 상황에도 묵묵히 사업을 이어왔다. LG가 과거 2000년대 태양광 사업을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낙점하고 꾸준히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구 회장의 이 같은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실제로 LG그룹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침체된 태양광업황 탓에 계열사별 태양광 관련 사업을 중단하거나 보류하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후 거의 10년 가까이 태양광 분야에서 제대로 실적을 내지 못하는 상황을 이어오면서도 꾸준히 기회를 모색했고 2010년대 들어 업황 회복 시기와 맞물려 다시 사업이 추진돼 LG전자도 태양광 패널 사업을 본격화했다.

    과거 위기와는 달리 최근 태양광 패널 시장은 중국업체들의 공세에 밀려 완전히 승산없는 전쟁터가 돼버렸다. LG의 시장점유율이 1%에 불과한 수준이라는 점도 한계지만 LG보다 몸집이 큰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중국업체들의 가격 공세와 규모의 경제에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LG전자도 이 같은 상황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사업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대에 뚝심을 갖고 불씨를 살려온 사업을 결국 접는데는 구 회장도 큰 고민이 있었겠지만, 그만큼 경쟁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고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데 집중해야 할 자원과 시간에 방점을 두고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다.

    결국 이번 LG의 태양광 패널 사업 철수는 구광모 회장이 LG의 완벽한 체질 개선을 통해 보다 미래 지향적인 그룹으로 나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선대 회장들이 추진했던 사업이라도 요즘 실정과 맞지 않고 미래 가능성이 떨어진다면 얼마든지 변화를 가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구광모 회장 취임 5년차를 맞은 가운데 실용주의 경영을 바탕으로 계열사들의 사업재편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주력 사업 정리를 위한 과감한 결단을 내리면서 구 회장이 중점을 두고 있는 '미래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앞서 밝혔 듯 태양광 패널 시장은 중국 기업들이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며 전세계 시장의 지배력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대형 발전 프로젝트가 중단됐다가 지난해부터 일시 재개되면서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며 원가 부담은 커졌다.

    LG전자의 태양광 패널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1%대에 불과하다. 2018년 1.4%에서 이듬해 1.6%로 소폭 증가했지만, 지난해 다시 1.2%로 하락했다. 관련 매출도 2019년 1조1000억원대에서 지난해 8000억원대로 축소됐다. 향후 사업의 불확실성도 지속되는 추세다.

    26년 동안 이어온 휴대폰 사업도 지난해 과감히 정리했다. LG전자의 MC사업이 2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회사의 골칫거리로 전락하자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처럼 LG전자는 부실사업을 정리하는 한편,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은 자동차 전장, 인공지능(AI), 로봇 등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구 회장 취임 이후 LG전자는 생활가전, TV 등 기존 주력사업에서 하드웨어 중심이던 사업 체계를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 분야까지 확대하고 있다. 또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손잡고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했다.

    LG전자 외 계열사들도 '선택과 집중' 전략 기조 하에 사업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이노텍은 2020년 10월 LED사업이 수익성과 성장성 등 여러 측면에서 회사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사업 종료를 결정했다. 앞서는 스마트폰용 기판(HDI)도 철수하며 채질개선이 주력했다.

    주력 사업인 광학솔루션을 바탕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이어간 LG이노텍은 최근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 시설 및 설비에 413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FC-BGA는 반도체칩을 메인기판과 연결해주는 반도체용 기판으로, PC, 서버, 네트워크 등의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주로 쓰인다. 비대면 확산과 반도체 성능 향상으로 수요가 급증하는데 비해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가 적어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분야다.

    이미 LG이노텍은 FC-BGA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지난해 12월 FC-BGA 사업담당, 개발담당 등 임원급 조직을 신설했다. 글로벌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판 사업 역량을 활용해 FC-BGA 시장을 공략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LG디스플레이도 경쟁력을 잃은 대형 LCD 생산라인을 줄이고 OLED 확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대형 OLED의 경우 지난해 전체 TV 시장이 13% 역성장하는 상황에서도 프리미엄 시장을 견인하며 시장 내 입지를 공고히 했다. OLED TV용 패널 출하량이 전년 대비 70% 이상 큰 폭으로 성장하하며 하반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LCD 부문은 하이엔드 IT 제품 중심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지속 전개할 계획이다.

    LG의 이같은 전략은 구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 노선에 기반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앞서 계열 분리를 통해 숙부인 구본준 회장이 LX그룹을 세우고 본격적인 구광모 시대를 연 LG가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룹 미래 구상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