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사태로 철근-시멘트 가격 급등건자재 수급 불안에 일선 현장 공사중단 우려도분양가 상승-주택공급 차질… 부동산 시장에도 악영향
  • ▲ 철근. ⓒ연합뉴스
    ▲ 철근. ⓒ연합뉴스
    건설공사 핵심 자재인 철근과 시멘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건설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사비 인상 압박이 거세진 데다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공정률 하락은 물론 공사 중단 위기까지 예고되면서다. 분양가 상승 등으로 주택공급 차질까지 빚어지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4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3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전월대비 1.3p 하락한 85.6을 기록했다.

    통상 3월에는 공사가 증가하는 계절적 영향으로 지수가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2월에도 3월 전망치를 25.6p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지수는 고꾸라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촉발한 국제 자재 및 연료 가격 급등과 수급 차질로 건설 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대형 건설기업과 달리 중견·중소 건설기업의 지수가 위축돼 중견 및 중소건설사에 자재 수급 문제가 상대적으로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철한 건산연 연구위원은 "러시아의 침공 사태로 국제 자재와 연료 가격이 급등했는데, 국내 건설 자재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으로, 중견·중소업체에 부담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지금 전국에서 수주한 공사들이 진행 중인데, 자재 가격 급상승과 수급 불안 여파가 고스란히 업계로 확산하고 있다"며 "당장 필요한 물량을 비축해놓고 있기는 하지만, 비용 부담이 장기화하면 시공사 가운데 중소 규모 건설사와 협력사들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때문에 중소건설업계는 주요 원자재 가격 폭등을 고민하고 있다.

    중소건설 B사 관계자는 "건설 자재 비용이 증가하고, 수급 불안정이 지속하면서 현장간 자재 확보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일부 현장의 착공이 지연되거나 아예 취소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철근값이 최근 들어 t당 100만원을 웃돌고 있다. 골조 공사에 쓰이는 고장력 철근(SD400)은 1월 전년 대비 30% 급증한 t당 105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골재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지난달 골재 가격은 ㎥당 1만5000원으로, 3개월 전보다 7~10%가량 올랐다.

    지난해 세계 각국이 인프라 사업 확대로 건설 자재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최대 철근 생산국인 중국이 수출을 제한하면서 철근값이 꾸준히 올랐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급등했다.

    해외건설협회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020년 기준 글로벌 철강 수출의 약 11%를 차지한 만큼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 서울시내 한 레미콘 공장에서 레미콘 차량이 대기 중이다. ⓒ연합뉴스
    ▲ 서울시내 한 레미콘 공장에서 레미콘 차량이 대기 중이다. ⓒ연합뉴스
    시멘트의 경우 가격 급등에 수급 부족까지 겹쳤다.

    시멘트 가격은 지난해 7월 t당 7만8800원에서 지난 1월 9만3000원으로 뛰었다. 지난달 시멘트 원료인 유연탄 가격은 지난해 평균보다 89.4% 급증했다. 시멘트의 원재료인 유연탄의 주요 공급처가 러시아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수입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시멘트 재고량도 줄어들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1분기 전국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시멘트 수요 전망치는 1036만t인 반면 생산 규모는 998만t에 그치는 것으로 예상됐다.

    최근 시멘트 재고량은 건설 성수기(4~5월)보다 절반 수준인 60만t으로 알려졌다. 시멘트 가격 인상은 레미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건설공사 현장에서는 건자재 비용 급등과 수급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공사 중단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철근콘크리트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물가 인상 압력이 커지면서 공사비를 증액하지 않고선 도저히 영업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공사현장별로 가격협상을 지속하고 있다"며 "다만 민간 공사현장의 가격협상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유류비 인상 폭까지 커지고 있어 현장별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견건설 C사 관계자는 "건설현장에 필요한 주요 건자재 비용이 급등하자 수급 불안이 계속되면서 자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건자재 대란으로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앞으로 가격은 더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일부 건설 공사현장은 '셧다운'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건자재 비용 인상은 향후 분양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진행 중인 공사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계획된 착공도 지연·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아파트 건축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분양가가 상승하고, 결국 분양을 받는 실수요자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택시장 안정화 기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건설현장마다 원자재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공급량이 줄고 가격이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한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건설사마다 자재 구입 정책이 다르겠지만, 소량 구매를 원칙으로 뒀던 사업장에서는 최근 원자재 인상 부담이 상당히 클 것"이라며 "가격 인상과 수급 불균형이 지속하면 원가 관리 측면에서 악영향을 받는 데다 주택공급 목표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가격이 급등한 원자재를 구입해 제품을 생산·납품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과 전문건설협회 소속 2만여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원-수급자간 납품단가 조정 실태를 긴급 조정한다고 이날 밝혔다.

    하도급법은 원자재 등 공급원가가 상승하면 수급 사업자에게 납품단가 조정을 요청할 권리를 보장하고, 원사업자에게는 조정 조항의 계약서 명시 및 조정 협의 개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에도 실제 납품단가 조정이 원활하지 않아 수급 사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사실상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부담을 원사업자가 납품업체들에 떠넘기는 실정이다.

    때문에 공정위는 주요 원자재 수급 현황, 납품단가 조정요청 여부, 실제 대금 조정 상황 등과 납품단가 조정 조항의 계약서 반영 여부, 이 같은 조항이 반영된 계약서를 원청으로부터 받았는지 여부 등을 중점 조사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