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집무실에 현황판 만들며 일자리정부 의지 다져反기업 정서 뚜렷…민간 일자리 쫓아내는 구축효과 부작용'공무원 공화국' 10.4만명↑…"좋은 일자리 창출은 기업 몫"
  •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1일 "경제는 엉망, 나라는 빚더미, 국민은 허리가 휘는 상황"을 새 정부가 현 정부에서 물려받을 성적표라며 작심발언했다. 인수위 일각에선 곳간 열쇠를 넘겨받아 열어보니 밑에 싱크홀이 있다는 표현도 나온다. 집권내내 '퍼주기' 논란에도 확장적 재정운용 기조를 유지해온 문재인대통령의 경제정책 성적표를 들춰보는 시간을 마련했다.<편집자 註>
  • ▲ 일자리 현황판.ⓒ연합뉴스
    ▲ 일자리 현황판.ⓒ연합뉴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붙여 놓고 직접 일자리를 챙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고용 참사였다. 숫자 채우기에 급급했다. 혈세를 투입해 만든 재정일자리사업으로 통계수치는 올랐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착시현상에 불과했다.

    지난달 16일 통계청이 내놓은 2월 고용동향을 보면 15세이상 취업자는 2740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달과 비교해 103만7000명(3.9%) 증가했다. 2월만 놓고 보면 2000년(136만2000명) 이후 22년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취업자수는 지난해 3월이후 12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저효과 영향이 컸다. 지난해 2월 취업자수는 1년전과 비교해 47만3000명(-1.8%) 감소했었다. 정년퇴직자와 계약만료자 등 노동시장 이탈자가 쏟아지는 계절적 요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용 한파까지 겹친 탓이었다.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일자리사업 조기 착수도 한 몫했다. 공공행정은 물론 보건복지 등 준공공부문 취업자수까지 합하면 31만6000명 규모다. 현 정부의 일자리 증가에는 관제(官製) 일자리 논란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문재인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며 공공부문 일자리사업에 치중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예산은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15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30조6000억원으로 5년새 2배쯤 늘었다. 5년간 111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다. 공무원도 대폭 늘렸다. 정부조직관리시스템을 보면 2020년말 현재 문재인정부의 국가직 공무원 정원은 73만5909명이다. 박근혜정부말(63만1380명)보다 10만4529명이나 늘었다.
  • ▲ 서울 도심에서 노인들이 거리 청소를 하는 모습.ⓒ뉴데일리DB
    ▲ 서울 도심에서 노인들이 거리 청소를 하는 모습.ⓒ뉴데일리DB
    하지만 공공부문만 비대해졌을뿐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는 '구축효과'만 부채질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공 일자리는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기업활동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보다 60~70대의 3~6개월짜리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데 치중해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는 일자리가 워낙 없으니 재정일자리라도 만든다는 견해인데 재정일자리 증가는 민간 일자리를 쫓아내는 구축효과를 낼 뿐"이라고 부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 일자리사업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어렵다"면서 "현 정부의 일자리 예산은 복지·실업 예산으로 봐야지 일자리 예산으로 보긴 곤란하다"고 말했다.

    고용성과를 나이별로 보면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2월 고용은 모든 나이대에서 늘었다. 하지만 2월 일자리 증가의 43.5%는 60세 이상에서 차지했다. 우리 경제의 허리라 할 수 있는 30·40대 증가폭의 8.7배에 달하는 규모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고용행정 통계로 본 3월 노동시장 동향'을 봐도 마찬가지다. 고용보험 가입자는 3개월째 50만명 이상 증가했지만 10명중 4명(43.2%)은 60세이상 노인이었다. 30·40대 비중은 15.3%에 그쳤다.

    정부는 30·40대 고용회복이 더딘 것에 대해 인구 감소를 원인으로 설명하며 고용률(인구 대비 취업자 수의 비중)을 함께 봐야 한다는 태도다. 하지만 인구가 1년전보다 줄어든 20대(-8만6000명)와 30대(-13만5000명), 40대(-7만4000명)의 고용률 증가를 보면 20대 4.1%포인트(p), 30대 1.7%p, 40대 1.2%p로 30·40대 고용률 증가가 20대보다 크게 더디다. 30·40대가 주로 풀타임 일자리를 원하고 정부가 20대를 대상으로 전산보조 등 단기 아르바이트성 공공일자리를 대거 공급해온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실이 통계청 고용동향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풀타임 근로자(15~64세) 기준인 주 40시간 이상 근로자는 2017년 2084만명에서 2020년 1889만명으로 195만명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주 40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자는 213만명 증가했다.

    그렇다고 청년 일자리지원사업의 실적이 좋은 것도 아니다. 올 1월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청년일자리 확대를 목표로 2020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6개월간 청년디지털일자리사업을 펼쳤다. 청년을 정보기술(IT) 직무분야에 채용한 5인 이상 중소·중견기업에 최장 6개월간 월 최대 190만원씩을 지원한 사업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끊기자 4명 중 1명꼴로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대상자 10명중 4명은 정규직으로 채용되는데 실패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코로나 때문에 줄어들었던 고용이 지난달까지 거의 99.9% 회복됐다. 다만 양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년들이 원하는 질 좋은 일자리가 (공급)되고 있느냐는 부분에 대해선 아직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고용 참사에 대해 여권에선 코로나19 탓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에도 고용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청와대는 출범 1년 만인 2018년 6월 정책실의 '투톱'인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을 전격 교체했다. 고용 부진 등 경제 상황 악화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문제는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7일 청와대에서 민관합동 일자리 창출사업인 '청년희망ON(溫)'에 참여한 6대 기업 대표와 오찬간담회를 하고 "6대 기업이 앞으로 3년간 청년일자리 18만여개를 창출하겠다는 약속을 해줬다. 훌륭한 결단을 내려주신 기업인들께 직접 감사드리고자 자리를 마련했다"고 격려한 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몫이고 정부는 최대한 지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출범 이후 줄곧 반기업 정서를 보였던 문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5년여를 허송세월했다는 지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