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금통위 열려… 고물가·美연준 긴축, 금리인상 '외통수'한은 "빅스텝 완전 배제 아냐"… KDI "국내 상황 고려해야"같은날 여야 추경 처리 시도… "재정지출 물가에 부담" 지적도
  • 대출 관련 현수막.ⓒ연합뉴스
    ▲ 대출 관련 현수막.ⓒ연합뉴스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다. 통화당국은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W자형' 더블딥(이중침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금리를 탄력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잇따른다. 오는 2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폴리시믹스(정책조합) 차원에서 '스몰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을 밟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같은날 국회에선 여야가 제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드라이브를 거는 추경이 정책 혼선을 부른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된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이 3.3%로 나타났다. 2012년 10월(3.3%) 이후 9년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대인플레이션은 기업·가계 등 경제주체가 예상하는 향후 1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다는 것은 앞으로 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내다본다는 얘기다.

    4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4.8%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4.8%) 이후 13년6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본격적으로 국내 물가에 전이되면서 이달 물가 상승률이 5%를 넘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한은은 시중의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다. 설상가상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달 초 '빅스텝'을 밟았다. 이는 2000년 5월 회의(6.0→6.5%) 이후 22년여만에 최고 인상 폭이다. 연준은 앞으로 두어번 50bp(0.5%p, 1bp=0.01%p)의 금리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긴축에 대비하라고 신흥국에 경고해온 상태다. 미 연준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면 신흥시장의 자본 유출과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환율마저 널을 뛴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4.0원 내린 달러당 1264.1원에 거래를 마쳤다. 일본을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관세 일부 철폐 방안을 검토한다고 발언하면서 미·중 갈등 완화 기대가 반영됐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 방한 전날인 지난 19일 환율은 1277.7원에 거래를 마쳤다. 나흘간 등락폭은 13.6원이다.

    한은은 오는 26일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 수준을 결정한다. 지난달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로 0.25%p 올렸다. 이번 회의에서 최근 물가 급등에 대응해 두달 연속 인상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한은은 2007년 7~8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바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찬 회동을 한 후 취재진과 만나 "향후 빅스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 경기 하향.ⓒ연합뉴스
    ▲ 경기 하향.ⓒ연합뉴스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이 느슨해지면서 소비가 살아나는 분위기지만,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 여파로 실질지출은 줄어든 데다 불안한 대외 여건으로 더블딥을 우려하는 경기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8일 내놓은 올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제성장률을 2.8%로 전망했다. 지난해 말 정부 전망치(3.1%)보다 0.3%p 낮다. 내년 전망은 더 안 좋다. KDI는 2023년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제시했다. 올해 전망치에서 0.5%p를 더 내렸다. KDI는 수출 증가세 둔화를 이유로 들었다.

    앞서 IMF는 지난달 19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EO)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5%로 낮췄다. 올 1월 전망치(3.0%)보다 0.5%p나 낮춰잡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소비는 살아나는 분위기다. 서비스 물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외식 물가는 지난달 6.6%나 올랐다. 1998년 4월(7.0%) 이후 상승폭이 가장 높다. 하지만 고물가 여파로 실질지출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 1분기 전국 1인 이상 가구는 식료품·비주류 음료에 월평균 38만8000원을 썼다. 1년 전보다 0.9% 증가했다. 다만 물가를 고려한 실질지출 금액은 같은 기간 3.1% 감소했다. 명목지출은 늘었는데 실질지출이 줄었다는 것은 돈은 더 썼는데 소비하는 양은 줄었다는 의미로 소비의 질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금리 인상 속도조절론을 제기한다. KDI는 지난 16일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한국의 정책 대응' 보고서에서 "한국이 기준금리를 미국에 동조해 급격히 올리기보다 국내 물가·경기 여건에 맞게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일시적인 물가 상승을 가져오더라도 중기적으로는 물가안정 효과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KDI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독립적 통화정책을 쓰면 금리 동조화 정책을 쓸 때보다 소비가 매 시점 0.04%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KDI는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고 강조했다. △1999년 6월∼2001년 2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았으나 대규모 자본유출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도 앞선 11일 '미국 금융긴축 전개와 금리정책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에서 "높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지속적인 금리상승이 초래할 가계의 이자부담 급증은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가속함으로써 스태그플레이션(경기둔화 속 물가상승)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기간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지더라도 경제주체들이 금리인상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지난해 12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1862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22일 내놓은 '대출금리 상승이 가계 재무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대출금리가 오르면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청년층 가구의 재무 건전성이 가장 취약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폴리시믹스(정책조합)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총재가 빅스텝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으나 금통위가 이번에도 '스몰스텝'에 머물 거라는 관측이 우세한 이유다.
  • 추경.ⓒ연합뉴스
    ▲ 추경.ⓒ연합뉴스
    일각에선 재정·통화정책 간 엇박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정부가 2차 추경안을 국회에 낸 가운데 소상공인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하더라도 시장에 대규모의 재정을 푸는 것이 정책 혼선을 불러올 거라고 지적한다.

    국회는 오는 26일 본회의를 열고 2차 추경안 처리를 시도한다. 정부는 소상공인 손실보상과 민생안정을 위해 36조4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짰다. 다음 달 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4조7000억원쯤을 증액한 상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추경으로) 재정지출을 더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정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월간재정동향 5월호를 보면 올 3월까지 국세수입은 111조1000억원이 걷혀 지난해보다 22조6000억원 많다. 하지만 씀씀이도 커지면서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33조1000억원 적자를 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장성 기금을 뺀 것으로 정부의 실제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도 45조5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추산된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108조8000억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