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예타 엄격 운영…'재정 문지기' 역할해야"대상사업 기준금액 올릴 듯…신속·유연 운영도 강조정책성 강조땐 선심성 지역숙원사업 조장 우려도
  • ▲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24조원대 예타 면제 대상사업 발표하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연합뉴스
    ▲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24조원대 예타 면제 대상사업 발표하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연합뉴스
    돈 쓸 곳은 많지만 재정건전성 회복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가 재정낭비를 막기로 했다.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를 엄격히 운영하기로 했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예타면제를 남발했던 문재인 정부와 선긋기에 나섰다.

    다만 예타 대상 기준금액을 올리고 지역균형발전과 정책목표를 적극 반영할 가능성이 커 재정이 새는 큰 구멍은 막아도 작은 구멍은 되레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상대 기재부 제2차관은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예타 전문가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는 경제·사회여건 변화 등에 대응한 예타 제도의 역할과 개선방향에 대해 민간전문가 의견을 수렴코자 마련됐다. 간담회에는 김형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 소장과 김기완 KDI 선임연구위원,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 송지영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 김시백 전북연구원 산업경제연구부장 등이 참석했다.

    최 차관은 "앞으로 예타가 재정 누수를 사전에 방지하는 '재정의 문지기'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동시에 경제·사회 여건 변화에 맞게 신속하고 유연하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속한 예타 수행을 위한 절차·제도 개선, 사회간접자본(SOC)과 연구·개발(R&D) 사업 예타 대상 기준금액 상향 조정 등 예타의 신속성·유연성 제고와 사업별 특수성 반영을 통한 예타 내실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최 차관의 발언을 보면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예타면제를 엄격히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직전 문재인 정부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혹은 정치 논리를 앞세워 예타면제 카드를 남발한다는 지적을 샀다. 2019년엔 이듬해 총선을 겨냥해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24조원대 토목공사를 추진했다. 여기에는 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1호 공약인 김천~거제 남부내륙철도 등이 포함됐다. 정권 후반기 접어들며 내놓은 한국판뉴딜사업에는 지역균형 뉴딜을 끼워 넣어 지방공기업의 사전타당성조사 면제를 추진해 눈총을 사기도 했다. 정치공항의 멍에를 쓴 가덕도신공항사업도 더불어민주당이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밀어붙였고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도 표를 의식해 장단을 맞추면서 예타없이 13조7000억원의 혈세를 쏟아붓는 모양새가 됐다.

    새 정부 들어 기재부가 예타면제의 엄격한 운영을 강조한 만큼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대규모 예타면제는 사실상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 ▲ 최상대 기재부 2차관.ⓒ연합뉴스
    ▲ 최상대 기재부 2차관.ⓒ연합뉴스
    다만 기재부가 예타 대상 기준금액을 올리고 유연성을 동시에 언급한 것을 두고 자잘한 지역 숙원사업 위주의 퍼주기식 정책은 여전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예타를 적용받는 대상 사업의 기준금액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은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한 정책수요에 대해 사업이 적기에 추진될 수 있게 예타를 신속하게 진행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견이 크지 않은 대목이다.

    문제는 지역균형발전 분석과 관련해 사업별 정책목표나 특수성을 적극 반영하도록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는 자칫 예타 대상 기준금액 상향과 맞물려 선심성 공약 등을 양산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금도 예타에서 경제성(B/C)이 떨어져도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 등을 고려한 계층화 분석(AHP)값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예타를 통과하는 사례가 적잖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특수성이나 사업별 정책목표를 적극 반영하는 식으로 예타 유연성을 키우면 재정낭비 방지라는 예타제도 본연의 목적이 훼손될 공산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 재정 누수를 막는 큰 구멍은 막고도 작은 구멍은 방치해 정책 개선 효과가 상쇄되는 우를 범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